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품제' 신용등급으로 이자장사…수백만명 덤터기 썼다

입력 2018-01-30 16:48   수정 2018-01-30 17:04

'골품제' 신용등급으로 이자장사…수백만명 덤터기 썼다
등급절벽 240만명, 차별대우 88만명…연체등록 해지 13만명
청년·주부·고령층도 신용평가 불이익…"독과점 시장, 깜깜이 평가"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개인 신용등급 체계는 2003년 '카드사태'를 계기로 도입됐다.
너도나도 신용카드를 만들어 긁다 보니 신용불량자가 양산됐고,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신용도를 평가·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은행 등 금융회사는 10단계 신용등급을 토대로 대출자 개인을 평가해 대출 여부, 대출 금리, 대출 한도 등을 정하게 됐다.
이렇게 전 국민에 가까운 4천515만명의 신용등급이 산출됐다. 점차 개인의 경제적 신분을 규정하는 과거 '골품제'처럼 굳어졌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30일 "과거 연체정보 중심의 평가 관행에 따라 단 한 번의 연체만으로 저신용 굴레"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가장 불합리하다고 지목된 게 '등급절벽'이다. 보통 1천점 만점으로 신용도를 따져 등급화하는데, 각 등급의 최상위 점수를 얻은 사람은 억울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신용점수가 664점인 경우 7등급(600∼664점)이다. 6등급 최하위의 665점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7∼10등급은 '저신용자'로 분류돼 제도권 금융회사 대출이 무척 어렵다. 돈을 빌려도 고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등급의 절벽에 가로막힌 대출자가 240만명이라고 금융위는 추정했다. 이를 점수제로 바꾸면 평균 연 1%포인트(p)의 이자 감면 혜택을 본다는 설명이다.
불합리한 이유로 신용점수와 등급에서 차별대우를 받은 경우도 약 88만명으로 집계됐다.
신용정보(CB)사들은 어떤 금융회사에서 대출했는지를 따져 신용등급을 깎는다.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평균 0.25등급이 하락하지만, 캐피탈·카드사에서 빌리면 0.88등급이 하락한다. 저축은행 대출은 1.61등급이나 내려간다.
이 같은 '업권별' 평가는 불합리하다고 금융위는 지적했다. 같은 제2금융권 대출이라도 신용위험이 천차만별이고, 금리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가령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도 6% 이하 대출인 경우가 있는 반면, 20%를 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앞으로 업권이 아닌 개별 대출금리를 토대로 신용도를 평가토록 했다. 이를 통해 41만명의 신용점수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또 어디서 빌리든 신용위험에 차이가 없는 중도금 대출자(19만명)나 유가증권 담보대출자(28만명)도 가장 높은 은행 수준으로 평가토록 했다.



연체 등록은 개인 신용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CB사들이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탓에 연체 등록 기준은 10년 넘게 그대로다.
3개월 이상 장기 연체의 경우 2005년 금액 기준이 5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금융위는 이를 100만원으로 높였다.
단기 연체 역시 2011년 도입된 금액 기준(10만원 이상)을 30만원으로 높이고, 기간도 5일 이상에서 30일 이상으로 늘렸다.
이를 통해 단기 연체자는 6만3천명, 장기 연체자는 6만4천명이 각각 굴레를 벗는다. 특히 단기 연체자의 경우 1건뿐이면 연체 이력 정보를 1년(현행 3년)만 반영토록 했다. 이 역시 116만5천명이 혜택을 본다.
청년, 주부, 노인 등은 경제 활동 이력이 짧거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을 '금융이력 부족자(Thin Filer)'로 부른다.
1천107만명이 금융이력 부족자다. 20대가 330만명이고, 60대 이상이 350만명이다. 금융이력 부족자는 대부분 4∼6등급(953만명)이다.
이들에 대해선 사회보험료, 공공요금, 통신요금에 더해 민간보험료와 체크카드 납부 실적 등에서 '긍정적 정보'가 있으면 신용점수를 올려주도록 했다.
금융위가 이날 내놓은 신용등급 체계 개편안은, 뒤집어보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불합리한 등급을 토대로 이자를 더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김 부위원장은 "소위 깜깜이 평가, 자의적 평가 우려 등 신용평가의 전 과정에서 평가를 받는 정보 주체인 개인이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2년 설립된 나이스평가정보, 2005년 설립된 코리아크레딧뷰로가 CB 업계를 독과점한 구조도 문제로 꼽았다.
김 부위원장은 "금융회사는 자체 여신심사 시스템을 고도화하려는 노력보다는 CB사 평가 결과에만 크게 의존했다"고 비판했다.


zhe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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