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만나는 자리…김승희·허영선 새 시집

입력 2017-07-09 14:15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자리…김승희·허영선 새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해녀들'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죽음의 문제는 죽음 혼자 풀 수 없고/ 삶의 문제도 삶 혼자서 풀 수가 없듯이/ (…)// 아무도 아무것도 혼자 어둠을 밝힐 수는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부분)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시인 김승희(65)가 열 번째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난다)를 냈다. 도마 위에 올라 몸부림치는 도미의 짧은 생이 보여주듯, 삶은 언젠가 닥쳐올 죽음을 항상 품고 있다.

"도미가 도마 위에 올랐네/ 도미는 도마 위에서/ 에이,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건들거리고 산 적도 있었지,/ 삭발한 달이 파아랗게 내려다보고 있는 도마 위/ 도미/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미는 도마 위에서' 부분)

"비늘을 벗기고 보면 다 피 배인 연분홍 살결"일텐데 도미는 왜 "도마 위에서 맵시를 꾸며보려고" 할까. 시인은 삶과 죽음의 얽힘에 체념하기보다, 오히려 거기서 가능한 최대치의 희망을 찾으려고 애쓴다. 봄날 현수막 펄럭이는 떴다방처럼, 속아도 속여도 희망인 것이다.

"어떤 보름달도 내 마음의 보름달을 다 채울 수는 없다/ 내년의 대보름달을 백번 기다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벽 시장에 가다가/ 그 달의 부족한 부분을 담고 갔다// (…)// 희망하는 것은 가장 상처받기 쉽게 되는 것이지만/ 피뢰침은 번개를 피하지 않는다" ('새벽 시장' 부분) 192쪽. 1만1천원.






제주에서 태어나 생활하는 시인 허영선(60)은 세 번째 시집 '해녀들'(문학동네)을 냈다. 제주 해녀들에게 바치는 시편들이 시집 전체를 채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이다.

1부 '해녀전'은 해녀 한 명이 곧 시 한 편이다. 1931∼1932년 일제 수탈에 맞선 제주해녀항쟁을 주모했다가 옥살이를 한 해녀 김옥련, 갓 스물에 '징용 물질'로 일본에 건너가 나이 아흔까지 일본에서 홀로 사는 해녀 홍석낭, 제주 4·3항쟁 시기 열여덟의 나이로 결혼했다가 일 년도 되지 않아 남편을 잃은 해녀 오순아… 해녀들은 4·3항쟁으로 '무남촌'이 된 제주를 지키고, 육지에 일본까지 나가 신산한 삶을 살았다.

"열여덟 새색시/ 사상으로 죽은 남편/ 물질로 일본 학비 조달 톡톡히 했지// 여덟 살에 갓물질 열네 살에 강원도 통천 바당/ 흐린 세월 훨훨 물질로 풀며 돌다/ 전국 팔도 포목상 잡화상 오사카 비단 장사/ 보따리 하나 들고 뱅뱅/ 죽었다 살았다 하던 고사장님" ('해녀 고차동' 부분)

2부 '제주 해녀들'은 그들이 왜 죽음을 껴안고 바다에 뛰어드는지 설명한다. 4·3항쟁의 아픔을 운명처럼 품은 해녀들은 딸이자 아내·엄마로서 물질에 나섰겠지만, 사랑이 아니라면 죽음의 인력이 가져다주는 그 공포를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 다섯 번/ 파도 면벽수도하는 저 바다 젊은 바위처럼/ 끄떡없이 자리 지켜 앉아 있다보면/ 서서히 가슴엣 불 조금씩 졸여지는 것 느껴지지//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 그러니/ 너를 품지 않고/ 어떻게 물에 들겠는가"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부분) 116쪽. 8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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