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人] "빙상장 얼음은 매력 덩어리…자연 얼음과 정반대죠"

입력 2017-12-24 06:22  

[평창人] "빙상장 얼음은 매력 덩어리…자연 얼음과 정반대죠"
'쇼트트랙·피겨 얼음 담당' 배기태 아이스테크니션



(강릉=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얼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도 않아요. 제 인생은 얼음과의 싸움이죠."
배기태(54) 아이스테크니션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피겨스케이팅 경기장인 강릉아이스아레나의 얼음을 책임지게 된 이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얼음 위에서 보낸다.
얼음과 씨름하면서 산 지 17년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인 그는 2000년 아이스링크 설치 회사에서 컬링 얼음을 배우면서 전문 아이스테크니션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얼음 장인이다.
그는 "대부분이 어깨너머로 얼음을 배우는데, 전문적으로 얼음을 배운 저는 행운아"라며 "열심히 공부했고, 캐나다 스승도 찾아갔다. 흉내를 내면서도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가며 지금까지 왔다"고 밝게 웃었다.
얼음이 얼마나 매력적이면 인생을 얼음에 바쳤을까.
배 씨는 "얼음은 내가 해주는 만큼 그대로 표현해준다. 편법이 없다. 있는 그대로 답을 해준다. 속이지 않아서 참 좋고 예쁘다"라며 얼음 예찬론을 펼쳤다.
그런데 이 얼음이라는 것이 참 어렵다.
그는 "좋은 얼음을 찾고 만드는 게 힘들다. 나는 이렇게 판단해서 어렸는데, 그렇게 안 어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말을 안 하니 답답하다"며 '얼음이 이성 친구와 비슷한 존재'냐는 말에 "그렇다"라고 했다.


기계로 얼리는 빙상장 얼음은 자연 얼음과 반대로 언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배 씨는 "겨울에 호수는 위에서부터 얼어 내려간다. 어느 정도 얼면 온실효과 비슷하게 얼음 속 온도가 갇힌다"고 설명했다. 화천천의 경우 25㎝까지만 얼고 멈춰서 얼음에 구멍을 뚫고 물을 끌어올려 더 두꺼운 얼음을 만든다고 한다.
빙상장 얼음은 밑에서부터 얼린다.
콘크리트 바닥에 냉각관을 일정 간격으로 깔고, 그 바닥에 물을 얇게 계속 뿌린다. 10분 정도를 비처럼 뿌리면 0.2㎜ 정도 언다. 이 과정을 250번 정도 반복해야 피겨스케이팅 빙상장을 만들 수 있다. 약 42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또 산소가 없는 얼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얼음 속에 산소가 많으면 색이 불투명해지고 강도도 약해진다. 열전도율도 떨어진다. 올림픽 빙상장에서는 바닥의 냉각관으로 얼음의 온도를 조절해야 하므로 얼음의 열전도율이 좋아야 한다.
종목마다 요구되는 빙질도 다르다.
특히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리는 쇼트트랙과 피겨는 빙상종목 중에서도 상극의 빙질을 요구한다.
배 씨는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한 경기장에서 쇼트트랙과 피겨에 모두 적합한 빙질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고 있다.
쇼트트랙은 영하 7℃, 피겨는 영하 3℃의 표면 온도를 요구한다.
또 쇼트트랙은 3㎝, 피겨는 5㎝ 두께의 얼음 위에서 펼쳐진다. 얼음 색깔도 쇼트트랙은 흰색, 피겨는 은색이다.
쇼트트랙 경기와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각기 다른 날에 일정 간격을 두고 열린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같은 날 오전에는 피겨, 오후에는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는 일정이 몇 차례 있다.
이는 평창대회뿐 아니라 이전의 다른 올림픽에서도 있었던 아이스테크니션들의 숙제다.
배 씨는 "불과 4시간 사이에 빙질을 바꿔야 한다. 펜스 교체 시간과 선수들 웜업 시간을 제공하려면 실질적으로 제게 주어지는 시간은 2시간도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두께는 피겨스케이팅에 맞춘다. 기계 2대로 한 시간을 꼬박 깎아내도 1㎝도 못 깎아내기 때문이다. 색깔도 피겨의 은색으로 고정한다.
대신 피겨 선수들은 쇼트트랙용 스타트·피니시 라인, 포인트 등이 얼음 위에 그려져 있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표면 온도다.
배 씨는 "짧은 시간에 표면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1년 동안 자료를 정리하고 많은 실험을 해왔다"고 밝혔다.
실제 올림픽 기간에는 관중의 수, 외부 온도가 얼음에 미치는 영향에도 대응해야 한다.
빙상장 바닥의 온도 센서와 냉동기, 공조기 등을 가동해 최적의 표면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배 씨는 "현재 준비 상황으로는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기계만 잘 작동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아이스테크니션이라면 일등이든 꼴등이든 선수들이 '지금까지 본 얼음 중 가장 좋았다'는 말을 해줄 때 피곤이 싹 사라진다"며 "평창올림픽에서 '얼음 좋았다'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abb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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