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미국 우편마차에 빨간색 칠하자 살인·약탈 사라졌다

입력 2017-07-03 11:00  

[숨은 역사 2cm] 미국 우편마차에 빨간색 칠하자 살인·약탈 사라졌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깜찍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해 찬사를 받은 전북 군산 우체통 거리가 왜색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군산우체국 주변 상인 단체의 주도로 군산시 중앙로 일대에 우체통 거리가 조성된 것은 2016년 9월이다.

거리 곳곳에 폐우체통 28개를 볼거리용으로 설치하고서 포켓몬 캐릭터와 도라에몽, 토토로, 아톰, 앵그리버드, 스파이더맨 등을 그려 넣었다.

알록달록한 우체통 주변 군데군데에 벤치도 마련했다. 편하게 쉬면서 손편지 기억을 되살려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체통 거리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타고 널리 알려져 명소로 부상하는 듯했으나 일순간에 역풍을 맞는다.

우체통에 그려진 그림이 화근이었다.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 일색이라는 네티즌 비판 글이 쏟아졌다.

마침내 주민들은 문제 소지가 있는 우체통 그림을 흰색 페인트로 덧칠해 지워버렸다.

군산시는 우체통 거리에서 느린 우편제를 운용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그림 파문 탓에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느린 우편제는 편지 등을 사흘 안에 배달하는 일반 우편과 달리 접수 후 1년가량 보관했다가 배송하는 방식이다.

클릭 한 번으로 지구촌 사람과 실시간 안부를 주고받는 초고속 인터넷 세상에 느긋하게 기다리는 의미를 일깨워 주고 손으로 정성 드려 편지를 써내려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게 장점이다.

느린 우체통은 2009년 인천시 영종대교 휴게소 2층에 처음 등장한 이후 꾸준히 늘어나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경주 보문단지, 대구 이상화 고택 등 전국 유명 관광지에 하나씩 들어섰다.

길거리 애물단지로 전락한 일반 우체통이 급감한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에 우체통이 선보인 것은 우정총국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설립된 1884년이다.

처음에는 목조 벽걸이 형태였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빨간색 원통형으로 바뀌었다가 1957년 다시 변신한다.

우편물 투입구 색상을 빨간색으로 유지하되 아래 몸체는 초록색으로 바꾸고 모양을 직육면체로 했다.

그러다가 1984년 우체통 전체를 빨간색으로 칠했다. 눈에 잘 띄게 하고 신속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체통은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상품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각국 우체통은 시선을 강하게 끄는 노란색과 빨간색을 주로 사용하고 모양과 크기, 디자인은 천차만별이다.

원조 우체통 국가는 세계 최초로 우편제도를 도입한 영국이다.






고풍스러운 원통형 빨간 우체통은 빨간 전화부스, 빨간 이층버스 등과 함께 영국의 유명 볼거리로 꼽힌다.

왕실 근위대나 기마병에 버금가는 인기를 끈다고 한다.

영국은 1859년 소화전 모양으로 우체통을 표준화한 이후 디자인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북유럽 스웨덴에서는 이동식 우체통이 눈길을 끈다.

유럽형 노면 전철 전동차의 맨 뒤 칸 외벽에 매달린 노랑 우체통은 1911년 도입돼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노란 우체통에는 '내게 줄 것이 없나요'라는 애교스러운 문구가 적혀 있다.

스페인에는 등대처럼 귀엽게 생긴 우체통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노랑 통에는 일반 우편물을, 빨강 통에는 속달 우편물을 담는다. 호주는 노랑과 빨강 우체통 기능이 정반대다.






일본 우체통 색깔이 바뀐 사연을 알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郵便(우편)이라고 적힌 초기 우체통은 흑색이었으나 사람들이 편(便)을 변(便)으로 자주 착각하고 밤에 잘 보이지 않아 1901년 선명한 빨간색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수거 시간이 적힌 우체통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빨강 띠를 두른 통에는 속달 우편물을 넣는다.

지금은 파란색이지만 원래는 빨간색이었다.

빨강은 19세기 중반 서부 개척자들과 인디언의 타협 산물이다.

서부 개척자들은 태평양 연안에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 규모가 커지자 대륙을 동서로 연결하는 빠른 교통수단을 희망했다.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캘리포니아에 이주민이 급증한 것은 1948년 대규모 금광이 발견된 이후다.

국가나 기업이 채굴권을 독점하는 대부분 국가와 달리 누구나 금을 가져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일확천금을 좇아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른바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남미, 하와이, 중국 등지에서도 찾아와 1848년 1만5천여 명이던 캘리포니아 인구는 3년 만에 25만 명을 넘어섰다.

그 덕분에 캘리포니아는 1850년 정식 주(州)로 승인된다.

하지만 평균 높이 3,000m에 달하는 험준한 로키산맥 등으로 막힌 탓에 동부는 물론, 중부 지역과 교류하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약 6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항공편이 없었다.

그때는 미시시피 강과 광활한 사막을 지나 로키산맥을 넘는 육로와 배를 타고 남미 해안을 돌아 샌프란시스코로 북상하는 해상로가 있었는데 모두 6개월가량 걸렸다.

뉴욕에서 파나마까지 뱃길로 이동한 뒤 육로로 횡단해서 다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면 이동 시간을 약 70일로 단축할 수 있으나 큰 비용이 들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민간 철도회사에 막대한 땅을 공짜로 제공하고 개인들에게도 5년간 서부 개척에 참여하면 약 20만 평씩 나눠줬다.

