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나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글로 쓰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함께 조용히 읽는 것, 그마저 하지 않더라도 함께 가만히 서 있는 것. 모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지지하는 방법입니다."
미투 운동이 두 달 넘게 계속되면서 각계각층에서 미투에 동참하거나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책을 함께 읽으면서 조용히 피해 폭로자들에게 연대를 보내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31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책방 서로'에서는 성폭력 피해 생존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 작가가 책을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와 함께 한국어와 영어로 책을 읽는 특별한 낭독회가 열린다.
낭독회를 여는 이는 노유다 작가와 김유라 번역가다. 이들은 노 작가의 작품 '코끼리 가면'을 함께 읽는다. 노 작가가 한국어로 한 페이지를 읽으면, 책을 번역한 김 번역가가 영어로 한 페이지를 읽기로 했다.
노 작가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코끼리 가면'은 노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를 담은 자전적 글·그림책이자 목소리 소설이다.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란 소설의 형태지만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논픽션처럼 다룬 장르다.
그는 10년에 걸쳐 '코끼리 가면'을 만든 끝에 2016년 출간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다. 번역본은 국제사회에 우리나라 여성의 목소리와 문학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작업했다. 최근 미투 운동이 국내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힘을 얻어 한·영판을 냈다고 한다.
노 작가는 한·영 낭독회를 여는 취지에 관해 "책과 미투 운동을 주제로 글로벌한 소통의 장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은 동네책방에서 모이면 서로 폭넓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은 사회에 따라 영구할 수도 있으므로, 용감하고 당당하게 글과 말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 전에 국내에서 성폭력 폭로를 사실상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 '문단 내 성폭력' 피해 폭로인들도 지난해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한 문집 '참고문헌 없음'을 펴냈다.
이처럼 글을 쓰는 방식으로 성폭력 피해를 공유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들이 펴낸 책을 조용히 읽는 방식으로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이용석(38)씨는 이달 18일 오후 광화문 교보문고 앞 벤치에 가만히 앉아 '참고문헌 없음'을 읽으면서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독서공동체 '땡땡책협동조합'의 다른 조합원들과 일반 시민 등 30여명이 함께했다.
이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의미로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장에 모여서 함께 책을 읽는다"면서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그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관심과 연대의 표현인 동시에, 내 삶의 바뀜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일 오후 2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도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 페미니스트'가 '#MeToo를 외치는 #WithYou 독서행동'을 열고 함께 모여 책을 읽을 예정이다.
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책만 읽다 가셔도 되지만, 잠시 곁에 계시다 가셔도 된다"고 공지해 눈길을 끌었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김민정 활동가는 "어떤 방식으로도 미투를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1분 만이라도 잠시 서서 '왜 나는 여기 있을까' 생각하고 소통하면 미투를 지지하는 힘이 보태질 것"이라고 말했다.
hy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