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담양대나무축제

입력 2018-06-12 08:01  

[연합이매진] 담양대나무축제
천 년 향기 품은 대숲에서 운수대통하다

(담양=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영산강 상류에 있는 전남 담양은 전통의 대나무 고장이다. 담양 하면 대나무, 대나무 하면 담양이 동시에 떠오른다. 해마다 5월이면 이곳에서 대나무를 주역으로 내세운 대나무축제가 펼쳐진다. 20회째인 올해는 담양 지명 탄생 1천 주년을 맞기도 해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고 했던가. 봄비 내린 뒤의 담양 죽녹원 대밭. 아침 햇살이 비치는가 싶자 굵고 매끈한 왕대 사이로 죽순들이 다투듯 땅을 박차고 돋아났다. 먼저 세상에 나왔던 죽순들은 아랫도리의 검은 껍질을 차례차례 벗어 던지며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랐다.
온갖 새들도 저마다 개성 넘치는 지저귐으로 대숲을 해맑게 울려댔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합창극이랄까. 흐르는 도랑물 소리는 숲의 청량감을 더했다. 삽상한 생명의 아침!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축제판을 벌이며 하루를 싱그럽게 열고 있었다.
산책길에서 만난 프랑스인 카미유 로랑(21). 친구 3명과 함께 여행 중이라는 그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느낌이 정말 신선해요! 프랑스에서는 이런 대밭을 볼 수 없어요. 대나무축제가 열리는 줄 모르고 관광 목적으로만 이곳에 왔는데 대숲 구경 후에 저 아래의 축제장도 차분히 돌아보렵니다. 벌써 기대가 돼요!"



◇ 대숲 향기, 천 년을 품다

올해로 스무 돌을 맞은 담양대나무축제가 '대숲 향기, 천 년을 품다'를 주제로 5월 2~7일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과 관방제림 일원에서 열렸다. 담양대나무축제는 2년 연속 대한민국 문화관광 최우수축제로 선정될 만큼 5월을 대표하는 유명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담양(潭陽) 지명이 생긴 지 1천 년을 맞아 그 의미가 더했다. 1018년 고려 현종 9년 탄생한 '담양'은 오랜 세월 변치 않고 이름을 지켰다. 이를 기념해 담양군은 올해를 '담양방문의 해'로 지정했다. 축제 역시 대나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축제는 2일 오전 담양종합체육관 앞 대운동장 주 무대에서 개최된 대나무 악기와 댄스 경연대회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이어 대나무 신에게 축제 성공을 기원하는 죽신제(竹神祭)를 비롯해 각종 공연, 전시,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동시다발로 선보였다.
담양군과 담양대나무축제위원회가 주안점을 둔 올해 축제의 가치는 역사와 문화. 그 대표 프로그램은 5월 6일 담양동초등학교에서 축제 주 무대까지 약 1km 구간에서 진행된 '대나무 역사문화 퍼레이드'였다. 담양은 임진왜란 때 고경명(高敬命) 장군이 의병 6천여 명을 규합해 왜군과 맞선 곳으로, 이날 행렬에는 12개 읍면 주민과 학생, 풍물패 등 1천여 명이 참여했다.
이와 함께 대나무축제의 발자취와 발전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담양대나무축제 20주년 기념관'이 관람객을 맞았다. 또 죽순이 음식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맛을 입으로 느껴볼 수 있는 전국죽순요리경연대회, 생활용품이나 예술품으로 변신한 대나무와 만나는 대나무 문화산업전이 펼쳐졌다.
가정의 달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참여 프로그램도 풍성했다. 대소쿠리 물고기잡기, 대나무 카누 타기, 대나무 뗏목 타기, 추억의 죽물시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연자와 관광객이 하나가 되어 춤추는 죽취아리랑 플래시몹, 필리핀 전통의 민속놀이인 티니클링(대나무춤), 담양 지방의 모내기 과정을 그린 황금들노래 공연이 줄줄이 이어졌다.
밤이 되면 축제장을 끼고 있는 관방천은 동화 나라로 깜짝 변신해 더욱 깊은 감동을 안겼다. 향교교와 추성교 사이의 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한 오색 대나무등과 관방제림을 신비하게 탈바꿈시킨 레이저 야간경관은 방문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초대했다.



