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수목장 선택 독거노인간 만년 교제공간 화제

입력 2018-07-19 07:00  

일본서 수목장 선택 독거노인간 만년 교제공간 화제
'죽음'도 웃으며 화제삼는 무덤 인연…'만년 교제의 장'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무덤 친구?
사후에 같은 묘역에 묻힐 독거노인들이 생전에 교제를 나누는 공간이 일본에 마련돼 화제다.
외로운 고령 독거노인들이 혈연이나 지연, 학연 같은 이승의 기존 인연이 아니라 생전에 선택한 무덤을 인연으로 교제하는 공간이다.
지난달 하순 도쿄도(東京都)에서 혼자 사는 오카무라 가즈코(85) 할머니는 버스로 1시간여 걸려 도쿄 마치다(町田)시에 있는 "또 하나의 우리 집"에 도착했다.
비영리(NPO)법인 '엔딩센터'가 2015년에 마련한 단독주택이다. 노래와 서예를 포함한 서클활동을 하고 '독신'간의 대화, 카페 등의 행사를 연다.
18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이곳 이용자는 엔딩센터가 기획한 벚나무 수목장을 묘지로 선택하고 계약한 사람들이다.
월 40명 정도가 드나든다. 오카무라 할머니처럼 평생 독신인 사람도 있고 배우자와 헤어졌거나 사별한 독거노인도 있다.
무덤을 인연으로 느슨한 유대관계를 갖는 '하카토모'(墓友)들이 모여 만년을 즐기는 장소다.
오카무라 할머니는 대학 졸업 후 60세 때까지 방송국과 정부 외곽단체 등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사귀던 사람은 있었지만 결혼은 하지 못했다. "죽으면 벚나무 밑에 잠들고 싶다"고 생각해 8년 전 마치다 시내에 있는 묘지를 계약했다. 잡목숲을 활용해 조성한 '바람의 여행자'라는 이름의 묘역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엔딩센터는 마치다시와 오사카부(大阪府) 다카쓰키(高槻)시 등 2곳에 묘지를 조성해 놓고 있다. 두 곳에 2천600여명이 잠들어 있다. 현재 회원 수는 3천500여명이다.
오카무라 할머니는 2년 전부터 '또 하나의 우리 집'에 드나들고 있다.
그를 포함해 할머니 7명이 자질구레한 도구를 만드는 이날 서클활동에 참석했다. 다음날이 생일인 오카모토는 사과파이 한판을 사 들고 참석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평소에는 사는 일이 없는 온전한 한판을 샀다. 손꼽아 기다린 날이다.
"마지막 생일이 될지 모르니 같이 놀자"고 농담조로 이야기를 꺼내자 참석자들이 축하인사를 건네거나 노래를 불러주면서 터부시하기 쉬운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웃음을 섞어 나눈다.
"여기 오면 생기를 되찾는다. 무덤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진짜 내 집 같다".
혼자 사는 오카무라 할머니에게 엔딩센터는 사후 뒤처리를 맡아줄 '가족 대리인'이다.
그는 4년 전 '사후지원' 계약도 했다. 임종시 장의차 수배와 장례, 화장, 매장(埋葬) 입회, 공적연금 지급정지 신청, 집 정리 등에 120만 엔(약 1천200만원)이 들었지만 "안심하고 저승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무덤 계약금 40만 엔(약 400만 원)과는 별도다.
오카무라 할머니의 방에는 '사후'를 대비해 준비해 놓은 물건들이 소중하게 정리돼 있다. 시신에 입힐 기모노와 영정용 사진, 장례식 참석자들에게 줄 2천 엔(약 2만 원) 상당의 상품권 20장, 장례식 때 스님의 독경 대신 틀어놓을 좋아하는 음악 CD 등을 준비해 놓았다. 이 음악을 좋아하는 엔딩센터 직원에게 죽거든 가져라고도 이야기해 두었다.
자녀가 있어도 배우자와 사별한 후 혼자 사는 고령자가 많다.
'또 하나의 우리 집'을 찾은 나카무라 히사코(76) 할머니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재료를 준비해와 '무덤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차려 같이 먹는다. 마음에 위안을 느끼는 시간이다. 지난달에는 60~70대 남녀 5명이 러시아식 스튜인 보르시치 만들기에 도전했다.
나카무라는 자녀 3명이 독립한 후 6년 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70세 때부터 혼자 살고 있다. 외로워서 잘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다가 3년 전부터 '또 하나의 우리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같은 묘역을 선택한, 가치관이 같은 친구들이라는 안심감에 마음이 놓여 "푹 빠져 들었다"고 말했다.
자식들이 잘 지내는지 보러 오지만 무덤 문제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12년 전 자연으로 돌아가 자식들이 돌볼 필요가 없는 엔딩센터의 수목장 묘지를 선택했다. 남편도 같은 묘역에 잠들어 있다.
엔딩센터장인 사회학자 이노우에 하루요(井上治代. 67)는 "핵가족화 등의 영향으로 혼자 사는 고령자가 느는 가운데 혈연과 지연이 엷어지고 있어 '개인'이 어떻게 살고 죽음을 대해야 할지 아직 모델이 없다"고 지적하고 "만년을 맞은 세대에 새로운 결연(結緣) 장소와 사후 지원을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각부가 65세 이상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덤에 대해 어느 정도나 준비 또는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다는 응답이 60.8%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의 64.2%, 남성은 54.0%가 '구체적으로' 또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고 미혼여성의 경우 74.8%에 달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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