그런데도 철도 사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 노선 문제로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중부 오마하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연결하는 중부노선과 텍사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을 우회하는 남부노선을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가 있었다.

동서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겨울 폭설로 선로가 자주 끊긴다는 게 남부노선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중부노선을 희망하는 측은 중·북부 투자자들의 공동 벤처기업인 포니 익스프레스를 내세워 맞대응한다.

포니 익스프레스는 4~6마리 말이 끌고 객실에는 짐을 싣거나 승객이 타는 기존 사륜마차 대신에 튼튼한 조랑말 한 마리로 우편물을 나르는 방식을 도입한다. 고속으로 달림으로써 운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사륜마차가 산이나 고지대를 피해 남쪽으로 우회한 것과 달리 조랑말은 험악한 산을 곧바로 넘어가도록 준비했다.

우편배달 혁신안이 완성되자 매우 살벌한 구인광고를 신문에 낸다.

"강인하고 마른 18세 이하 젊은이를 구합니다. 말을 잘 타고 죽음과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고아는 우대합니다"

험난한 서부 광야와 로키 산맥을 목숨 걸고 질주하겠다는 지원자가 의외로 많았다.






파격적으로 높은 급여에 끌린 젊은이들이다.

미숙련 노동자가 하루 12시간 일해도 1달러도 못 받는데 포니 익스프레스는 월급 100달러를 제시했다.

다만, 신체가 아무리 건강하고 용맹하더라도 체중 57kg을 넘으면 채용하지 않았다.

우편 행낭이 식수와 총기까지 합쳐 75kg인데 기수가 무거우면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력 채용과 별도로 16~24km마다 역 157개를 설치하고 날래고 힘센 조랑말 400여 마리를 구입한다.

준비가 끝나자 기수는 1860년 4월 3일 역마다 새 말로 갈아타 가며 120~160km를 달리다 다른 기수와 교대하는 방식으로 대륙 동서 연결구간을 약 10일 만에 주파한다.

대서양-태평양 구간에서 4륜 마차로 6개월 걸리던 우편배달 기간을 열흘로 단축했다는 소문이 나자 운송비가 꽤 비쌌는데도 고객이 급증했고 정부까지 긴급 문서를 맡겼다.

미국 36번 국도에 붙은 포니 익스프레스 하이웨이라는 별칭은 조랑말 운송로와 일부 구간이 겹친 데서 유래한다.

조랑말 기수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운송 도중에 교대 인력을 만나지 못해 400km 이상을 혼자 달리거나 강도나 인디언 습격을 받아 16명이 숨지기도 했다.

조랑말을 관리하는 역이 공격을 받아 150마리가 죽거나 강탈당하는 일도 있었다.

인디언 공격이 기승을 부린 것은 금품 욕심 외에 보복 의미도 있었다.

1830년 토착민 이주법 제정 이후 인디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 터를 빼앗기고 보호구역으로 쫓겨나 질병과 추위, 굶주림 등으로 무수히 죽었다.

상당수 인디언은 보호구역 이주를 거부한 채 백인을 상대로 약탈과 살인, 방화를 서슴지 않았다.

사륜마차나 조랑말은 우편물이나 신문, 소포 외에 금괴를 비롯한 귀중품까지 운송한 탓에 강도들의 집중 표적이 됐다.

견디다 못한 우편 사업자들은 인디언들과 협상을 벌여 우편마차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서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마차에 붉은색을 칠했다.

이 영향을 받아 미국의 초기 우체통 색깔이 붉은색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포니 익스프레스는 호황을 누리는 듯했으나 사업 시작 18개 만에 갑자기 사업을 접는다.

1961년 4월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새로운 통신수단인 유선전신이 등장해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포니 익스프레스 주주들은 큰 돈을 거머쥔다.

폭설 지역에서도 말을 타고 속달 우편을 수송함으로써 중북부 투자자들이 선호한 대륙횡단철도 노선의 타당성을 입증한 덕분이다.

대륙횡단철도는 중부노선으로 결정돼 포니 익스프레스 주주들은 철길 주변 노른자위 땅을 불하받아 1869년 준공됐을 때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긴다.

미국 철도는 광활한 북미 대륙을 통합하고 서부 황무지를 개발함으로써 미국을 조기에 강대국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토의 대동맥 역할을 하는 횡단철도 탄생에는 빨간색 우편마차의 도움이 지대했다.

나라마다 다양한 사연이 담긴 우체통은 통신기술 발달로 존재 가치를 크게 잃은 탓에 급감하거나 다른 용도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도 특별한 의미와 이야기를 갖는 형태로 변신했다.

위치가 가장 높은 설악산 중청대피소 '하늘 아래 첫 우체통', 세계 기네스북에 최대 크기로 등재된 광주 수완 호수공원 '거인 우체통', 12월 31일 낙조를 보며 쓴 편지를 담는 전남 가거도 '송년 우체통' 등이 유명하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여유와 사색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느린 우체통'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북 군산 우체통 거리 아이디어는 매우 신선하고 기발했다.

우체통 거리에 새로운 이야기를 접목하고 독특하고 귀여운 그림 등으로 꾸민다면 네티즌 비난은 성장통으로 그칠 수 있다.

군산을 무대로 일제의 한반도 수탈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설 '탁류'를 우체통 거리에 연극이나 조형물 등으로 되살린다면 '다크 투어리즘' 코스로 인기를 끌 수도 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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