◇ 담양대나무축제의 뿌리 '죽취일 잔치'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게 자란다고 해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됐다. 우리 선조들은 대나무를 벗 삼아 자연을 노래하고 풍류도 즐겼다. 조선 중기의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였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라며 대나무의 신비와 미덕을 찬송했다.
고산의 감탄처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대나무는 나무이기도 하고 풀이기도 했다. 생장점인 죽순이 땅속에 숨어 있고 줄기는 땅 위에 나와 있어 얼핏 나무 같으나 나이테가 없는 점은 영락없이 풀을 닮았다는 것. 하지만 일반의 나무처럼 목재로 사용되기에 대나무로 불렸다.
땅 위로 솟구치기 시작한 죽순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한 달여면 평생 자랄 수 있는 크기가 된다. 이처럼 둘레가 그다지 굵어지지 않은 가운데 쭉쭉 솟아오르는 비결은 일정 간격으로 나 있는 마디들. 많게는 70여 개에 이르는 마디 덕분에 대나무는 가늘지만 짱짱하고 높다랗게 뻗어 오를 수 있다. 일정 기간에 자신을 키우고 나서는 이후부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쇠가 드물고 플라스틱이 없던 옛날에 대나무는 여러모로 요긴한 도구였다. 닭장, 죽방렴 같은 건축 자재로 쓰였는가 하면 지팡이나 소쿠리처럼 각종 생활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금, 피리 등 악기의 소재였고, 활이나 창 등 무기가 되기도 했으며, 죽엽차나 댓잎술 등 음식과 의약의 재료로도 이용됐다.
대나무는 속을 비우고 곧게 뻗어 올라가는 특성 때문에 충절과 절개의 상징이 되곤 했다.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고 바람에 잠시 몸이 흔들릴지언정 마음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품이 지조 있는 선비를 닮았기 때문이다. 고려 말에 절개를 굳게 지킨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목숨을 잃은 돌다리를 '선죽교'(善竹橋)라고 한 것도 대쪽 같은 심지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각거리며 상쾌함을 더하는 대나무는 시와 그림 등 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관방천변에 늘어선 대나무 시화전의 작품은 대나무의 미적 아름다움을 감명 깊게 표현하고 있었다. 예컨대 문순태는 '청죽을 보며'에서 "삶의 무게에 눌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고 싶을 때/ 너를 바라보고 있으면/ 빛바랜 마음이 푸르러진다"며 찬양했다. 신석정은 작품 '대숲에 서서'를 통해 "대숲은 좋드라/ 성글어 좋드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드라// 꽃가룰 날리듯 흥건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라고 노래했다.
대나무축제는 고려 초부터 담양사람들이 대나무를 심었던 죽취일(竹醉日·음력 5월 13일) 잔치를 시원으로 한다. 이날이 되면 집 울타리와 마을 주변, 야산에 대나무를 심은 뒤 죽엽주를 마시며 주민의 단결과 친목을 도모하는 화전놀이를 벌였다. 일본강점기 때인 1920년대 초에 끊긴 죽취일의 맥은 1999년 대나무와 선비정신을 테마로 한 현대적 축제로 재탄생했다.



