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상위층에 유리한 기회불평등 구조로 불평등 영구화"

입력 2017-07-04 16:20  

"美, 중상위층에 유리한 기회불평등 구조로 불평등 영구화"

영국 계급의식 피해 미국 이민한 학자 "영국보다 계급 석회화 심해"

상위 20% "실력주의 사회"라면서 자녀위해 반실력주의 행태…"중상층의 의식변화 필요"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 지구적으로 확산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의 불안과 불안정의 요인으로 불평등이 지목되는 '신 불평등의 시대'.




"영국의 계급의식에 짓눌리는" 게 싫어서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에 이민한 영국 중산층 출신의 학자가 "미국이 영국보다 더 계급으로 석회화한 사회임을 발견하고는 전율"하면서, 소득 상위 20%(연 소득 20만 달러, 2억3천만 원)가 대물림을 위해 비축해 두고 활용하는 각종 기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한 책이 최근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발간된 리처드 리브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저서 '꿈 과점자들(Dream Hoaders)'은 미국 사회의 불평등 증가는 최상위 1%인 초거부(super-rich)만 문제인 게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직종 위주"의 상위 20%가 더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중상층 계급은 어떻게 다른 모든 이들을 흙길에 남겨두는가? 그것이 왜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라는 부제가 이 책의 주제를 말해준다.

최상위 1%가 나머지 계층과 분리돼 부를 늘려가는 속도가 중상위층보다 빠르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은 들고나는 순환을 통해 끊임없이 구성원이 변하고 있지만" 상위 20%는 변동성이 그보다 훨씬 작다. 떨어진다고 해도 상위 40% 이하로 추락하는 일은 거의 없고, 집단의 크기 등을 따질 때 사회의 계급 이동성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이다.

리브스가 특히 놀라는 것은 영국에서 최상위 계급은 자신의 부와 지위가 실력 때문만 아니라 운 좋게 부유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임도 인정하는 데 반해 미국의 20%는 능력주의 사회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점이다. 오로지 자신의 두뇌와 근면성 덕분이지 운과 불평등 구조와는 무관하다는 확고한 믿음이 기회의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공유하는 데 난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달 10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영국에선 총리가 자신의 자녀를 고가의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데, 미국에선 가장 자유주의적인 정치인조차 이런 학교에 보낸다"며 "영국의 귀족계급은 최소한 죄의식이라도 갖는 품위"가 있지만 "(미국에선) 나지막한 도덕적 걱정의 소리조차 없다는 게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인과 정책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은 빈곤이 대물림되는 '빈곤의 덫'을 걱정하지만, 사실은 부가 대물림되는 '부의 덫'이 훨씬 더 단단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의 중상위층은 자신들의 사회가 실력주의 사회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도 같은 부와 지위를 갖도록 거들어 주는 반(反) 실력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일종의 "계급 이중사고"에 빠져 있다. 한국에서 외고와 자사고 폐지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리브스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 세계에 미국에만 있는 명문대의 동문 자녀 우대 제도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동문이면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특혜 입학제도다. 영국 최고의 명문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마저 지난 세기 중반에 이 제도를 폐지했는데 "미국에선 자유주의적이라는 사람들마저 아무런 주저 없이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에 충격받았다"고 리브스 연구원은 토로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브루킹스연구소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며 '지금 당장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올바른 일 5가지'를 제시했다.

이 5가지가 거꾸로 보면, 중상위층 수백만 명 개개인이 일상의 생활 한가운데서 하는 행동들이 모여 불평등의 영구화를 가져오는 구체적인 예이기도 하다. 리브스는 자신도 중상위층에 속한다며 "당신과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첫째, 모교가 동문 자녀 특혜입학제를 시행한다면 학교에 서한을 보내 폐지토록 압박하라. 폐지 때까지는 모교 발전 기금도 보내지 마라. 물론 다른 동문과 함께 폐지운동을 조직하라. "당신이 아니면 다른 누가 하겠느냐"고 리브스는 물었다.

둘째, 자신이 속한 회사나 조직이 인턴을 모집할 경우 임직원이나 기부자, 고객, 친구 등의 친인척에게 특혜를 주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충원 절차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라. 물론 당신의 자녀나 당신 친구의 자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뉴욕 시장을 3번 연임한 마이크 블룸버그 시장 때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총 1천500명의 인턴을 채용했는데 5명 중 1명이 뉴욕시 정부 관계자들의 추천을 통한 것이었다고 리브스 연구원은 지적했다.

셋째, 미국에선 청소년의 장래 진로 교육 차원에서 매년 4월 넷째 주 목요일에 자녀와 함께 출근해 견학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25주년을 맞는 내년 4월 26일 다른 사회적 배경의 아이도 데려가라고 리브스는 권유했다.

"부모가 변호사인 자녀는 법률회사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지만, 부모가 잡화점 점원이면 견학 행사가 열리더라도 잡화점에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고, 부모가 실직자인 자녀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게 된다. 불평등의 바퀴는 그렇게 구르게 된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행사 때 "견학할 곳이 없는 동네 아이들을 데려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보여주고 근면과 결심으로 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넷째, 학교 학부모회의 기금 모금이 학교별로 큰 차이가 있는데, 교육청이 제도를 개선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먼저 기부금의 절반을 이를 더 필요로 하는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 보내라"고 리브스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유한 쪽에 있는 우리가 더 큰 공동선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평등한 기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척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20세기 초 사회보장 제도를 구비해 나가는 등 '진보의 시대'를 맞았던 때와 같이 "평등한 기회와 아메리칸 드림의 공유라는 이상에 접근하기 위해선 내부 성찰과 비판이 필요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 주거지 구획법 개정이나 학교 입학제도 개혁, 세법 개혁 등 "진보적 정책들이 모두 중상층의 반대라는 벽에 좌절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며 "불평등은 그저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일 리브스 연구원의 이론은 '미국의 시장은 실력주의인데 시장 진입 전 단계의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전제에 의문이 드는 등 허점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불등평의 증감과 그 요인으로 기술과 직종에 대한 분석에만 초점을 맞춰온 노동경제학적 관점을 벗어나 철학자, 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등도 참여하는 쪽으로 불평등 논의가 풍부해지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이 매체는 풀었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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