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일으키고 파괴한 전쟁의 정치경제학

입력 2018-01-01 11:13   수정 2018-01-01 14:01

일본을 일으키고 파괴한 전쟁의 정치경제학
신간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일본의 할복, 할복을 도와주는 중국"
중일전쟁 발발 전인 1935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에 의해 참모로 발탁된 중국 사상가 후스(胡適)가 묘사한 당시의 동아시아의 정세라니, 통찰이 놀랍다.
그의 선견지명은 실현됐다. 제국주의 일본은 2년 뒤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이 빌미가 돼 헤어날 수 없는 전쟁의 수렁 속에 빠졌고, 중국 대륙으로 옮겨붙은 전화가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패망의 길을 걸었다.
후스는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야심을 키워온 일본이 중국 침략으로 결국 미국, 소련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 국민당 수뇌부에 2~3년간 계속 패배하면서 버틴다면 미국과 소련을 전쟁에 끌어들여 일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이란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후스는 자멸하게 했던 일본의 무모한 폭주를 일본 무사들의 전통 방식 자살에 비유했다.
신간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서해문집 펴냄)는 근대 일본의 흥망성쇠를 전쟁을 통해 바라본다.
이를 위해 근대 일본이 강대국과 벌인 첫 전쟁인 청일전쟁(1894~1895)부터 러일전쟁(1904~1905), 1차 세계대전(1914~1918), 만주사변(1931~1932)·중일전쟁(1937~1945), 태평양전쟁(1941~1945)까지 거의 10년마다 벌어진 다섯 차례의 큰 전쟁을 재조명한다.
저자는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가토 요코 도쿄대학 교수로, 후스를 비롯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일본, 중국, 서구의 많은 인물과 새로 발견된 최신 사료, 연구 결과를 두루 참조한다.
2007년 중고생을 대상으로 했던 특강을 책으로 묶었는데 참신하고 파격적인 시각이 일본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일본 학술상인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수상했다.
우리에겐 일제 강점기의 잔혹한 사건들에 가려 민족주의적 선악 개념으로만 이해되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기회를 준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들은 막대한 피해를 낳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침략전쟁이었으나, 자국에는 근대 국가로서 성패를 좌우하는 사활을 건 도박이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적인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쟁 덕분에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 후발 주자로 편입돼 세계의 패권을 다툴 수 있게 됐다.
일본은 먼저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중국으로부터 2억 냥의 배상금과 함께 타이완, 랴오둥 반도, 펑후 제도 등을 할양받고 조선을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전통적인 동아시아 지배체제인 중화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나아가 일본은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지역 맹주라는 의식을 스스로 갖게 됐으며, 서구 열강에 지역의 강자로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뒤이은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는 만주 진출, 한국 병합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과거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바로잡고 비로소 서구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전국으로서 산둥반도의 옛 독일의 권익과 적도 이북의 독일령이던 남양군도를 얻었다. 1차 세계대전 후 결성된 국제연맹에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하며 제국주의 국가로서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지속적인 세력 확장은 미국 등 열강의 견제를 받게 했고 이는 갈등의 불씨를 낳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커지는 야심을 다스릴 생각이 없었고 이는 중국 대륙 침략으로 이어졌다. 일본을 몰락의 길로 이끈 중국과의 전쟁은 1931년 남만주에 주둔하던 관동군이 선양 류타오거우(柳條溝)의 일본 측 철도를 스스로 폭파하면서 일으킨 만주사변으로 시작해 중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화력의 절대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 대륙을 유린했으나 미국 등의 원조를 받은 중국은 항복하지 않았고, 양국의 전쟁은 1945년 일본이 미국에 항복할 때까지 15년간이나 이어졌다.
장기화한 중일전쟁으로 고전하던 일본은 결국 독일, 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맺고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이 일본에 가져다준 건 영토와 식민지만이 아니었다. 일본은 전쟁을 거치면서 근대적 입헌군주제를 확립하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등 내적인 정치발전을 이룩했다.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지면서 보통선거운동이 일어났으며, 러일전쟁 후에는 전쟁을 위한 증세와 맞물려 유권자 수가 크게 늘고 정치의 질이 변했다. 1차 세계대전 후에는 본격적인 정당내각이 탄생했으며 신분차별 철폐, 노동조합 공인, 국민 생활 보장과 같은 광범위한 정치·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국가개조론이 확산했다.
반세기 동안 일본이 일으킨 전쟁들은 따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된다.
저자는 서두에서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지속하는 정치"라고 했던 독일 군사사상가 카를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한다.
일본이 꼭 그랬다. 전쟁은 일본이 근대 국가를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주요한 정치수단이었다. 그래서 침략에 주저함이 없었고 잔혹성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으며, 유리할 때도 불리할 때도 멈추지 못했다.
태평양전쟁 직전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열두 배에 가까웠다. 이를 알면서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고, 아래위 모두가 속전속결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환상에 매달렸다.
저자는 일본 내에서 지금까지 전쟁 책임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우리에게는 천황을 포함해 당시의 내각, 군 지도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윤현명·이승혁 옮김. 448쪽. 1만8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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