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화가 임옥상 "촛불 1주년에 '트럼프 탈' 쓰는 까닭"

입력 2017-10-28 07:00   수정 2017-10-28 09:07

블랙리스트 화가 임옥상 "촛불 1주년에 '트럼프 탈' 쓰는 까닭"

광화문에서 500명과 '노 워' 외치는 트럼프 가면 퍼포먼스 계획

"촛불 자축할 때 아냐…광장에서 평화 외쳐야"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작년 늦가을부터 올해 봄이 오기 전까지 화가는 광장에서 박을 터뜨리고, 공을 굴리고, 붓글씨를 썼다.

지난해 10월 18일 광화문에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채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촛불집회 내내 쉼 없이 퍼포먼스를 선보인 임옥상(67) 작가 이야기다.

광화문 '촛불집회 1주년 대회'에서 선보일 가면 퍼포먼스 준비로 바쁜 작가를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로스앤젤레스 시메이갤러리 개인전 마무리를 위해 계획했던 미국행도 결국 이 때문에 취소했다는 작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촛불 1주년을 자축할 때가 아닙니다. 여의도니, 광화문이니 편 가르기를 하는 것도 잘못됐고요. 지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때 아닙니까."

이번 퍼포먼스가 겨누는 대상은 다음 달 7일부터 이틀간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작가는 '촛불집회 1주년 대회'에서 가로·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트럼프 탈에 '노 워'(NO WAR) 붉은 글씨를 써넣을 계획이다. 우레탄폼과 신문지 등으로 만든 이 탈은 지난달 17일 폐막한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바람 일다'에 나왔던 '가면무도회' 작품 중 하나다.

작가와 임옥상미술연구소의 제자들은 시민에게 나눠줄 작은 트럼프 가면도 500개나 준비했다.

트럼프 탈을 앞세운 채 시민과 함께 행진하면서, 가면 쓴 시민과 무용가들이 어우러져 춤추는 현장을 통해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촛불 정신이 염원한 것은 평화이며, 어떠한 특정 정권을 창출하자는 것이 아니었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한국에서 '촛불 정신'을 배워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1979년 발족한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으로 주요 민중미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전에도 간간이 광장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촛불집회에는 다른 일도 제쳐놓은 채 에너지를 불살랐다. 그 덕분에 촛불의 풍경도 더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보통 박수 치고 행진하는 정도만 하는데, 광장에서 좀 더 의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함께 호흡을 맞춤으로써 시민으로서 일종의 소속감이랄까, 책임감 같은 것도 더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반대 진영에 선 이들 중에는 그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분개하거나 손가락질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일종의 해학과 풍자요, 소외됐던 이들의 작은 놀이"라면서 "퍼포먼스가 사람을 죽이거나 국가를 도탄에 빠뜨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작가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촛불 퍼포먼스로 '백만백성'을 꼽았다.

광화문 사거리부터 대한문까지 길이 500m, 폭 1.5m의 흰 천을 펼친 뒤 '백만백성' 목소리를 즉석에서 붓글씨로 써내려간 작업이다. 먹물 2ℓ 20통과 자루 길이만 100cm가 넘는 대형 휘호 붓이 동원됐다.

당시 진눈깨비 때문에 퍼포먼스를 중단했지만, 즉흥적으로 남은 천을 들고 다 함께 청와대로 행진하던 순간을 그는 잊지 못한다고 했다. "원래 계획했던 붓글씨보다 더 멋진 퍼포먼스가 됐죠. 백의민족이 순백의 순수한 마음을 들고 움직인 거죠."

지난 수년간 블랙리스트 화가로 살았던 작가는 문재인 정부를 두고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정책이 없다"면서 평가를 유보했다. 그는 대신 문화·예술의 생활화를 연신 강조했다.

"한류를 정책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이런 것보다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삶 속에서 문화예술을 누리는 것이 중요해요. 시민이 평등하게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문화예술을 제대로 누리면서 품위 있게 살아갈 토대를 만들기 위해 촛불이 열심히 싸운 것 아니겠습니까."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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