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광석 형 "서해순 거짓말탐지기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

입력 2017-11-06 08:00   수정 2017-11-06 08:15

故김광석 형 "서해순 거짓말탐지기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

김광복 씨 인터뷰…"서연이 정신병원 감금설보다 사망이 더 충격"

"광석이 사망 당시 수사팀 교체 진정서도 제출…부검감정서도 못봐"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광석이가 남긴 재산 가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광석이와 가족에게 해를 끼친 원인 제공자가 그 권리를 누리고 또 광석이를 기리고자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분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가수 고(故)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 씨는 "그의(김광석의 부인 서해순 씨) 입에서 더는 광석이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답답하고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김씨는 1996년 김광석의 사망 이후 시작된 서해순 씨와의 저작권 분쟁이 2008년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일단락된 지 10년 만에 다시 서씨와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8월 말, 이상호 기자가 연출한 영화 '김광석' 개봉이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서연 양이 저작권 분쟁이 한창이던 2007년 12월 사망한 사실이 10년 만에 알려져 충격을 줬다. 김씨는 서씨가 서연 양이 급성 폐렴으로 위독할 때 119 신고를 늦게 해 사망하게 하고, 딸의 사망 사실을 숨긴 채 저작권 소송을 종료시켰다며 서씨를 유기치사·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씨는 "당시 재판부가 서연이에게 (4장의 음반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한 것은 1996년 부친이 서씨와 쓴 합의문을 '계약' 관계로 봤기 때문"이라며 "서씨가 사망 사실을 재판부에 알렸더라면 계약의 실질적인 당사자인 아버지와 서연이가 모두 사망(당사자 부존재)했으므로 계약은 무효가 된다"고 주장했다.

합의문의 골자는 '부친이 사망하면 부친이 갖고 있던 4개 음반의 판권과 권리를 서연이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김씨는 또 수면 위로 떠오른 김광석의 타살 의혹에 대해서도 "유족으로선 차고 넘치는 정황상 자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서씨가 여러 매체에서 하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거짓투성이"라며 "오랜 시간 말을 아꼈지만, 망자에 대한 명예를 훼손할 정도여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김광석의 일기와 당시 진정서 등의 자료를 보여주며 3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서씨를 사기 혐의로 고발한 이유는 뭔가.

▲ 1996년 6월 아버지는 서씨가 경호원이라며 2명을 대동하고 온 날 홀로 나가 합의문을 썼고, 같은 해 7월 '유증'(遺贈)을 남기셨다. 아버지는 합의문이 서씨의 강압으로 작성한 것이니 고민 끝에 다시 '4개 음반 저작권을 부인과 아들에게 넘겨준다'는 유증을 공증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합의문은 '계약'이니 유증에 우선한다며 서연이의 권리를 인정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조정이 성립될 때인 그해 10월에는 이미 서연이가 사망한 상태였지만 서씨는 재판부에 알리지 않았다. 실질적인 계약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으니 계약 관계도 무효가 된다. 다음으로 효력이 있는 아버지의 유증이 인정되거나 처음부터 저작권의 권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퉈볼 여지가 생겼다. 서씨는 지난 9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연이가 없으면 제가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 서연이를 잘못하게 했을까요?"라고 말했다. 결국 저작권을 위해 딸의 사망 사실을 숨겼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 다시 유족 간에 저작권을 놓고 다투는 모양새가 됐는데.

▲ 광석이가 1993년 음반 판권을 아버지에게 돌려놓았다. 그때 이미 서씨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였다. 광석이는 1992년 5월 서연이 돌 때 서씨가 재혼이란 사실을 알았다. 평창동 집에서 서연이 돌잔치가 있었는데 서씨의 이모가 부엌에서 '저번 남편보다 인물은 못하다. 돈은 잘 벌지 몰라도'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그때 광석이가 이혼하려 했다. 광석이가 재산 주고 기타 하나 들고나오겠다고 했더니 서씨가 저작권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아버지가 이혼을 반대했고, 광석이는 서씨에게는 저작권을 주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아버지에게 판권을 넘겼다. 서씨가 저작권에 관해선 이야기도 못 꺼내도록 한 것이었다.

-- 하지만 서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아버지에게 판권을 넘긴 사실을 알았으며 현금으로 돈을 벌 때여서 세금이 많이 나온다고 해 명의만 시아버지 이름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던데.

