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시인 "천편일률 똑같은 시 가르치는 교과서가 문제"

입력 2018-04-13 07:05   수정 2018-04-13 10:33

유희경 시인 "천편일률 똑같은 시 가르치는 교과서가 문제"
새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출간…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도 2주년 맞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시는 옷과 같다고 생각해요. 각자 맞는 옷이 있듯이 사람마다 맞는 시가 있습니다. 교과서의 가장 큰 단점은 그걸 무시하고 모두에게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시를 가르치고 거기서 정답을 찾는 문제를 낸다는 것이죠. 이런 서점에 와서 추천을 받으면 시를 좋아할 확률이 커집니다."
유희경(38) 시인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시를 아직 낯설어하는 독자들에게 교과서 식의 접근법을 벗어날 것을 제안했다. 그가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며 손님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서점의 곳곳에 좋은 시집을 추천하는 짧은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슬픔도 쓸쓸함도 힘이라고 믿는 당신에게", "영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 같은 말들과 함께 그에 맞는 시집이 추천돼 있다. 2016년 6월 초 신촌에 문을 연 이 서점은 이제 2년이 다 돼가면서 단골도 많아졌다.
"이곳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확인하는 게 큰 기쁨이죠. 또 제가 어떤 코멘트를 했을 때, 가령 어떤 시집이 아주 좋은데 안 알려져서 아깝다는 얘길 했을 때 반응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서점을 하면서 어떤 영향력이 생겼단 걸 외부에서 확인받는 순간들이 있죠. 그래서 스스로를 다잡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힘이 생겼다면 건전한 방식으로 써야겠다고요. 한편으로는 '위트 앤 시니컬' 이름이 커지면서 시인 유희경이 지워지지 않으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서점 주인으로 온갖 잡무를 처리하면서도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그는 그동안 틈틈이 발표한 시 66편을 모아 새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문학과지성사)을 최근 펴냈다.
그가 직접 묶어 낸 시집으로는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2011) 이후 7년 만이다. 그 중간에 나온 '당신의 자리- 나무로 자라는 방법'은 2013년 한 미술관의 전시 행사에 참여해 선보인 시들을 미술관 측이 한정판 시집으로 찍었다가 지난해 한 출판사가 복간한 것이다.
"이번에도 전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을 썼습니다. 너무 자꾸 사소한 것들만 쓰는 것 같아서 그게 좀 싫었던 적도 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그걸 썼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나를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죠. 작고 사소한 것들이 우리에게 신이 되는 순간들, 기쁨과 고통, 감동을 주는 작고 사소한 것들, 아주 미시적인 것들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이런 시의 성격은 시인 자신의 성격, 삶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제가 예민한 성격이어서 부대낌이 크고 힘들 때도 많은데, 그런 것들도 시로 옮겨보려고 했어요. 대학생 시절 어느 날 시를 쓰지 않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와서 달을 봤더니 너무 예쁜 거예요. 그걸 얘기했더니 친구들이 막 비웃더라고요. '문창과 아니랄까봐 그러냐'고 엄청 놀림당했죠. 그런데 저한테는 진짜 일상의 어떤 순간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비둘기가 날아가다 돌아오는 순간 같은 거요. 결국 그걸 구구절절 설명할 까닭이 없고 그냥 시를 쓰면 되겠구나 했죠. 거창한 뭔가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쓰자는 게 제가 시를 쓰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추울 때 고양이는/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골목은/그 골목의 어둠은 좋은 것/좋고 위험한 것 위험하고/아슬한 것 헤드라이트를 켜고/지나간 자동차의 뒷모습처럼/커다란 것 그 속에 숨어 있는/어떤 것 이렇게 추울 때는/옆을 더듬게 되는 것 그리고/아무것도 없으므로 당신은/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좋은 것 커다란 것 잊고 있던 어떤 것' 중)
그는 여느 시인들처럼 자신의 시에 대한 집착도 없는 편이라고 했다.
"이번에 시집 묶으면서 버린 것도 많아요. 컴퓨터가 잘못돼서 써놓은 시가 다 날아가 버려도 맘 아파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시를 써놓고 어디에 뒀는지 모르는 것들도 많고요. 원래 성격은 잘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시에 관해서는 이상하게 그래요. 완성된 시보다 쓸 때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시집을 내는 것도 오래 걸린 거죠. 등단 10년차면 서너 권 정도 내는 게 보통인데, 시집을 꼭 내야겠다 그런 생각도 많이 안 하는 편이고요. 그걸 알거든요. 내가 이 시집을 내서 세상을 뒤집을 수 없단 걸요.(웃음)."



그는 많은 유명 시인들을 배출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들어가 공부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서울예대를 졸업하니 스물한 살이었는데,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비가 싸고 글도 계속 쓸 수 있는 데다 황지우 시인이 교수로 있는 한예종에 시험을 봤죠. 운이 좋아서 다들 어렵다고 하는 시험에 붙었어요. 거기서 극작을 공부하면서 이야기 구조를 배웠기 때문에 그 속에서 시를 찾는 게 편해요. 삶을 이야기로 이해하는 훈련도 되어있고요."
그는 희곡집단 '독'에서 활동하면서 희곡도 계속 쓰고 있다. 그의 시에서도 '이야기'와 연극처럼 인상적인 장면들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어/네가 물어보았을 때 나는/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나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야기란 그렇다/도무지 끝나질 않고/매번 시작되기만 하지/그래서 나는 네게/부루퉁한 표정의 네게/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방금/고등어구이를 먹고/고등어구이집을 빠져나온/가시가 걸린 기분이 가시지 않는데/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한/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그는 어깨가 넓고 튼튼한 사람" ('어깨가 넓은 사람-O로부터' 중)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1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자연히 인맥도 넓어졌고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데도 능하다. 오래 꿈꿨던 시집 전문 서점을 내는 일을 이뤘지만, 그는 여전히 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것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위트 앤 시니컬'은 서점뿐만 아니라 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서점 영업에는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으로 내공이 붙었다.
"지난달 초에는 아주 잘 돼서 '이달 매출이 좋겠네' 했는데, 월말에 까먹었고요. 오늘 안 되면 내일 잘 되고 그렇더라고요. 이젠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그보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지평을 넓힌다는 목표의 성과가 아직 미미하다는 게 한계일텐데, 그건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