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직접 설득', '靑비서실장 경유' 등 민정수석 우회 대책 고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여러 문건들은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상황을 타개할 목적에서 작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민정수석을 건너뛴 채 대통령을 직접 설득하거나, 정 안되면 다시 민정수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관철하는 방안을 궁리하면서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등 일선 법원의 재판을 청와대와의 협상에 활용하겠다는 노골적 구상을 문건에 담아 파문을 일으킨 법원행정처의 일탈 행동은 상고법원의 걸림돌로 여겨진 우 전 수석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빚어진 셈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관계자는 28일 대법원 4층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단 간담회에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과 관련해 "상고법원 도입을 확고히 반대하는 우 전 수석을 피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하려는 생각이 법원행정처에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지칭한 문건은 'BH 대응전략' 문건과 'BH 설득방안'이다. 2015년 3월과 7월에 법원행정처에서 각각 작성됐다. 상고법원 도입 문제를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하거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협상 통로로 활용하는 방안이 다뤄져 있다.
특히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 판결 사례'와 향후 예정된 주요 정치인의 재판 등을 활용해 청와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협상 전략까지 기재돼 '행정처가 재판으로 흥정을 시도했다'는 거센 비판을 불렀다.
특별조사단은 검찰 출신인 우 전 수석이 노골적으로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법원행정처가 구상하면서 이런 문건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을 2015년 8월 6일 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오찬 자리에서 활용할 생각이었지만, 실제로는 활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특별조사단은 보고 있다.
대신 양 전 원장은 상고법원 법관 임명을 놓고 대통령의 권한을 확보할 방안 등을 다룬 문건을 가져가 박 전 대통령에게 상고법원 도입 취지를 설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오찬 자리에는 우 전 수석이 배석했다. 상고법원 반대 의사가 강했던 우 전 수석이 자리를 함께했다는 점에서 당시 양 전 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마음 놓고 상고법원 도입 주장을 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기도 했다.

이후에도 우 전 수석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상고법원 도입이 사실상 무산 위기에 빠지자 법원행정처는 또 다른 대책 문건을 만들었다.
2015년 11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이다. 임 전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 추진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문건에는 '원세훈 사건', '통상임금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사법부가 정부에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설명하면서, 상고법원이 좌절될 경우 사법부가 더는 정부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협박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고 기재돼 있다.
<YNAPHOTO path='PYH2017092211550001300_P2.jpg' id='PYH20170922115500013' title=' ' caption='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특히 우 전 수석과 관련해서는 그의 반대로 상고법원 도입이 좌절돼 사법부 및 국민이 입게 될 피해와 충격, 향후 사법부의 결연한 의지 등을 여러 경로를 통해 경고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청와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뜻보다는 국정의 관심사로 여겨질 만한 중요 재판을 무기로 청와대를 압박해야 한다는 논조가 확연해진 문건이다.
이 문건에 대해 조사단 관계자는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 대한 우 전 수석의 방해가 너무 집요한 시점에 (임 전 차장이) 우 전 수석을 겨냥해 쓴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이) 거의 울컥한 심정에 직접 문건을 작성해 표현이 더욱 과격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건 내용처럼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나 우 전 수석을 상대로 실질적인 협박이나 설득 등을 실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말 그대로 상고법원 도입이 좌절된 상실감에 실무 책임자였던 임 전 차장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쓴 '아이디어 차원의 문건'이었다는 것이 조사단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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