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광양 백운산 '천년의 숲길'

입력 2018-07-08 08:01  

[연합이매진] 광양 백운산 '천년의 숲길'
자연과 교감하는 싱그러운 생태길

(광양=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전남 광양 백운산 '천년의 숲길'은 광양시가 개발 중인 백운산 둘레길의 1코스다. 산속 마을인 옥룡면 답곡리 논실마을부터 백운학생수련장, 금목재, 백운산자연휴양림을 거쳐 옥룡사지까지 잇는 길이 9.5㎞의 산길이다. 논실마을~백운학생야영장 구간을 제외하면 초록빛 싱그러운 숲길이 길게 이어져 특히 여름에 걷기 좋다. 길 주변에는 형형색색 야생화와 특이한 식물이 많아 눈을 즐겁게 한다.



◇ 同名異山 '백운산' 전국에 31곳

'백운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 31곳에 널려 있다. 한자도 모두 흰 백(白)에 구름 운(雲)을 쓴다. 이 중 광양 백운산은 강원도 정선 백운산(1,426m), 경남 함양 백운산(1,278m)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전남에 있는 봉우리 중에서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지리산 노고단(1,507m) 다음으로 높다.
광양 백운산은 풍수로 유명한 통일신라 때 승려인 도선국사(827∼898)가 머물다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도선국사는 왕건의 출생과 고려 건국을 예언한 인물이다. 도선국사가 창건해 35년간 살았던 옥룡사의 터와 집집마다 참배나무를 심어주었다는 도선국사마을이 백운산 남쪽 자락에 있다. 백운산 둘레길 1코스 '천년의 숲길'은 바로 도선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1코스 시작점은 산속 깊숙이 자리한 논실마을. 예전 이곳 마을 비탈에 다랑논이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논실마을 제1공영주차장은 한재, 신선대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백운산 등산로 1코스가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논실마을에서 1㎞ 아래에 있는 진틀마을은 2코스 출발점이다. 이곳 산간 마을들에는 매년 이른 봄 고로쇠 수액을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 고로쇠 간판을 내건 펜션과 민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흰 구름 대신 먹장구름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날 백운산을 찾았다. 날이 흐리면 녹음은 더 진하게 느껴진다. 논실마을에서 백운학생수련장까지 약 2.5㎞는 도로를 따라가는 내리막이다. 크게 볼거리는 없지만 산속에 자리한 한적한 마을과 계곡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현재 광양시가 산속에 탐방로를 만들고 있어 조만간 도로를 벗어나 숲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 감상하고 맛보고 냄새 맡는 식물 놀이터

본격적인 걷기는 논실마을에서 2.5㎞ 떨어진 백운학생수련장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정표를 보고 계단을 내려가면 무성한 원시림 사이로 커다란 바위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듯한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불계곡, 어치계곡, 금천계곡과 함께 백운산 4대 계곡으로 알려진 옥룡계곡이다. 4대 계곡은 모두 길이가 10㎞ 이상에 계곡 폭이 넓고 폭포가 많아 여름철 휴가객이 많이 찾아드는 곳이다. 낙폭이 큰 곳에서는 새하얀 물줄기가 쏟아지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계곡을 건넌 뒤 수련장 경내의 붉은 철쭉꽃잎 떨어진 길을 따라 가파른 비탈을 오른다. 연분홍 섬초롱꽃, 샛노란 금계국이 방문객을 반긴다. 이내 다시 내리막이 나타나더니 초록빛 나무와 황톳빛 흙길만 있는 숲길이 시작된다. 비가 내린 후여서인지 부드러운 흙냄새와 싱그러운 풀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정다임(52) 광양시 숲해설사는 "백운산은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식물 980여 종이 분포하는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이라며 "숲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식물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길가에는 소금처럼 짠맛이 나는 소금나무, 만지면 누린내를 내뿜는 노루오줌, 비릿한 오이향의 오이풀, 하얀 나비가 내려앉은 듯 꽃이 핀 어성초, 땅비싸리, 꿀풀, 산딸나무, 노각나무, 나리꽃, 맹감나무, 사람주나무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채로운 나무와 꽃과 풀이 발길을 붙든다. 새빨갛게 익은 산딸기는 시큼한 맛이 일품이다. 길 중간중간에는 순우리말인 '산돌림'(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 '소소리 바람'(이른 봄에 살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차고 매서운 바람), '동살'(새벽에 동이 터서 훤하게 비치는 햇살)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 '광양불고기 명칭' 유래된 금목재

완만한 경사를 한동안 오르내리다 보면 중간 지점인 금목(禁木)재에 닿는다. 이곳은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의 유래가 얽힌 곳이다. 조선 시대 한 선비가 광양으로 유배를 오게 됐는데 이곳 숯가마에서 구워 먹은 고기 맛을 한양으로 간 이후에도 잊을 수 없어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로는 광양의 옛 이름이고 화적은 불고기를 뜻한다. '금목'은 백운산 참나무를 이용해 5~6개 숯가마에서 숯을 구웠는데 불법 반출을 막기 위해 통제소를 설치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금목재를 넘으면 열대우림의 밀림을 연상시키듯 초록빛이 무성한 내리막 숲길이 이어진다. 싱그러운 풀냄새는 더 진하게 후각을 파고든다. 석축을 쌓아 만든 작은 규모의 숯가마 터도 숲 안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편백이 하늘 높이 솟은 숲 지대를 지나 내려가면 백운산자연휴양림을 지나고, 이내 논밭이 펼쳐진 평온한 시골풍경이 펼쳐진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모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이곳 인근이 바로 도선국사마을이다. 마을에는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참배나무 한그루가 고목으로 남아 지금도 꽃을 피우고 있다.



◇ 도선국사가 창건한 옥룡사 터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은 옥룡사지. 도선국사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용 9마리를 쫓아낸 후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다는 곳이다. 도선국사는 이곳에서 35년간 머무르면서 제자 수백 명을 가르치다가 입적했다. 옥룡사는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일제강점기에 부도와 비석이 파손됐다. 1997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에서 건물터와 비석 조각을 찾아냈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관을 발견했다.
옥룡사지로 가는 오르막길에는 도선국사가 약 1천200년 전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7천여 그루에 달하는 동백나무는 봄마다 새빨간 꽃망울을 터뜨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동백나무 숲길을 5분 정도 올라 샘을 하나 지나면 옥룡사지가 펼쳐진다. 풀이 뒤덮은 7천744㎡의 부지가 당시 사찰의 규모를 가늠하게 한다. 한쪽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기와 파편이 한가득 쌓여 있다. 옥룡사지 뒤편 언덕을 넘어가면 2002년 복원한 도선국사와 그의 수제자 통진대사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다.
백운산의 마을과 마을, 옛길, 숲길, 강변길을 연결하는 백운산 둘레길은 9개 코스, 총 길이 118.3㎞로 설계돼 있다. 지난해까지 1ㆍ3ㆍ7코스가 완성됐고, 올해 4ㆍ5코스가 개통한다.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2021년까지 제 모습을 갖추고 탐방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1코스는 광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논실마을이나 심원민박마을까지 21-3번 버스로 이동한 후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옥룡사지에서 출발하면 오르막이 많아 힘이 꽤 든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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