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사진을 엮어 짜다…조형사진가 정재규 '일어서는 빛'

입력 2018-01-31 14:12   수정 2018-01-31 14:30

그림과 사진을 엮어 짜다…조형사진가 정재규 '일어서는 빛'
'올짜기' 조형사진·설치 등 100여점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94년 여름 오랜만에 경주를 찾은 작가 정재규는 국립경주박물관 뜰에서 머리 없는 불상 50여 구를 맞닥뜨렸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는 언제였을지 모를 과거의 불상 참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프랑스로 돌아온 작가는 머리 없는 불상의 사진을 조각조각 잘라냈다. 이번에는 경주에서의 촬영 순간이 다시 포개지는 느낌을 받았다. "잘려서 다시 배열된 머리 없는 불상 이미지의 표면은 사진적 사건을 위한 또 다른 장소로 느껴졌다."(작가노트 중에서)
작가가 '조형 사진'이라고 부르는, 사진을 비롯한 기성 이미지와 회화를 엮어낸 작업이 본격화한 것이 그즈음이다. 기존 이미지를 5~10mm 폭으로 가늘고 길게 자르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 옷감을 짜듯, 이 이미지들을 엮어 짜면 격자무늬의 추상적인 화면이 탄생한다.



2월 2일부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정재규 개인전 '조형사진, 일어서는 빛'은 30년 가까이 일궈온 작업 세계를 선보이는 자리다.
폴 세잔, 마르셀 뒤샹, 만 레이, 파블로 피카소 등 서양 거장들의 작품과 경주 불국사 등 한국 고건축을 주제로 한 사진을 '올짜기'해 만든 조형 사진, 절단한 이미지들을 부착한 막대기들을 이어붙인 설치작품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조형 사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회화가 지닌 지각적인 성격을 사진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접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암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작가는 야위어 보였지만,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회화는 작가의 아이디어나 기호에 의해 캔버스 혹은 화선지에 옮기는 것이고, 사진은 반대로 이미 기계(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이미지를 반사하는 것입니다. 이 사진을 갖고서 회화가 지향한 경지, 지각적 체험을 끌어내야 하니 다른 방식의 표현기법이나 각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형 사진은 기계적 성격이 강한 사진과 아날로그적인 '올짜기' 작업을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서울대 미대 졸업 후 1977년 파리 비엔날레의 사진 섹션에 참여하면서 프랑스에 활동해 왔고, 1980년대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을 비롯한 서양 미술사의 기하학적 조형언어 연구에 몰두했던 그의 이력과도 겹치는 부분이다.
가나아트는 "작가는 지각으로서의 사진 언어를 새로이 구축했다"라면서 "기계적 이미지들의 극단적인 이용 혹은 실리주의와는 대칭되는 미학적이며 지각적인 사진의 위상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도불 만 40년이 된 작가는 전시 개막식 참석 후 2월 초 프랑스로 돌아갈 계획이다. 전시는 3월 4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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