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소설집 낸 이기호 "타인의 고통, 내 시선으로 판단 말았으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사람들이 누군가를 환대한다고 하면서도 상대의 고통이나 상처를 자꾸 자기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내가 겪은 사례들이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크기의 고통 정도로 상상해서 동일화하는 거죠. 결국 진정한 이해와 환대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 실패담을 소설로 써보고 싶었어요."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문학동네)를 펴낸 이기호(46) 작가는 30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후 5년 만에 내는 이번 소설집에서 7편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환대'와 '부끄러움'이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죄와 사람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한정희와 나' 중)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인 '한정희와 나'에서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타인에 대한 온전하고 무조건적인 환대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정희와 나'는 그런 환대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왜 자꾸 실패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 화자인 '나'는 어느 날 '정희'라는 소녀를 집안으로 들이게 된다. 아내가 데려온 아이다. 아내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복잡한 사정으로 얽힌 양오빠의 딸이다. 나는 주저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부모 없이 오갈 데 없는 아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선의를 앞세운다. 나의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에 정희는 금세 마음을 열고 '고모부'라 부르며 따른다. 그러던 어느 날 정희의 학교 담임교사가 정희가 학교폭력에 연루됐다며 상담을 요청한다. 정희가 어느 아이를 왕따시키는 무리에서 앞장섰다는 것이다. 이후 정희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달라진다. 정희가 끝까지 제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정희에게 크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다.
작가는 이 소설이 자신이 쓰려고 한 이야기의 "결정판"이라고 설명했다.
"같이 살게 된 어린아이를 나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파악하려고 한 작중 화자의 실패담이에요. 사람들이 대부분 이 화자처럼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그렇게 일방적인 시선으로 판단합니다. 그런 환대는 그저 타인을 환대하는 자기 자신을 환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죠."

작가가 더 날카롭게 다루는 것은 이런 '가짜 환대'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쉽게 망각하는 위선적인 태도다. 표제작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주인공이 그런 인물이다. 이 소설 화자인 강민호는 오랜만에 고향 후배를 만나 그의 여자친구이자 강민호와도 가깝게 지낸 여자 후배 '윤희'가 얼마 전 갑자기 이슬람교로 개종해 히잡을 쓰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는다. 윤희를 좀 말려달라는 후배 요청에 강민호는 윤희를 찾아가는데, 윤희는 강민호를 보자마자 분노를 터뜨린다. 소설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윤희에게 큰 고통을 안긴 인물이 강민호였음이 암시된다.
"강민호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에요. 그는 자기가 어떤 짓을 하는지 모르거든요. 온 세계의 중심을 자신으로 잡고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인물이에요. 아주 극단적으로 세계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인물의 망각과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강민호도 분명히 윤희를 연애 감정으로 만났을 텐데, 그걸 완전히 잊어버려요. '누구에게나 친절한'이란 말은 어떤 면에선 누구에게나 폭력적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이 친절이 언제 또 멸시나, 환대의 반대 개념으로 바뀔지 모르는 거죠."
두 소설을 포함해 '최미진은 어디로',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오래전 김숙희는'까지 이 소설집 모든 작품은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썼다.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을 세 글자 다 불러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제목을 지어봤어요."
이렇게 호명된 인물들은 강민호를 빼면 모두 어떤 고통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은 세월호 참사 이후 부쩍 생각하게 된 주제라고 작가는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계속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단식까지 했는데, 한편에선 그분들을 공감하는 많은 말들이 나왔지만, 다른 쪽에선 지겹다는 말들이 나오고 빨리 잊어버리거나 묻어버리고 싶어하는 얘기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그런 모습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어요. 비단 세월호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피해받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것 같아요. 제 모습에도 그런 부끄러움이 느껴져서 고민하며 쓰게 된 소설들입니다."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