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내'를 찾아 여성을 개조하려 했던 18세기 영국 남성

입력 2018-01-23 11:17   수정 2018-01-23 17:32

'완벽한 아내'를 찾아 여성을 개조하려 했던 18세기 영국 남성
신간 '완벽한 아내 만들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문란한 여인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이상적인 여인을 형상화한 조각상을 만들었다.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은 비너스(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을 간청했다. 그의 소원은 이뤄졌고 피그말리온은 생명을 얻은 조각상과 결혼한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훗날 버나드 쇼의 희곡으로 만들어졌고 영화와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피그말리온은 신화 속 이야기였지만 18세기 영국에서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재현하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신간 '완벽한 아내 만들기'(글항아리 펴냄)는 제목 그대로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여성을 찾지 못하자 아예 완벽한 아내를 길러내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한 남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이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반노예제 운동가, 인기 아동도서 작가였던 토머스 데이(1748∼1789)는 가혹한 위계질서가 지배하던 기숙학교에서 교육받은 영향으로 금욕적인 삶을 동경하고 사치와 쾌락을 멀리했으며 검소한 생활과 고난을 견디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재혼에 대한 충격으로 여성에 대해 비뚤어진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어머니가 계부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나락에 빠진 여성을 지켜주는 수호자로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여성이란 순진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처녀이거나 난폭한 남성에게 짓밟힌 무력한 희생자로 나뉘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도 그의 여성관에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여성에게 법적으로 독립적인 권리가 없었고 여성들은 남성에게 수동적인 존재이기를 요구받았다.
데이는 그리스나 로마 여신처럼 젊고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골 아가씨처럼 순수하고 꾸밈이 없으며 옷이나 음식, 생활습관도 수수한 취향에 자신에게 복종할 여성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수차례 좌절한 그는 결국 소녀를 양육해 자신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여성으로 키워내기로 결심한다.



고아원에서 12살 사브리나와 11살 루크레티아라는 소녀를 속여서 데려온 데이는 당시 등장했던 장 자크 루소의 교육론에 큰 감명을 받고 루소의 '에밀'처럼 소녀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성으로 키우기 시작한다. 고통을 참아야 한다며 뜨거운 왁스를 피부에 떨어뜨렸고 사치와 방탕에 대한 인내를 시험한다며 예쁜 옷이 들어있는 상자를 준 뒤 갑자기 불에 집어 던지고 불타는 것을 보게 한다든지, 충성심과 복종을 시험하기 위해 가짜 비밀을 알려준 뒤 발설하지 말라고 한다는 식의 교육이 이뤄졌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웬디 무어는 실제 데이가 소녀들을 입양한 고아원의 서류에서부터 출발해 데이의 어린 시절부터 사브리나의 훗날 이야기까지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책은 지금 시각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이며 반인륜적인 데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시 남성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사회의 위선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보여준다. 데이의 주변 인물들은 데이의 실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사자들에게는 입을 닫았고 오히려 실험을 적극적으로 돕기도 한다. 데이는 1773년 '죽어가는 검둥이'(The Dying Negro)라는 글을 발표해 반노예제 운동에 앞장선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졌지만 뒤에서는 소녀를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인간으로 키우며 여성의 인권에는 눈감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루소를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 시대 관념적 사상의 한계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데이와 그의 친구 에지워스는 루소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에지워스는 아들을 루소의 '에밀'에 등장하는 소년 에밀처럼 자유분방하게 키운다. 데이는 에밀이 조용한 삶을 공유할 아내를 찾는 것을 보고 자신도 완벽한 아내를 만드는데 에밀 속 교육시스템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에지워스의 아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자랐고 데이의 '엽기적인' 실험도 실패했다.
데이는 '완벽한 여성'을 키우는 데 성공했을까. '마이 페어 레이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실제 스토리는 달랐다. 데이는 네 번의 약혼과 파혼 끝에 결국 결혼했지만 그 상대는 사브리나가 아니었다.
데이의 실험은 이후 19세기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소설 '감시와 감금'(watch and ward)에도 반영됐다. 한 남성이 비공식적으로 12살의 고아를 입양해 '완벽한 아내'로 만들 목적으로 교육시키는 내용이다. 이진옥 옮김. 472쪽. 2만1천원.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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