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비장애인들과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을까요"

입력 2018-01-02 08:00   수정 2018-01-02 09:53

"언제쯤 비장애인들과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을까요"
멀티플렉스 3사 "화면해설·보청기 도입 당장은 어려워…표준화가 우선"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시청각장애인들의 공통된 희망 사항이다.
얼마 전 법원은 3대 멀티플렉스 영화관(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을 상대로 한 차별 구제 소송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는 "영화관들은 시청각장애인이 관람하려는 영화 중 제작업자나 배급업자로부터 자막과 화면해설 파일을 받은 경우 이를 제공하고, 청각 장애가 있는 원고에겐 FM 보청기기도 제공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멀티플렉스 3사는 일제히 항소했다. 장비에 대한 표준화와 법안 정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곧바로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시청각장애인들과 극장들의 법정 다툼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 콘텐츠 턱없이 부족…개방형 상영 때는 비장애인들 불편
물론 지금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관들은 매달 '장애인 영화관람 데이'라는 이름으로 화면해설과 한글자막이 들어간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한다.
한국농아인협회 등에 따르면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편수는 연간 30여 편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총 1천700편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더구나 제작사나 배급사들은 사전 유출을 우려, 개봉 이후 원본을 제공하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버전은 일반 개봉보다 2~3주 늦게 제작·상영될 수밖에 없다.
또 국내에서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개방형'으로만 상영한다. 대사와 음악·소리 정보가 스크린에 뜨고, 스피커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음성이 함께 나오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비장애인들은 불필요한 자막을 보거나 화면해설을 들어야 하므로 불편함을 느낀다. 장애인들 역시 이런 상황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극장은 비장애인들이 해당 시간에 티켓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영화를 편성하기 어렵다.

◇ 보조기기 제공하는 '폐쇄형' 상영이 대안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필요한 사람만 별도의 보조기기를 받아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수신받는 '폐쇄형' 상영방식이다.
기술 발전과 함께 해외에서도 이 방식으로 정착화되고 있다.
2016년 5월 발간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장애인 영화관람환경 확대를 위한 폐쇄 상영시스템 현황 조사 연구'에 따르면 미국 1위 극장인 리갈 엔터테인먼트는 소니 기술을 도입해 자사의 600개 영화관의 80%에 해당하는 약 6천 개의 스크린에 화면해설 시스템을 구축했다. 화면해설이 필요한 사람은 해당 영화 상영에 맞춰 프로그램화된 헤드셋과 작은 수신기 박스를 받아 입장한다. 자막의 경우 관객 좌석에 부착된 투명 패널에 자막이 나오는 기술이 주로 이용된다.



호주의 경우 4대 영화관체인이 운영하는 132개 복합영화관에서 배리어프리 영화를 최소 1개 이상 상영관에서 상영하도록 하고 있다. 폐쇄형 자막 장치로는 캡티뷰(Captiview)가 주로 사용된다. 좌석의 컵 받침대에 부착한 화면에 자막이 뜨는 방식으로, 스크린 주위를 가리개가 감싸고 있어 다른 관객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국내에도 화면해설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안경을 끼면 한글자막이 보이는 청각장애인용 스마트 안경 등이 있긴 하다.
영진위 다양성 지원팀 관계자는 "폐쇄형 시스템은 시청각장애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를 비장애인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 극장들 "표준화·법제화 먼저 이뤄져야"
극장들은 장애인들의 관람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데는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멀티플렉스 3사는 영진위, 장애인단체들과 함께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올해 상반기에 공동협약을 맺고,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극장들은 이런 움직임과 별도로 폐쇄형 시스템이 도입되려면 상영환경과 장비 등에 대한 표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CGV 관계자는 "화면해설 음성 수신기를 어떤 장비로 살지, 비장애인들에게 방해 없이 서비스가 가능한지 등 표준화된 기술이 미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기별로 장단점이 있는데, 무작정 도입했다가 오히려 장애인·비장애인 모두에게 불편이나 불만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현재 장애인단체가 제안하고 있는 스마트 안경 등의 보조 기기도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기반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영진위는 폐쇄 상영시스템 도입을 위한 연구사업을 수행 중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는 연구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며 "시범 사업을 거쳐 폐쇄형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려면 최소 2년, 길게는 5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급사나 제작사에 콘텐츠 의무 제작을 부과하는 등의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시각장애인협회는 "장애인의 영화관람 환경 개선은 콘텐츠 확보에서부터 시작된다"면서 "영화 제작단계서부터 사전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의 의무화를 규정, 적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는 "시청각장애인들도 관객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배리어프리 영화는 노년층에도 유용하기 때문에 영화계와 장애인단체가 머리를 맞대 세대를 아우르는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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