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의 오차 없는 활 놀림…'신궁'의 기교 선보이다

입력 2018-06-06 15:10  

한 치의 오차 없는 활 놀림…'신궁'의 기교 선보이다
아르테미스 콰르텟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3번의 제1바이올린 도입부터 경이로웠다. 활의 속도와 강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해내며 얻어낸 정교한 울림, 매끄러운 음색은 음악회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딴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과연 그 이름만큼이나 신궁(神弓)이었다.
지난 5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선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현악4중주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앙상블로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아르테미스 콰르텟 단원들의 운궁법(활 쓰는 법)은 가히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토벤을 연주하든 야나체크를 연주하든 슈만을 연주하든 그들의 앙상블은 빈틈이 없었고, 하나의 음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까지 낱낱이 살아났다.
특히 슈만의 현악4중주 제3번에서 보여준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감성은 국내 음악팬들을 깊이 감동시켰다. 제2악장에선 독일 음악의 핵심이라 할 만한 폴리포니(polyphony·다성부 음악)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펼쳐졌고, 느린 3악장에선 슈만의 예술가곡을 방불케 하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귀를 사로잡았다. 또한,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코랄 BWV 295 '성령의 은혜'(Das Heiligen Geistes reiche Gnad)에선 독일의 코랄이 얼마나 신성하고 아름다운 음악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연주를 주로 음반으로 접해온 국내 음악애호가들에겐 이번 공연이 기대와는 다른 공연이기도 했다. 한국의 음악팬들이 즐겨 들어온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음반은 주로 제1바이올리니스트 나탈리아 프리셰펜코가 이 단체를 이끌고 있던 시절(1994~2012년)의 음반들이다. 대단히 격정적인 연주 스타일을 보여준 프리셰펜코의 바이올린 연주 덕분에 한동안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현악4중주의 헤비메탈 그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시절에 발매된 베토벤의 현악4중주와 피아졸라의 탱고 음반들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여전사적인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반면 제1바이올리니스트 비네타 사레이카가 리드한 이번 공연에선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냉철한 면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활 놀림, 그리고 네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낸 완벽한 밸런스는 감탄스러웠다. 그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곡이라고 할 만한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제1번에선 아르테미스 콰르텟 단원들이 좀 더 힘차고 강력하게 활시위를 당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제1번은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과 결혼생활의 문제점을 파헤친 톨스토이의 문제작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야나체크는 전 4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현악4중주곡을 통해 "결혼에 얽매여 진실한 감정을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부도덕한 것"이라는 그의 사상을 피력하려 했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이 곡에는 위선적인 결혼생활의 고통과 거짓된 사랑의 고통이 거칠고 파격적인 음향으로 드러나 있다. 잦은 템포 변화가 나타날 뿐 아니라 일부러 귀에 거슬리는 카랑카랑한 소리도 내야 하는 이 곡에서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악보에 충실한, 매우 정확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 곡이 지닌 급박한 정서와 고통스러운 절규, 불안한 느낌을 자아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정직한 연주가 아니었다 싶다. 그런데도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이번 내한공연은 이 시대 최고의 현악4중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무대였음은 분명하다.
herena88@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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