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처리 과정서 확인…박지영 연구사 논문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복궁에 있다가 해체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중인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옥개석(屋蓋石·지붕돌)에 있는 사방불(四方佛·동서남북에 있는 불상)이 원위치를 찾게 된다.
이 사방불은 한국전쟁 때 지광국사탑이 훼손된 뒤 1957년 치밀한 고증 없이 급하게 복원하는 과정에서 옥개석이 잘못 놓여 위치가 180도 바뀌었다. 게다가 사방불 중 남쪽에 있던 불상은 완전히 파손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지광국사탑 보존처리 사업에 참가한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학술지 '미술사학'에 기고한 논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장엄(莊嚴) 고찰'에서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을 분석해 옥개석 사방불의 원위치와 존명(尊名)을 밝혔다.
박 연구사는 "옥개석 남면에는 두건을 쓰고 있는 지장보살이 있었으나, 이 상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며 "1957년 재건 공사에서 결실된 부분을 모르타르로 수리했는데 이때 다른 형태로 복원됐다"고 1일 설명했다.
이어 "남면을 기준으로 동면과 서면의 불상은 옥개석에 남아 있고, 북면에 해당하는 도상은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일부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박 연구사는 형태와 방위를 근거로 남면은 지장보살, 동면은 약사여래, 서면은 아미타여래, 북면은 미륵보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9∼10세기 사방불의 전통을 생각해 본다면 지광국사탑의 불보살상 배치는 남면을 제외하고는 신라 사방불 개념과 일치한다"며 "이 탑을 세운 법상종은 미륵신앙을 중시했는데, 지장보살이 미륵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남면에 지장보살을 넣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여러 차례 옮겨졌는데, 탑이 조선총독부 앞에 있었던 1915∼1923년에 찍힌 사진을 보면 지금처럼 옥개석이 돌아가 있다"며 "1957년에 탑을 복원할 때 이 사진을 참고한 탓에 옥개석 위치가 잘못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모르타르 부분은 새로운 돌로 불상을 제작해 접합할 것"이라며 "내년까지 과학적 보존처리를 수행하고 2020년에 원형대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박 연구사는 유리건판 사진 분석을 통해 탑신석에 벌과 나비, 작은 방울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 조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그는 "벌과 나비는 이곳이 향기로운 곳임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며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탑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장식됐음을 알려준다"고 평가했다.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승려에게 내려지는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사리를 모신 승탑으로 1085년 건립됐다. 원래는 국보 제59호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와 함께 강원도 원주 법천사 터에 있었다.
일제가 한국의 국권을 빼앗은 이듬해인 1911년 일본인에 의해 해체돼 서울로 옮겨졌다가 1912년 여름 일본 오사카로 반출됐고, 그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15년 경복궁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에도 수차례 해체와 재건이 이뤄졌다.
승탑으로는 드물게 사각형 탑신석을 사용했고, 표면에 다양한 장식이 들어가 있어서 창의성과 숙련된 기량이 느껴지는 유물로 평가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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