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노화고 조형일 교사의 녹록지 않은 하루…아버지·형 노릇까지
열악한 관사 생활·아쉬운 처우·섬마을 발령 형평성 문제 아쉬워
(완도=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노화고등학교?"
전남 완도 노화고로 발령받았을 때 어디에 있는 학교인지 인터넷 검색부터 했습니다.
노화고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고 3학년 1반 담임을 맡은 저는 섬마을 학교 선생님 조형일입니다.
아내와 세 살배기였던 아들을 데리고 한반도 최남단 해남 땅끝마을에서 뱃길로 40분가량 떨어진 노화도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만으로 3년이 되어갑니다.
많은 분이 섬마을 선생님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합니다.
여수 돌산도에서 태어났고 교단에 선 경력도 짧지 않지만, 제게도 섬마을에서 하나뿐인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녹록하지만은 않습니다.
관사 생활부터 소개하자면, 지난해 신안에서 젊은 교사가 몹쓸 일을 당한 뒤로 열악한 환경을 걱정하는 분이 여럿 계십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낡은 시설물을 고치는 등 나아진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가족까지 돌보며 생활하기에 섬마을 학교 관사는 여전히 불편합니다.
세 식구 보금자리인 관사 내부까지 속속들이 공개할 수 없으나, 여기 집 안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쌍문동 덕선이네 전세방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도시 아파트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니 유년시절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수시로 출몰하는 지네와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들끓는 벌레는 이제 익숙한 환경이 됐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외지인인 아내가 섬 생활 적응에 힘들어할 때면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나마 저는 가족이 함께 있어 15평짜리 집에서 생활하는 데 혼자 와 있는 동료들은 대학가 고시원이나 다름없는 단칸방에 몸을 누이는 처지입니다.
교사로서 제 일과는 아침 8시쯤 시작해 밤 11시까지 이어집니다.
노화고는 학급 5개, 학생 101명, 교원 15명으로 전남지역 섬마을 고등학교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커 선생님들 업무량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고3 제자들 진학까지 맡고 있어 수업 준비와 여러 업무 처리로 야근은 물론 주6일 근무를 하기 일쑤입니다.
우리 학교는 교육기관이자 학생들의 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딱히 갈 곳 없는 학생들을 위해 밤 10시까지 불을 밝히며 여러 활동을 이어갑니다. 섬마을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때로 아버지나 어머니, 형, 언니 역할까지 해야 하기에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 모두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생들에게 할애합니다.
우리 학교는 첫 임용지로 섬마을에 온 20∼30대 젊은 선생님이 전체 교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광주나 여수, 목포에서 온 이들은 주말이면 왕복 6∼7시간씩 걸리는 고향 집을 다녀오기보다는 보통 관사에 머물며 휴일을 보냅니다. 밀린 잠을 자고 TV를 보거나 청소와 빨래 등 소일거리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주말은 너무나 길고, 선생님들 나이 또한 젊어 지켜보는 제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벽지학교 학생에게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자는 사회적 공감대와 달리 섬마을 선생님 자기 계발 등을 위한 고민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처우개선 또한 아득히 멀기만 합니다.
섬마을이나 산간벽지 학교 선생님에게는 매달 3만∼6만원씩 지역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특수지 근무수당이 나옵니다. 주말에 고향 집 한 번 다녀오는 여비로도 부족한 금액입니다.
누군가는 섬마을 교사들에게 주는 승진 가산점을 그에 대한 혜택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서운하기도 합니다. 광주나 목포, 여수, 순천 도심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벽지학교에서도 기간만 다를 뿐 똑같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자원하기도 하는데, 희망 부임지 발령에서 밀려나거나 신규 임용되는 교사가 대체로 섬마을에 배치됩니다. 섬마을 근무는 본인이 원하면 최대 4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제아무리 싫더라도 최소 2년은 채워야 합니다.
교원사회 내부에서는 섬마을 근무 기피로 인사철마다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단 한 차례도 섬마을 학교에서 근무해 보지 않은 선생님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섬마을 선생님의 일상이 고달프고 힘겹지만은 않습니다.
이곳 제자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서인지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며 크게 말썽 피우는 경우가 드뭅니다. 또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심성까지 고와 삭막한 도시에서 잊고 지냈던 교사의 보람을 제자들 덕분에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내 또한 섬마을 생활에 정을 붙이면서 올해 초 우리 가족은 1년 더 노화도에 머물기로 했었습니다.
내년에도 남을지는 이번 학기를 마치면 다시 의논할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와 함께 3년 전 노화고 근무를 시작한 체육 선생님도 섬을 떠나지 않고 지금껏 동료로 남아있습니다.
제 가장 큰 고민은 제자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보살피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올해 초 우리 학교는 졸업생 48명을 떠나보내고, 신입생 17명을 맞았습니다.
재학생 수가 줄수록 교원 숫자와 학교 예산도 덩달아 작아질 것입니다.
우리 학교는 전남 도서지역에서 나름 규모가 큰 편인데도 음악과 미술 과목 담당 선생님이 없는 형편입니다. 이웃 섬마을 선생님들이 여객선을 타고 2∼3개 학교를 돌며 음악과 미술을 가르칩니다.
학교 살림이 궁핍해 가까운 학교끼리 교구를 나눠쓰기도 하고, 행사를 치를 때면 여기저기서 돈을 아끼느라 안쓰럽기도 합니다.
더구나 현행 입시제도에서 도서벽지 출신 학생들은 일반 농어촌학교 학생들보다 불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농어촌이라고 해서 사정이 모두 같은가요.
사교육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한 섬마을 제자들이 육지 아이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늘어가는 빈 교실과 책상들을 볼 때면 '우리 학교가 언제까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는 합니다.
섬마을 학교를 살리자는 다양한 대책과 방안을 많이들 얘기하십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소중하고 꼭 필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자들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 공부하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노력에 섬마을 학교를 살릴 수 있는 해답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 이 기사는 전남 완도군 노화고 조형일(41) 교사가 전하는 교육 현장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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