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출제 믿을만한가]⑥진리의 기준은 교과서와 수업내용?(끝)

입력 2018-07-10 12:10   수정 2018-07-10 12:37

[내신출제 믿을만한가]⑥진리의 기준은 교과서와 수업내용?(끝)
"봉사 특징은 공익성(×), 사회 중심성(○)" 학부모 하소연
자율형 사립고에서 수학계열 과목 3문제 시험시간에 정정 소동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보기 문장이 잘 이해되지 않아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재시험이나 복수 정답 인정 등 조처할 생각이 없다'고 하시네요. 도와주세요" (고등학생 A양)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학부모 총회를 갔어요.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가 교수, 학계 전문가 등을 언급하며 시험 이의 신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당황스러웠죠" (학부모 B씨)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내신 시험을 치르는 동안 출제된 문제의 '허점'을 지적하는 학생들과 이를 '방어'하는 교사들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가 지난 두 달간 취재한 학생, 학부모, 학원가 관계자들은 출제 오류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해결하려는 교사들과 학교 당국의 관리와 대처가 미흡한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담당 과목 교사들이 실제 시험처럼 스스로 풀어 보면 사전에 잡아낼 수 있었을 어이없는 실수가 잦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시험 전 출제 문항 검토가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재작년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영어 과목 시험에는 한글 문장을 제시한 뒤 이를 영어로 완성하는 문제가 나왔으나, 정답에 해당하는 영어 문장이 지문에서 삭제되지 않아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학교는 당시 아무 조처를 하지 않다가 한 학생이 나흘 뒤 한 오류를 지적하자 그제야 '모두 정답'으로 처리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달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른 서울의 한 자율형 사립고는 자연계열 학생들의 수학계열 과목 시험에서 객관식과 주관식 등 총 3개 문항를 시험 도중에 '수정'했다.
담당 과목 교사가 각 교실을 돌아다니며 이상 여부를 검토하고 수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교실에 따라 수정 여부를 알게 된 시점이 10분 이상 차이가 나 혼란스러웠다는 게 학생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5월 제주의 한 고등학교 화학 과목 시험에서도 보기 문항에 정답이 없는 오류가 발견됐지만, 학교 측은 '전원 정답'으로 처리한 뒤 후속 대책으로 '재발 방지 노력'만 언급할 뿐이었다.
올해 1학기 기말고사에서 '그날 세월호를 탔었다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는 예문을 내 논란이 불거진 충북의 한 고등학교 역시 '교사에 대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주의 조치'하는 데 그쳤다.
문항 오류가 지적돼도 교사 자신의 의견만 고수하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 태도만 견지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없지는 않다.
중·고등학생들이 자주 찾는 입시 정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중학생은 "내신 역사 문제가 이상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무작정 3번이 답이라고, 내가 이상한 거라 몰고 갔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고등학생은 "통합사회 과목 문제가 이상하다고 여겨져 나뿐만 아니라 20∼30명의 학생이 같은 이유로 이의를 제기했는데 선생님의 의견만 강조하고 전부 묵살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주부들이 많이 찾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과거 자녀의 도덕 시험에서 교사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교사가 '사회 중심성'만 인정하고 '공익성'은 제외했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익성'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성질'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 '공공'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 공유 플랫폼에는 학교 시험에서 'I have a loving family and friends'라는 문장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아니라 '다정한 가족과 친구'라고 했다고 오답 처리됐다는 글도 있었다.
이처럼 문제에 대한 출처 및 추후 조처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 정해진 답'만 만점을 주고 나머지 답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례를 온라인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 오류 문항과 그 후속 처리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탓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사가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와 학원에 하소연하는 것이다.
학교 안팎에서는 출제 오류 문제가 반복되고 그 속에서 '잡음'이 계속될 경우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 신뢰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등학교 교사인 김모(53)씨는 "학생-학부모-교사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출제 오류 과정에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며 "내신 위주의 경쟁 구도가 낳은 씁쓸한 학교 현장의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학생들이 시험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했을 때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문항이라면 출제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면서 "신뢰가 쌓여야만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yes@yna.co.kr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내신 출제의 문제점이나 오류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각 학교별로 최근 치러졌거나 치러지고 있는 2018학년도 1학기 기말고사나 또는 이미 치러진 시험에 대한 제보를 해 주실 분은 탐사보도팀 이메일(investigative@yna.co.kr)로 연락처와 함께 내용을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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