▲ 사실이 아니다. 서씨는 광석이가 떠나고 신나라레코드에 저작권료를 청구하면서 그 사실을 알았다. 부모님이 아들 잃은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매일 전화해 '돈밖에 모르는 노인네'라고 폭언했다. 또 세금 때문도 아니다. 아버지 이름으로 하면 나중에 상속세까지 오히려 세금이 더 발생한다. 게다가 광석이가 그 당시 마포구 서교동에 집을 취득해 그 자리에 건물을 지었는데 국세청에서 바로 조사가 나오니 그걸 위해서라도 사실 본인 명의로 판권을 계약하는 게 맞았지만 아버지 이름으로 했다.

-- 서씨는 3집을 자신의 퇴직금으로 제작했다던데.

▲ 제작에 관여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데 서씨 돈으로 음반을 제작한 적이 없다. 서씨가 호텔에 길어야 2년 반 근무했는데 퇴직금이 얼마나 됐겠나. 1990년 결혼할 때도 내가 안양에 광석이 신혼집 아파트를 마련해줬다. 그런데 서씨는 재판에서도 퇴직금 3천만원으로 준비한 앨범이라고 했다. 1996년 아버지와의 첫 저작권 소송에서는 음반제작에 참여했다고 거짓 확인서까지 만들어 제출했다. 그 앨범은 마당세실극장 공연 때 나온 돈, 불교방송 출연료, 아버지가 보탠 1천만원으로 제작했다. 처음부터 사소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혼수 해올 때도 식탁값만 1천만원이라고 했지만 식탁을 배송한 가구업체 직원 말이 '12만원 짜리인데 깎아달라고 해서 9만원에 팔았다'고 했다.

-- 또 서씨는 연합뉴스에 "시부모가 1996~2008년 가져간 로열티가 30억원은 될 것"이라고 했다.

▲ 아버지가 판권을 받기 시작한 것은 광석이가 떠난 1996년부터 돌아가신 해인 2004년 10월까지다. 월평균 400만~600만원 정도로 전체적으로는 5억~6억원 정도 될 것이다.

-- 서씨는 소송 10여 년 동안 딸 유학비가 없고 세금도 못 내서 힘들었다고도 호소했다.

▲ 당시 서교동 건물이 광석이 부부의 공동 소유였다. 이혼 얘기 하지 말라고 공동명의로 하라고 했다. 10억원 좀 넘은 건물인데 팔 때는 시세가 20억원이었다. 건물을 지을 때의 채무도 1995년 11월 즈음 모두 변제했다. 그때 광석이가 전화해 '형 빚 다 갚았어'라고 했다. 서씨가 건물을 판 수익을 다 갖고 갔는데 돈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월세만 받아도 애는 충분히 키운다.




-- 다른 쟁점을 짚어보자. 유기치사 혐의는 서연이가 사망한 지 10년이 흘러 입증이 어려울텐데.

▲ 서연이가 세상에 없다니 기가 찼다. 과거 서씨의 아이 양육 태도를 감안할 때 가능성이 없지 않아 그사이 어떻게 보살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도 서씨는 태어난 지 1개월 된 아이를 두고 영주권 연장을 이유로 홍콩에 나가 일주일가량 머물렀고, 광석이가 사망하고 어린 애를 3년간 미국의 광석이 친구 집에 맡겨두고 거의 찾지 않는 식이었다. 2006년께 서씨가 어머니에게 서연이 진료 기록과 유학 증빙 자료를 보냈는데 서연이의 특수 교육을 위한 학교라고 했지만 일반 학교였다.

-- 서씨는 그간 시댁에서 아이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했다. 연합뉴스에 "친할머니 유산 상속 때도 연락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 그렇다면 왜 광석이 제사에는 서연이를 한 번도 안 보냈나. 서연이와 왕래하지 않은 건 서씨가 식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섬뜩했다. 서씨와 연락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서연이가 미국에서 잘 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2006년인가 서연이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서연이가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하길래 어머니가 '할미 보러 안 올래' 했더니 '엄마와요. 끊어야 해요'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무척 기특해했다. 또 그해 가을쯤 10년 만에 서씨가 서연이를 데리고 내 직장에 찾아왔다. 서연이 교육 문제를 이유로 저작권 소송을 포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서연이를 생각해 분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서연이가 존재했기에 합의했다. 실종 신고를 낸 것은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을 수 있다는 제보가 있어 백방으로 알아봐도 알 길이 없길래 소재 파악을 하려는 것이었다. 사망했다는 것은 감금돼 있다는 것보다 더 충격이었다.




-- '김광석' 영화 이후 고인의 타살 의혹까지 수면에 나왔는데.

