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 호돌이 디자인 복원하는 작가들의 '응답하라1988'

입력 2017-09-11 07:00   수정 2017-09-11 10:27

자비로 호돌이 디자인 복원하는 작가들의 '응답하라1988'

88올림픽 디지털 복원하는 이재훈·이성은 "IOC 채널 뚫는 데만 4개월"

"퇴직금까지 탈탈 턴 까닭?…韓 역량 폭발한 디자인은 우리 유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띄우기에 모두 열을 올리는 사이, 1988 서울 하계올림픽(서울올림픽)을 파고드는 젊은이들이 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온종일 컴퓨터와 씨름 중인 이재훈(34)·이성은(30) 디자이너다.

각각 산업디자인,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이들 작가는 길게는 7년, 짧게는 3년 근무한 직장도 그만둔 채 서울올림픽 디자인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터넷에서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만 검색해 봐도 수백 수천 개 이미지가 뜬다.

두 작가가 "퇴직금까지 쏟아 부으며" 매달린다는 디지털 복원 작업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최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물론 남아있는 서울올림픽 디자인 결과물은 많죠. 이들을 벡터화, 즉 디지털로 데이터화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어요. 원본 자료가 시간이 지나면서 들러붙거나 곰팡이가 스는 등 훼손된 부분도 있었고, 당시 수작업으로 한 것들이라 데이터로 변환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이재훈 작가)









두 사람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올림픽기념관에 보관된 서울올림픽 자료 이미지를 고해상도 스캔한 다음, 이를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벡터로 복원했다.

이미지 없이 가이드(설명)만 남아있는 경우에는 가이드를 분석해 시각화했다.

서울올림픽에 활용된 디자인언어의 각종 규칙, 즉 서체와 위치, 크기, 색깔, 간격 등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디지털로 남게 된 것이다.

여기저기에 흩어진 서울올림픽 디자인을 한 데 모았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성은 작가는 "단순히 스캐닝만 한 이미지를 확대하면 깨진다"라면서 "벡터는 원본 소스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에 마음대로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스캔하는 일이 무어 그리 대수냐 라고 묻을 수도 있겠지만, 작업은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모든 디자인 저작권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귀속된다.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자료 소장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에 협조 방안을 문의했으나, IOC와 연락을 취하는 것은 작가들 자신의 몫이었다.

"IOC 채널을 뚫는 데만 4개월이 소요됐어요.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홈페이지를 뒤져서 관계기관 수십 곳에 이메일을 보냈죠. 다행히 스위스 올림픽 국제도서관 관장의 도움으로 IOC 내 올림픽 유산 복원 관련 부서와 연결됐어요." (이재훈 작가)

자력으로 IOC와 대화 채널을 구축한 이후에야 올림픽기념관에 소장된 원본 아날로그 자료들의 스캔 작업이 가능해졌다.





재정적인 부분도 두 젊은 작가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돈 문제가 제일 크지 않느냐는 물음에 두 작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 공공 데이터 프로젝트에 여러 차례 지원했지만, 대상에 들지 못했다.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인데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만 간간이 들었을 뿐이었다.

결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https://www.tumblbug.com/88olympic)을 통해 서적 등 제작 비용 모금에 나섰다.

이들이 퇴직금까지 부어 가면서 작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량이 폭발한 프로젝트에요.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죠.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전 역량을 모아서 드림팀을 꾸린 것이죠. 서울올림픽 디자인이 잘못된 형태로 계속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도 너무 아쉽죠." (이성은 작가)

삼태극 엠블럼과 휘장을 만든 양승춘 디자이너를 비롯해 '호돌이 아빠' 김현, 황부용, 조영제 등 '드림팀'의 업적을 신나게 열거하는 작가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디자인은 지금도 디자이너들이 연구하는 주제 중 하나다.

뛰어난 공공 디자인 유산이 이같이 공유되고 전승되려면 메뉴얼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디자인을 무척 좋아한다는 두 작가가 서울올림픽에 눈을 돌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2015년 12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미국항공우주국(NASA) 디자인 아카이브 전시였다.

이들의 작업은 곧 2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1권은 디자인 요소들, 2권은 그 요소들이 적용된 유니폼 등을 담고 있다.

원본 소스를 제공해준 IOC 올림픽기념도서관과 국내 올림픽 기관인 서울올림픽 기념관에 각각 10권씩 기증할 예정이라고 작가들은 전했다.

"막상 덤벼들고 나니 두 사람이 할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는 이들은 대전엑스포를 비롯해 우리나라 디자인 유산의 체계적인 정리와 복원에 사회가 힘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디자인의 위상은 어떤지 궁금했다.

"우리나라 디자인의 완성도는 세계적 수준인데도 너무 특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1970년대, 80년대만 해도 간판이나 메뉴판 하나도 폰트 대신 레터링으로 작업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가 자기만의 색깔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재훈 작가)

"요즘 우리나라 디자인은 철만 바뀌면 바로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1970년대, 1980년대 디자인에서 더 낭만을 느끼고요." (이성은 작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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