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성공으로 세상이 바뀔까…21세기 선지자들의 신화 비판

입력 2017-11-30 17:59   수정 2017-11-30 19:53

돈과 성공으로 세상이 바뀔까…21세기 선지자들의 신화 비판

신간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한때 무자비하고 탐욕스런 독점기업가로 손꼽혔던 빌 게이츠는 어떻게 세계적인 자선사업가가 됐을까.

본인 말로는 원래 은퇴하면 재산을 기부할 계획이었는데 기부를 재촉하던 어머니가 1994년 돌아가신 뒤 기부를 본격화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됐던 게이츠의 기부는 미국 연방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반독점소송을 진행하던 1999~2000년에 집중됐고, 그 덕분에 아내와 함께 만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은 400억달러(43조원) 이상의 기부금을 보유한 세계 최대 재단이 됐다. 이 재단의 보건예산은 세계보건기구를 능가하고, 매년 수십억 달러의 자금으로 보건, 환경, 교육 등 27개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오늘날 깨어있는 양심적 기업가의 표상이자 전범으로 여겨지는 게이츠는 '박애 자본주의'의 선봉에 서 있다. 그는 질병, 빈곤 같은 전 지구적 문제 해결에 최대 장기인 금력을 적극 활용한다. 그의 영향력은 가진 돈만큼 막강하다. 게이츠는 그 많은 기부를 하고도 보유자산이 100조원 규모로 세계 1, 2위를 다툰다.

그렇다면 정말 그의 뜻대로 세상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신간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펜타그램 펴냄)은 빌 게이츠와 함께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홀푸드 최고경영자 존 매키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슈퍼엘리트로 내세우며, 대중을 열광시키는 그들 이야기의 허실을 파헤친다.

저자인 니콜 애쇼프는 급진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새로운 잡지 '자코뱅'의 편집주간이다.

셰릴 샌드버그는 베스트셀러 '린 인'(Lean In)으로 여성주의(페니미즘)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그는 "여성들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외친다. 직장과 사회의 성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자신처럼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성공해 권력 시스템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여성을 좌절시키는 요인으로서 권력구조나 제도적 차별과 같은 외적인 장애물보다는 여성의 유약함이라는 내적인 장애물의 극복을 우선시한다.

가난한 흑인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미국 미디어산업의 디바로 등극한 오프라 윈프리는 아메리카드림의 표본이다. 300명 가까운 토크쇼 관객 전원에게 자동차를 선물할 만큼 전설적인 관대함과 자선 정신을 가진 그의 얘기는 대중들을 사로잡을 만하다. 오프라는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냉혹한 현실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나선다면 얼마든지 자신과 같이 부와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고 격려하고 응원한다.

사람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팔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유기농 식품 체인 홀푸드를 세운 존 매키는 사람들에게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설파한다. 홀푸드는 월마트나 맥도널드처럼 단기 이윤에 목매지 않을뿐더러 매년 이익의 5~10%를 비영리사업에 기부하고 중소 납품업체들과의 상생경영을 실천한다. 6년 넘게 자신의 보수를 챙기지 않고 매일 프리우스 초기 모델을 타고 출근하는 매키는 환경파괴나 불평등이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잘못된 자본주의 운영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의 생각도 매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빈곤, 질병, 환경파괴 같은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건 사람이나 기업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인데,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필요하지만 소외된 영역을 돈벌이가 되는 '시장'으로 만들어주기만 하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낙관한다.

이를테면 다국적 제약사들은 말라리아나 폐렴 같은 치명적인 질병 백신 개발에 관심이 없는데 이건 후진국에서나 팔리기 때문이다. 대신 제약사들은 구매력이 큰 선진국에서 통할 대머리 치료에 훨씬 관심이 많다. 이때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같은 곳에서 쌓아둔 돈으로 말라리아 백신을 사줘서 돈을 벌게 해준다면 제약사들이 백신을 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게이츠의 생각이다. 이처럼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를 '창의적인 자본주의'라고 한다.

이들 4명의 얘기는 일맥상통한다.

우선 시장과 기업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도 결국 시장과 기업의 손에 달렸다고 믿는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정부 간섭을 줄이고 시장을 확대하고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할 경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불평등이나 환경파괴 같은 부작용까지 경감될 것으로 본다.

아울러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개별적인 자아를 강조한다. 개개인의 행불행과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근면, 성실, 헌신이라는 자본주의 노동윤리의 실천 문제로 귀착된다.

책은 이들의 얘기가 새로운 외양을 갖췄지만 기존의 신자유주의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대중이 이들에게 끌리는 건 변화가 필요하다는 정서가 폭넓게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진단한다.

어느 사회나 지배적인 질서를 떠받치고 강화하는, 구성원 다수가 수긍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저자는 4명의 주인공을 지금의 지배적 담론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21세기 슈퍼엘리트 스토리텔러'로 명명한다.

"위기와 불확실성, 불안이 팽배한 현시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 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새로운 정신의 윤곽을 결정하는 가장 큰 목소리는 슈퍼엘리트들의 것이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현 상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흡수하고 대체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설파한다. … 이들과 유사한 여러 사람들은 어째서 자본주의가 유일한 최상의 현실 가능한 시스템인지에 대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있다."

황성원 옮김. 240쪽. 1만5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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