'영화계 여장부' 김지미 "데뷔 60년…아직 철이 안났죠"

입력 2017-06-29 16:58   수정 2017-06-29 17:23

'영화계 여장부' 김지미 "데뷔 60년…아직 철이 안났죠"

출연작 700편 넘어…배우·제작자로 활약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아직 영화배우로서 철이 안 난 것 같아요. 아마 제가 100살이 된다 해도 영원히 철이 안 날 것 같습니다."

'영화계의 여장부',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국의 대표 여배우 김지미(77)가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를 기념해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 상영전을 마련했다.

김지미는 29일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특별전 기자회견에서 "77년 인생을 살았지만, 철이 아직 안 났다. 배우로서 연기도 부족하고, 아직도 모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성장 과정에 있다"며 자신을 한껏 낮췄다.

은발의 짧은 커트 머리에 화려한 액세서리로 멋을 낸 김지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배우 특유의 멋을 잃지 않았다.

김지미는 "사실 제가 언론에 잘 안 나타나는 배우로 유명하다. 언론에 많이 노출될수록 (배우로서) 상품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 점을 용서해달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지미는 여고 3학년이던 1957년 작은어머니가 명동에서 운영하던 다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김 감독이 집까지 따라와 영화 출연을 제의했고, 배우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김지미는 고심 끝에 승낙했다. 요즘 말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던 셈이다.

김지미는 그해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했다. 당시에는 최은희, 조미령, 문정숙 등이 주연급 배우로 자리를 잡고 있던 시기였다. 김지미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서구적 외모와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된 연기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60년간 공식 기록으로만 3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출연작이 하도 많아 정확한 숫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김지미는 "아마 700편 이상에 출연했을 것"이라며 "700가지의 인생을 살았던 만큼, 역할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말했다.

김지미는 대표작이나 기억이 남는 장면, 대사를 뽑는 데는 말을 아꼈다.

"20∼30개 작품을 한꺼번에 한 적도 있었죠. 여기 촬영이 끝나면 저기로 가야 하고, 감독과 배우가 함께 움직여 마치 (같은 작품의) 연속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세상을 살았죠. 또 마음에 꼭 드는 작품도 있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제작자의 요청에 따라 출연한 작품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편을 꼭 짚어 말하기가 민망합니다."

김지미는 데뷔 이후 홍성기 감독의 '별아 내 가슴에'(1958)에 출연, 큰 흥행을 거두면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춘희'(1967·정진우), '토지'(1974·김수용), '을화'(1979·변장호) 등에 출연하며 1960∼70년대 최고 스타로 자리했다. '여배우 트로이카(문희, 윤정희, 남정임)'가 인기를 끌었지만, 이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로 명성을 쌓았다.

연기력으로도 인정받았다. 10대에서 50대까지의 역할을 소화한 '잡초'(임권택·1973)로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대지주 가문을 이끄는 여성 가장 역을 맡은 '토지'(김수용·1974)로 제11회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제13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육체의 약속'(김기영·1975)으로는 제14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영화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임권택·1985), '명자 아끼꼬 쏘냐'(이장호·1992) 등 7편을 제작했다.

"'왜 여배우가 영화사를 차렸느냐'고 하는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당시에는 기생역할이나 깡패영화, 그런 혼이 없는 영화들만 계속 나오니까 이래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배경, 소재를 찾아보자고 해서 지미필름이 시동을 걸었죠. 그러나 후배 여배우들에게 제작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그 고통이 크고 희생이 큰지 알기 때문이죠."

그가 제작한 영화 '티켓'(1985년)에 얽힌 일화도 들려줬다. "당시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우연히 속초에 갔다가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만나 소재를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로 제작했는데, 검열에서 열두 군데나 잘렸지 뭡니까. 폐기처분을 하려다가 결국 협의 끝에 삭제 분량을 좀 줄이고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김지미는 '티켓' 뿐만 아니라 '비구니'(1984), '길소뜸'(1985) 등 임권택 감독과 유독 많은 작품을 했다. "임 감독은 배우의 가장 유능한 부분을 뽑아서 마음껏 쓰는 감독입니다. 배우의 능력이 100이라면 다른 감독들은 70~80 정도의 능력을 뽑아 쓰는데, 임 감독은 90 이상을 뽑아내죠. 인간적으로도 소탈하신 분으로, 아직 저와 특별하게 지냅니다."

김지미는 199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쳐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스크린쿼터 및 UIP 직배 등과 관련해 영화계의 수장으로 목소리를 냈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97년에는 러시아국립영화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지미는 요즘 국내 영화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요즘 후배들의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너무 잘합니다. 감독의 연출력도 좋아졌고, 기술력에서는 선진국 이상으로 앞서가고 있죠. 그러나 너무 액션 위주, 혼이 없는 흥미 위주의 영화가 대다수입니다. 물론 관객 입맛에 맞추다 보니 그런 영화가 제작되겠지만, 영화에는 아이도 필요하고, 20∼30대도, 40∼50대, 70∼80대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필요합니다. 요즘 영화는 그런 것은 다 배제되고 오로지 흥미 위주로 제작되죠. 그러다 보니 저같이 나이 든 배우들은 설 곳이 없습니다. 배우도 연기하다 보면 많은 경험이 쌓이고, 많은 작품을 한 배우가 작품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아,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특별전은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다. 그의 출연작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인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박종호)를 비롯해 '불나비'(1965·조해원), '춘희', '비전'(1970·이형표), '길소뜸' 등 20편이 상영된다.

제작 당시 불교계의 반대로 제작이 중단되었던 '비구니'(1984·임권택)의 부분 복원판과 당시의 제작 상황에 대한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송길한 작가, 김지미 배우의 증언이 담긴 다큐멘터리(한국영상자료원 복원·전주국제영화제 제작)도 선보인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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