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공연형 가수 꿈이룬 2000년대 가장 기억에 남아"②

입력 2018-04-24 20:11   수정 2018-04-24 20:54

조용필 "공연형 가수 꿈이룬 2000년대 가장 기억에 남아"②
5월 올림픽주경기장서 데뷔 50주년 콘서트
"음악과 사는 게 잘 늙는 것…난 보통의 노래하는 사람"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제가 바라던 콘서트를 하는 가수, 그게 2000년대에 이뤄졌어요."
TV에서 자취를 감추고, 앨범을 단 두장(18·19집) 발표한 2000년대가 음악 인생의 고비였을 것이란 생각을 깨는 한마디였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YPC프로덕션에서 만난 조용필은 "1986년 일본에 진출해 공연을 많이 했지만 2000년대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한 시기"라며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도 2000년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1년 13집 '꿈'을 끝으로 방송 중단을 선언했다. 컬러TV 시대가 된 1980년대에 '브라운관 스타'로 떠오른 그가 안방극장에서 사라지자 14집(1992)~18집(2003)은 전작들보다 성적이 저조했다. 물론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 이후 음악 물길이 바뀐 탓도 있었다.
조용필은 콘서트 무대로 돌아가겠다는 선언대로, 대중 가수 최초로 1999~200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7년 연속 공연했고, 2005년부터 여러 차례 월드컵 경기장 투어를 하고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도 여섯 번 치렀다. 2005년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연 단독 콘서트에 이어 이달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도 참여했고, 2008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홀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공연도 펼쳤다.
그는 데뷔 50주년을 맞아 5월 12일 올림픽경기장에서 기념 공연 '땡스 투 유'(Thanks to you)를 개최한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몇 개월 간 공연장 도면과 오프닝 무대 등을 끼적인 연출 구상 노트가 펼쳐졌다. 매주 3일씩 자신의 밴드 위대한탄생과 한 번에 7~8시간씩 연습한다.
'유튜브 마니아'답게 롤링스톤스 등 다른 가수 공연도 닥치는 대로 보는 그는 유튜브에서 자신의 앳된 시절 무대 영상을 보느냐고 묻자 난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제 영상은 잘 안 봐요. 제가 저를 보면 굉장히 웃기고 보기 싫어요. 쑥스럽고 오글거리고 창피합니다."



◇ "2000년대 공연은 피크, 앨범 작업에 꽂히지 못해"
'가수라면 공연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이뤄진 2000년대는 그에게 흡족한 "가수 인생 후반의 시작점"이었다.
그가 자신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이유도, 목소리 유지에 힘쓰는 이유도 지향점은 하나, 공연이다.
"제 노래를 많이 듣는 것은 호흡 때문이에요. 호흡과 길이 이런 게 달라질 수 있어서 원곡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제가 공연한 영상을 많이 보죠. 가수도 계속 부르다 보면 '쿠세'(습관)가 생기거든요."
이번 공연에서는 히트곡과 평소 안 부르던 곡들을 선곡한다. 그중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를 세상에 내놓은 곡이지만, 이 곡 이후 대마초 파동에 휘말린 탓인지, 트로트란 장르의 영향인지 잘 불리지 않았다.
그는 "이 곡이 나오면 공연에서 좀 처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공연에선 네 명이 통기타를 치면서 부를 생각이다. 관객은 원곡을 듣고 싶어 하니 코드도 안 바꾼다. (위대한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 하길래 객석과 함께하는 것이니 '장강장강'으로 가자고 했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 나오면 객석에서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라고 나오니깐"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피크'를 이뤘지만 그는 신곡을 내는 데는 꽂히지 못했다.
"유튜브로 음악을 무지하게 듣는데, 너무 많이 들었더니, 하하. 어떨 땐 이제 못할 것 같기도 하고, 될 것 같기도 하고…."
19집의 반향을 넘으려니 일찍이 시작된 20집 작업은 더디다.
그는 "19집보다 나아야 하니 부담은 사실"이라며 "잡아놓은 틀은 3가지인데, 공연 준비하느라 지금은 또 '스톱' 상태다. 상반기 공연이 끝나면 7~8월에 작업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과한 칭찬 부풀려져 부담…사별의 아픔, 이젠 운명 탓이려니"
50주년 자축이나 매년 생일 축하에도 손사래를 치는 그는 자신의 이력에 대한 언론의 '조명'도 과한 칭찬이라며 부담으로 느끼고 있었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미담도 마찬가지다.
그는 "낮추면 낮췄지 저를 치켜세우는 걸 절대 못 한다"며 "겸손 떠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보통 노래하는 사람 조용필인데 부풀려졌다. 한때 인기를 즐길 때도 있었겠지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날 드러내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면이 더 보태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스스로 나이를 잘 먹고 있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음악을 접하면서 살면 잘 늙어가는 것이죠. 제가 음악을 전면 중단한다면 1~2년은 괜찮겠지만 3년부터 '살아있나?', 이후에는 잊혀 갈 테니까요."
무대에 서면 온전히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고, 부인과 사별한 아픔도 있어 주위에선 '외롭지 않느냐'고 곧잘 물어온다.
그는 "몸이 안 좋을 때, 휴일일 때는 어떤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웃으며 "(부인과 사별한) 2003년 이후 몇 년간은 아무래도 있던 사람이 없으니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별한 마음을 표현하자니 그렇고. 15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이젠 그러려니 '내 운명이구나'라고 운명 탓을 하지, 내 삶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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