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스푸트니크 발사 60년과 지구촌 시대

입력 2017-09-26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스푸트니크 발사 60년과 지구촌 시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57년 10월 4일 금요일 밤, 미국 워싱턴DC의 소련대사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국제지구관측년(IGY:1957년 7월 1일∼1958년 12월 31일)을 기념해 월요일부터 열린 '로켓과 인공위성' 주제의 학술 세미나를 마치고 참석자 간에 친교를 다지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소련은 우주 개발계획을 극비에 부쳤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과학자들은 소련 과학자들에게 그와 관련된 질문을 퍼부었다. 소련 과학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묵묵부답하거나 동문서답하는 가운데 술에 취한 한 학자가 "우리는 조만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이라면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라고 재차 묻자 "1주일 아니면 한 달"이라고 답변했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고 "농업국가인 소련이 어떻게…"라거나 "냉장고도 제대로 못 만드는 주제에…"라는 등 비아냥거림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과학자 사이에 섞여 앉아 있던 뉴욕타임스의 월터 설리번 기자는 신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타스통신(소련의 국영 뉴스통신사로 이타르타스통신의 전신)이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고 보도했으니 대사관 관계자에게 알아보라는 지시였다. 설리번은 파티장으로 뛰어들어가 "그게 정말로 올라갔대!"라고 외쳤다. 누군가 밤하늘에서 확인해보자고 제안하자 다들 우르르 옥상으로 몰려 올라갔다. 인공위성이 맨눈으로 보일 리 없었으나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스푸트니크 1호가 그들의 머리 위를 두 차례나 지나간 뒤였다.


그로부터 4시간쯤 전인 4일 오후 10시 28분(소련 모스크바 시간 기준,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시차는 7시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기지에서는 아파트 10층 높이(29.2m) R-7 로켓이 화염을 내뿜으며 솟아올랐다. 로켓 상단부에는 지름 58㎝, 무게 83.6㎏의 공 모양에 2.4∼2.9m 길이의 안테나 4개가 달린 스푸트니크 1호가 탑재돼 있었다. 이 인공위성은 지상에서 227∼947㎞ 떨어진 지구궤도를 초속 8㎞의 속도로 96.2분마다 한 바퀴씩 하루에 16번 돌며 '삐익 삐익' 하는 신호음을 지구로 보냈다.




러시아어로 '동반자'를 뜻하는 스푸트니크의 발사 성공은 우주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소련으로서는 미국을 누르고 우주 개발의 선두주자로 나선 쾌거였지만 미국인에게는 기술 경쟁에서 뒤졌다는 자존심의 상처에 그치지 않고 경악과 공포로 다가왔다. 지구의 중력을 뚫고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키려면 로켓 기술이 관건인데, 로켓에 핵탄두를 장착해 발사하면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설립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3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보다 6배나 무거운 스푸트니크 2호에 생명체인 개를 실어 우주로 보냄으로써 미국을 또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로도 1961년 4월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보스토크 1호), 1963년 6월 최초의 여성 우주인 탄생(보스토크 6호), 1965년 3월 최초의 우주 유영(보스호트 2호) 등 소련은 미국이 쫓아오려고 하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 발짝씩 앞서갔다. 미국은 1965년 12월이 돼서야 제미니 6호와 7호의 랑데부 성공으로 자존심을 되찾았고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확실한 우위를 확보했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 10년 뒤인 1967년 10월 10일 외기권조약(일명 우주조약)이 탄생했다. 1966년 12월 유엔총회를 통과한 조약안이 이듬해 1월 27일 60개국의 서명을 거쳐 정식으로 발효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0월 13일 비준했고 지금은 125개국이 가입된 상태다. '우주는 모든 나라에 개방되며 어느 나라도 영유할 수 없다', '달을 비롯한 모든 천체는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할 수 있다',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의 궤도비행, 천체상이나 우주공간에서의 군사기지 설치나 핵실험 등을 금지한다' 등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1999년 유엔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와 우주조약 발효를 기리고자 10월 4∼10일을 '세계 우주주간'으로 제정, 해마다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2017년은 이 두 가지 뜻깊은 역사적 사건이 각각 60주년과 50주년을 맞는 해다.





영국의 공상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는 1945년 소설 '외계로부터의 전달'에서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말을 처음 썼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무선통신으로 온 인류가 한동네 사람처럼 정보를 공유하고 지낸다는 미래 세계를 펼쳐 보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는 지구 중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3만6천㎞ 상공에서 지구의 자전 속도와 똑같은 빠르기로 움직이는 정지궤도 위성의 개념도 창안했다. 이는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기 12년 전이고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 신컴 2호가 지구궤도에 안착하기 18년 전이다. 옛 선조들은 아득히 먼 하늘을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라고 했다. 9만 리를 미터법 단위로 환산하면 3만6천㎞이다.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집이 성냥갑처럼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점으로 보인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자기가 사는 동네의 경계나 지역 구분이 대수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만리장천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국경이나 대륙 구분마저 무의미해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끼리 모이면 어느 지역 출신이라고 말하고, 외국인을 보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해하지만, 머나먼 우주에서 외계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누구나 지구가 고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가오는 세계 우주주간에는 우주 개발의 역사와 의미를 생각하는 것 말고도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심경으로 지구촌이란 개념과 인류의 미래를 떠올리고 세계시민의 역할을 다짐해보는 건 어떨까. 피부색이나 언어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니까.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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