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판도 급변…아시아, 실리콘밸리 거의 따라잡았다

입력 2018-04-13 11:57  

벤처캐피털 판도 급변…아시아, 실리콘밸리 거의 따라잡았다
10년 사이 벤처캐피털 비중 '美 73→44% vs 아시아 5→40%'
日소프트뱅크, 中텐센트·알리바바 등 '아시아 큰손들' 부상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벤처캐피털 업계의 본산인 실리콘 밸리가 아시아에 바짝 추격을 당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12일 보도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전 세계의 벤처 펀딩에서 4분의 3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 자금은 주로 미국에 자리 잡은 벤처 기업들에 집중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벤처 투자자들이 급부상하면서 자금과 노하우 양면에서 확연히 선두를 차지하고 있던 실리콘 밸리는 왕좌를 이들과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다우존스 벤처 소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아시아 투자자들은 글로벌 벤처캐피털의 규모를 엄청나게 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지형도 크게 바꿔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투자자들은 지난해 미국 투자자와 맞먹는 자금을 IT 스타트업들에 쏟아부었다. 글로벌 벤처 펀딩 자금 1천540억 달러 가운데 아시아의 비중은 미국의 44%에 근접한 40%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해 세쿼이아 캐피털을 포함한 미국 벤처 투자자들이 집행한 자금은 670억 달러였고 텐센트와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아시아 투자자들은 610억 달러였다.


10년 전 글로벌 벤처 펀딩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73%였던 반면에 아시아의 비중은 5%에 미달했었다. 1992년 미국의 비중이 무려 97%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에 다름없는 변화다.
1억 달러가 넘는 대형 투자에서 아시아 투자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지난해 이 방면에서 중국이 차지한 몫은 미국을 앞섰고 소프트뱅크를 앞세운 일본이 3위였다.
소프트뱅크가 아시아의 큰손이지만 벤처캐피털 업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중국 벤처캐피털이다. 중국은 미국과 같은 속도로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이른바 '유니콘' 스타트업을 키워내고 있다.
알리바바 그룹과 텐센트 홀딩스 같은 IT 공룡은 물론 1천 개가 넘는 중소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속속 자금을 공급하면서 중국의 벤처 펀딩의 규모는 2013년의 15배로 불어난 상태다. 같은 기간 미국의 증가 속도는 2배 정도였다.
중국 벤처 투자자들의 자금은 대부분 자국 벤처 기업들에 흘러들어가는 추세였다. 펀딩을 받는 기업들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해외에서는 사실상 무명 기업에 속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경쟁 확대로 중국의 벤처캐피털 업계는 해외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다우존스 벤처 소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국 벤처캐피털의 해외 투자액은 지난해 2배가 늘어났다.JP모건 아태 투자은행 사업부 대표로 일하다 최근 알리바바의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 모터스의 부회장 겸 사장으로 이직한 브라이언 구는 우선 중국 기술, 중국 사업 모델, 중국 자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인접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나온 5개 대형 투자건 가운데 3건은 텐센트나 알리바바가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차량 호출 서비스 스타트업들에 투자한 것이었다.
아시아 벤처캐피털이 IT 스타트업들에 밀려오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의 기술 혁신과 그 경제적 과실을 놓고 다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중국 사업부 대표로 일했던 카이 푸 리는 중국 벤처캐피털의 급부상은 "일원적 세계관에서 이원적 세계관으로 옮겨가는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벤처 투자자들은 서구 기업들이 탐내거나 국가 안보적 이해가 걸린 시장에서도 입지를 확보하고 있을 만큼 영향력을 키웠다.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과 같은 유망 분야에서 중국의 발걸음을 불안하게 볼 정도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시 러너 교수는 아시아 벤처 투자자들의 자금 풀이 확대되는 것은 혁신적 활동을 위한 "강력한 "로켓 연료"라고 말하고 "혁신의 중심이 되는 것이 국내총생산 등에 보탬을 준다고 본다면 미국의 경쟁력 우위가 약화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중국의 약진이 미국에서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이유의 하나는 수익을 좇는 미국과 달리 중국의 투자가 주로 전략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일부는 국가가 개입한다는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이른바 반도체 굴기(堀起)가 대표적 사례다.
물론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보다 더 많은 자금을 AI 분야에 쏟아붓고 있다. 다우존스 벤처 소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투자액은 전년보다 2배 늘어난 40억 달러였다. 수년 전 1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던 중국의 투자액은 지난해 25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의 IT 공룡들은 정부 정책과는 다른 자체적인 투자 목적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카이 푸 리는 향후 5~10년 안에 중국 IT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등장해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간판 기업들과 비(非)영어권 시장에서 경쟁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유럽을 제외한 여타 세계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영토 다툼 무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접근방식도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은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해 그저 모든 나라를 끌어들이겠다는 것이지만 중국은 미국 기업을 물리치기 위해 현지 파트너에 돈을 대주는 쪽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jsm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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