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시인 이야기 집대성한 시화집 '용등시화' 찾았다

입력 2017-10-01 07:00   수정 2017-10-01 10:28

구한말 시인 이야기 집대성한 시화집 '용등시화' 찾았다

안대회 교수, 1938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자료 확인

"18∼19세기 시단을 쇠퇴 아닌 계승·발전 과정으로 조명"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8세기 중반 이후 100여 년간의 시단(詩壇) 동향을 상세하게 정리한 시화집(詩話集) '용등시화'(榕燈詩話)가 발굴됐다.

용등시화는 한문학자 이가원(1917∼2000) 전 연세대 교수가 쓴 '옥류산장시화'(玉溜山莊詩話)에 일부가 소개돼 그 존재는 알려졌으나 자료의 거의 전부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은 고종 시대 시단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저작이 극히 드문 상황에서 매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무정(茂亭) 정만조(1858∼1936)가 편찬한 '용등시화'를 1938년 9∼12월에 간행된 신문 '매일신보'에서 찾아냈다고 1일 밝혔다.

용등시화는 정만조가 을미사변에 연루돼 전남 진도에 유배돼 있던 1904년을 전후한 시기에 쓴 작품이다. 정만조는 말년에 친일을 했던 반역자지만, 조선 후기에는 개화파 관료로 활동한 재능 있는 문사였다. 이가원은 무정에 대해 "젊은 시절에 상당히 기개와 절도가 있었고 문사(文詞)가 편편(翩翩)했다. 영재(寧齋) 이건창 무리도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했다.

문재(文才)가 빼어났던 정만조가 집필한 용등시화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백사(白沙) 이항복, 여류 시인 허난설헌, 무정과 동시대를 살았던 매천(梅泉) 황현 등 다양한 시인에 대한 비평을 담은 글 97칙(則)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고종 시대 전에 관한 작품은 17칙으로, 대부분의 글은 당대의 시인을 다뤘다.

안 교수는 "무정은 정조 시대를 근대 한문학의 기점으로 간주했다"며 "조선 시풍의 양대 조류를 그래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 살았던 사가(四家·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자하(紫霞) 신위의 경향과 그에 상반된 조선 중기 이전의 경향으로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이어 "정만조는 조선 중기의 홍춘경, 정사룡, 최립은 절조로 명성이 높지만 결함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와 동시대 인물인 강위나 이건창의 시는 결함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무정의 이러한 관점은 문학 전개 과정을 생명체와 같이 이해해 18세기 이후 시단이 쇠퇴했다고 분석한 일제강점기 문학사가의 주류적 시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정만조는 18세기와 19세기 시단의 전개 과정을 쇠퇴가 아닌 계승과 발전으로 이해했다"며 "용등시화는 18∼19세기의 시단 구도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본 거의 첫 번째 저술"이라고 평가했다.

무정은 구한말에 시인 모임인 남사(南社)의 일원으로서 강위, 이건창 등과 함께 약 30년간 문단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그는 타인의 견해를 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바를 용등시화에 서술했다. 또 오늘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항시인과 지방 문인의 작품을 부각하기도 했다.

용등시화의 참신하고 독창적인 시각은 무정이 황현과 겪은 일화에서 알 수 있다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무정은 황현이 사마시에 합격했을 때 마침 병이 들어서 축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받은 황현이 무정의 집에 찾아왔다가 시를 지었는데, 그중 "의사와 종아이도 모두 시를 잘 쓰네"란 구절로 인해 사달이 났다. 이에 대해 무정은 "그 날의 사실에 꼭 들어맞도록 쓴 시였지만, 의사는 자신과 종아이를 나란히 거론한 것 때문에 대단히 격분하여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면서 욕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한편 안 교수는 옥류산장시화에 실린 글 가운데 65칙의 출처가 용등시화라는 사실도 규명했다.

안 교수는 "이가원 전 교수가 출전이 용등시화임을 밝힌 기사는 1칙이고, '무정이 일찍이 말했다'며 전재한 기사는 23칙으로 나머지 41칙은 출처를 기록하지 않았다"며 "옥류산장시화에서 조선 말기의 시인을 묘사한 내용의 다수는 용등시화를 거의 그대로 인용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요한 사료가 그동안 발굴되지 않은 데 대해 안 교수는 "학자들이 일제강점기 신문에 용등시화가 연재됐다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며 "무정이 쓴 책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정은 친일 행각을 벌여 매도와 질타의 대상이 됐지만, 용등시화에 실린 내용은 19세기의 지성계를 이해하는 뛰어난 저술로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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