▲ 서씨의 일관된 주장은 광석이가 여자 문제와 음악적인 한계를 느껴 우울증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실체도 불분명하고 말할 때마다 내용도 달라지는 편지 얘기를 하며 광석이의 불륜을 주장해 망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지만 거론된 인물과 주위에 확인해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정작 남자 문제는 본인에게 있었다. 광석이가 자필과 컴퓨터로 쓴 일기에는 서씨가 1995년 11월 뉴욕 공연 때 자신의 친구와 사라진 뒤 이틀간 외박했을 때의 심경이 담겨있고, 나와 박학기가 화장 때 유품 챙기러 간다고 하고서 뒤진 집에서 서씨가 그 친구에게 '당신의 영혼과 나의 영혼의 교감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느 시간 속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고 쓴 편지도 발견했다. 마음고생을 한 광석이는 이혼하려는 마음을 굳혔고, 주위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사망 전날인 1996년 1월 5일 광석이는 장모에게 이혼을 통보했고 서씨가 잘못이 있으니 위자료도 줄 수 없으며 처가에서 빌려 간 2억여 원도 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처가 식구들이 집에 모이자 광석이는 이날 밤 어머니에게 전화해 '처가 식구들이 다 와 있으니 엄마도 오라'고 했지만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가시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6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 부부의 불화만으론 타살 의혹을 제기하기 어렵지 않나.

▲ 현장에 있던 서씨의 진술은 계속 바뀌었다. 광석이를 최초 발견했을 때의 모습, 광석이네 건물 마당 컨테이너 박스에 살던 서씨의 친오빠가 사건 당일 집으로 올라왔을 때의 정황도. 현장감식 등 경찰의 초동 수사도 미흡했고, 서씨 측의 진술만 듣고 자살로 수사를 진행하는 인상을 줬다. 추가 조사 지시를 받고 광석이 서재에 온 수사관들이 부실하게 수색하는 모습, 또 경찰이 '유족들이 여기 있는데 누가 재수사를 요청했느냐'며 신경질적으로 대화하는 전화 통화 등 수사팀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수사팀을 교체해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 당시 부검감정서를 본 법의학자들은 타살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서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부검에 "(광석 씨) 형, 매제들, 우리 친오빠랑 작은아버지가 들어가셨다"라고 하던데.

▲ 우리 가족 중에는 매형만 들어갔다. 그런데 부검의들이 뒤에 앉아있으라고 해 멀찍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SBS에 공개된 부검감정서를 보니 목에 '단선의 삭흔'(폭 0.5㎝ 정도)이라고 돼 있던데, 서씨가 또 다른 언론에 공개한 사망진단서의 의사소견에는 '폭이 약 1~1.5cm 되는 두 줄의 자국'이라고 돼 있었다. 왜 다른지 모르겠다. 목을 맨 채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천장을 바라본 자세였다는데 그럼 목 뒷부분에 삭흔이 생겨야 한다. 이상호 기자는 사건 당시 경찰서에서 본 사진에서 등에 계단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서씨가 공개를 원치 않아 우린 부검감정서나 사망진단서를 볼 수가 없다.




-- 서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형님이 '추모 사업으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다'고 주장했는데.

▲ 파기환송심에서 조정할 때 추모 공연이나 팬클럽 행사에서 서연이 허락을 받지 않고 광석이 노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만 달았다. 광석이를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고자 동료들이 마음을 모아 기금을 모으는 데까지 서씨가 손을 뻗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박학기 등 친구들이 공연 때 개런티를 받지 않고 아껴가며 모은 돈이 1996년부터 20년간 4억900만원이며 실제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회원들이 감사 역할을 부탁해 2013년 즈음부터 내가 감사를 맡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경과보고를 하는 등 투명하게 운영되는 조직이며 아직 장학재단 설립 최소 요건인 5억원의 자금이 마련되지 않아 준비만 하고 있다. 당연히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않았다.

-- 이번 분쟁을 통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관련인 조사를 마쳤으며, 이르면 이번 주 내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생전에도 광석이는 친구들에게 '이제 처가 돈 벌어주는 일은 그만해야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 목숨과 같다'고 했던 저작권이 죽어서도 서씨의 돈벌이로 악용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광석이의 말을 못 지켜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광석이의 저작권으로부터 얻는 금전적인 이득을 1원도 취할 의사가 없다. 단지 광석이 부녀에 대한 의혹이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접근된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서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니 거짓말탐지기라도 했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이다. 또 이번 기회에 '김광석법'이 제정돼 의혹 있는 죽음이 공소시효에 가려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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