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 어기고 싶고, 따라가면서도 뒤집고 싶다"

입력 2017-08-03 19:34  

"관습 어기고 싶고, 따라가면서도 뒤집고 싶다"

신작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낸 소설가 정지돈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정지돈(34)은 2013년 등단해 지금까지 한 권의 소설집을 냈을 뿐인 신예 작가다. 그러나 그가 불러일으킨 논쟁의 폭은 작품 목록을 훨씬 초과한다.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2016)는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를 비롯한 20세기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로도 읽힌다. 소설들은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실들의 조합이고 서사의 뼈대를 추리기 어렵다. '지식조합형 소설', '도서관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나왔고 '소설이냐 논픽션이냐' 논쟁이 일었다. 어떤 독자들은 '지루함의 연속', '술주정뱅이의 주사' 같은 악평을 쏟아냈다.

작가는 2015년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대상, 지난해 문학과지성사가 주는 문지문학상을 받았다. 이른바 문단은 정지돈의 작품에서 한국문학의 미래를 찾고자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지난해 서평가 금정연과 함께 낸 대담집 '문학의 기쁨'에서 "We are the future"(우리가 미래다)라고 외치면서도 "미래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신작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스위밍꿀)에선 변화가 감지된다. 원고지 380매 분량의 경장편 소설에선 서사가 어느 정도 손에 잡힌다. 소설은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2063년 한반도에서 짐과 안드레아가 무하마드 깐수를 태우고 만주까지 가는 이야기다.

무하마드 깐수는 1990년대 아랍인으로 위장 입국해 간첩활동을 하다가 적발돼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 깐수가 맞다. 정수일(83)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의 고향이 만주다. 그는 간첩 이전에 세계적인 문명교류사 연구자였다. 129세의 깐수와 함께 평양과 함흥을 거치는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위기감 속에서도 묘하게 들뜬다. 작가에게 물었다.






-- 스타일이 바뀐 건가.

▲ 이번 책에도 첫 소설집의 요소들이 들어있다. 깐수도 실존 인물이고 평양 류경호텔 에피소드도 그렇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시리아 난민들에게 치킨버거만 줬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요소를 서사적 흐름과 접합시켰을 때 나만의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사적, 장르적으로 전개되면 몰입이나 스릴, 긴장감 위주로 가는데 다른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 첫 소설집은 평가가 극과 극이었다. 욕도 많이 먹었다.

▲ 이렇게 많이 먹을 줄 몰랐다. 다 괜찮은데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은 이러면 안된다' 하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소설에 대한 믿음은 종교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러이러한 문학이 있어야 한다는 교리 같은 건데 이단이니까 공격할 수밖에 없다. 믿음이 침범당했다고 격분하는 메커니즘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 이번엔 한발 물러선 것인가.

▲ 아니다. 소설집의 작품들도 유사한 것 같지만 형식적으로 달랐다. 문장을 사용하는 방식, 서술하는 방식이 전부 다르다. 관습을 어기고 싶고, 관습을 따라가면서도 뒤집고 싶은 부분이 늘 새롭게 나온다. 그걸 작품마다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문학3에 연재 중인 소설은 첫 소설집과 비슷한 경향이 있다.

-- '겁쟁이'로 보이는 인물이 뚜렷하지 않은데.

▲ 소설에 파이클링(Feigling)이라는 이름의 보드카가 나온다. 정확히 클라이너 파이클링인데 직역하면 '작은 겁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있는 독일 보드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번역기를 돌리면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라고 나온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보통 사람이 생각해서 만들기 어려운 조합이다. 주제 면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나 인간성이 변하는 지점이 있다. 이런 식의 제목 붙이기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 정수일 교수가 주인공으로 보이는데.

▲ 그 분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삶 자체가 너무 독특하다. 우리 세대에는 많이 안 알려져 있어 흥미가 갔다. 고다르 같은 예술가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믿음 같은 것들이 있다. 학문적 열의, 민족의 미래에 대한 열망, 미래에 대한 긍정적 확신. 우리 세대에겐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전 세대 학자와 예술가들만 가질 수 있는 강렬한 것이다. 짐 같은 인물과 대비되고.

-- 북한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건축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 도시 형태 같은 것들이 흥미로웠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사회주의 건축의 유토피아를 실현하려 했다. 한국보다 훨씬 계획적이었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엉망이 되긴 했지만. 간첩이나 군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북한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전반에 관심이 있다.

-- 소설에서 짐은 아무런 의미도 기능도 없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 같다.

▲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고 늘 양가적 상황을 오간다. 글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미화한다는 건 목표와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짐은 의미에서 벗어난, 목적이나 이상을 가지지 않은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로서 나는 이상 같은 것을 가지지 않으면 소설을 쓰기 어렵다. 현실로 돌아오면 냉소가 더 크다. 그 사이에서 늘 이동하고 있다.

-- 소설가로서 이상은 뭔가.

▲ 걸작을 쓰고 싶다는 것. 예전엔 소설이나 예술이 뭔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뭔가를 실현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 소설로 뭔가를 실현할 수 있나.

▲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 다음날은 없다고 생각했다가 왔다갔다 한다. 21세기에 문학의 위치가 있는데 여기서 내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 없지 않나.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동력이 줄어들면 소설 쓰기를 유지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알고 있지만 내 작업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는 붙들어야 한다.

-- 영화 만들다가 소설을 쓰고 있다. 영화가 못하는 걸 소설이 할 수 있나.

▲ 내 소설의 많은 정보들은 구술적 역사다. 영화로 치면 다큐멘터리 같은 것. 다큐 중에서도 하드한 정보가 집적된 다큐다. 그런 걸 전달하기엔 책의 형태든 뭐든 아직까지 언어가 더 좋다. 그런 면에서 영화처럼 재미는 못 줘도 영화에 부족한 지점을 문학이나 소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소설에도 기억과 심리와 사상을 오가는 장면이 있다. 이런 건 언어로 표현하는 게 가장 적당하다. 한 문장 사이에 묘사와 정보, 생각을 담고 시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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