◇ 신명과 감동…밤에는 환상의 별빛잔치

이제 축제 현장으로 가보자. 축제를 활력으로 넘치게 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관방천의 향교교 아래에서 진행된 대소쿠리 물고기 잡기였다. 죽녹원 정문으로 이어지는 향교교 아래에는 대울타리로 만든 물고기 잡기 체험장이 드넓게 설치된 가운데 참가자들은 소쿠리로 물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짓가랑이를 반쯤 걷어 올리고 춤추기 운동으로 몸을 푼 참가자들은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호루라기가 울림과 동시에 대소쿠리를 들고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가족과 친구 등은 물가에 서서 박수와 환호로 응원했다. 제한시간인 20분 안에 메기 두 마리와 붕어 네 마리를 잡은 이한결(10·광주) 양은 "신나요! 축제에 올 때마다 잡아요"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향교교와 추성교 사이에서 체험하는 대나무 카누와 대나무 뗏목 타기 현장. 참가자들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혹은 연인끼리 카누와 뗏목 타기를 신나게 즐겼다. 대나무로 만든 배는 시원하게 부는 봄바람과 함께 미끄러지듯 떠다녀 그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남편과 두 아들이 노를 저으며 유유히 나아가는 모습을 물가에서 지켜보던 윤미(39·서울) 씨는 "담양이 친정이라 매년 축제 때마다 온다"면서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 역시 행복해진다"고 웃음지었다. 전남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다는 마누엘 에스칼로나(25·베네수엘라) 유학생은 "이곳에서 카누를 처음 타보는데 정말 신난다. 인상 깊은 추억이 될 것 같다"며 흡족한 감회를 나타냈다.
전통 민속놀이로 눈길을 모은 프로그램 중 하나는 5일 낮 분수대 무대에서 공연된 '담양 황금들노래'였다. 전남 무형문화재 제46호인 이 농요는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에 전승돼오고 있는데 모판을 만들고, 모를 찌고, 논을 매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연출했다. 주민 30여 명으로 구성된 공연단은 흰색 전통 복장으로 등장해 "한일(一)자로 늘어서서 입구(口) 자로 모를 심세/ 앞산은 점점 멀어지고/ 뒷산은 점점 다가오네"라며 농악 장단에 맞춰 풍년을 기원했다. 공연단의 남귀희(71) 대표는 "조선 중엽부터 이어져오는 전통놀이로 마을주민들은 생활에서 하나가 되고 있다"며 계승의 소중한 가치를 환기시켰다.




관방천과 관방제림은 낮도 낮이지만 밤 풍경이 더욱 아름다웠다. 관방천은 담양 가마골생태공원의 용소(龍沼)에서 발원한 영산강의 일부다. 조선 인조 26년(1648년)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길이 6km에 이르는 제방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이 가운데 1.2km 구간의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에는 수령 200년이 넘은 팽나무, 느티나무 등 15종의 낙엽활엽수 320여 그루가 신묘한 기운을 뿜으며 자라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관방제림에서는 밤마다 환상의 별빛잔치가 벌어져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겼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레이저 불빛이 나뭇잎과 나무줄기에 비칠 때마다 밤하늘 별들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 정경이 펼쳐진 것이다. 방문객들은 1km에 이르는 별빛 구간을 천천히 걸으며 꿈결과 같은 환상 여행의 묘미에 푹 빠져들었다. 담양 주민 윤정숙(62) 씨는 "우주의 별들이 반딧불로 내려와 춤을 추는 듯하다"면서 "같이 온 딸과 손주에게 정말 큰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향교교~추성교 구간을 장식한 두 마리의 대나무 용과 2천여 개의 대나무 소망등, 천 년의 소망배도 환상미를 연출했다.
향교교 양쪽에 각각 25m 길이로 설치된 대나무 작품 '천년의 용솟음'은 청룡과 홍룡이 영산강의 발원지인 용소에서 금방 내려온 듯 생동감으로 넘쳐났다. 올 축제에 처음 선보인 이 용들은 달밤에 보면 하얀 용이 흘러가는 형상이라는 '백진강'(영산강의 옛 이름)의 연원을 알려주기도 했다. 오색의 대나무 소망등은 천변을 2개 층으로 길게 장식하며 관방천 물속에 비쳐 환상미를 배가했다. 베트남에서 시집왔다는 송민지(21·담양) 씨는 "대나무를 이용해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등을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담양군에 따르면 올해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은 모두 4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박충년 담양대나무축제위원장은 "운(運)·수(水)·대(竹)·통(通)이라는 테마로 대나무 고장인 우리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방문객들이 두루 체험케 했다"면서 "사람으로 치면 성년에 해당하는 20회째를 맞아 야간 프로그램을 한층 강화하고 역사문화 퍼레이드를 처음으로 재현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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