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우리동네] 근·현대가 공존하는 북성공구골목

입력 2018-08-04 11:00  

[쉿! 우리동네] 근·현대가 공존하는 북성공구골목
대구읍성 허물고 낸 신작로…흥망성쇠 겪어
공구상 수백개 남아…역사자원 활용 도심재생 활발


(대구=연합뉴스) 이재혁 기자 = 대구역에서 대각선 방향 건너편 널찍한 골목 입구에 서면 '북성공구골목'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중구 북성로, 태평로, 수창동, 인교동 등 철물상·공구상이 밀집한 골목에 언제부턴가 이름이 붙었다.
행정기관이 특화사업을 한다며 이름을 짓기 전까지 대구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북성로'라고 불렀다.
북성로에 간다고 하면 당연히 공구나 철물을 사러 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북성로는 구한말 망국과 근대화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대구 중심지로 한때 번성했지만, 곳곳에 일본식 적산가옥이 남아있을 만큼 시대변화에 뒤처진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그런 역사를 콘텐츠로 활용해 변신을 꾀하려는 작업이 활발하다. 공구, 철물, 돼지불고기, 우동 등 북성로와 함께 떠올리는 단어에 문화, 관광이 추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 북성로 기원
1906년 10월, 대구 중심부를 에워싸며 경상감영을 보호하던 대구읍성이 철거됐다.
당시 경상북도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 박중양은 일본인 상인들 요구를 받고 인부를 동원해 성벽을 허물었다.
그는 성벽 철거를 허락해달라는 장계를 조정에 올리고는 곧장 성벽 해체를 시작했다. 나중에 불허 통지를 받았음에도 강행했다고 한다.
그가 저지른 행위는 개발사업으로 큰돈을 벌려는 일본인 이익과 연결된다.
1903년 경부선 철도 공사가 시작된 후 철도를 따라 일본인들이 대구읍성 북쪽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외곽 토지를 사들여 상권을 만들었지만, 읍성에 막혀 중심부 진출이 어렵게 되자 근대도시 발전을 명분으로 성벽 철거를 주장했다.
마침 일본 유학 중 야마모토(山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러일전쟁 때 일본군 고등 통역관을 맡은 골수 친일파 군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읍성 철거 후 성곽이 있던 자리에는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라는 신작로가 났다.
대구역에 인접한 북성로는 성곽 밖에 일본인 토지 소유자가 많아 '모토마치(元町)'라고 불릴 만큼 상업 중심지가 됐다.
은행, 우체국, 백화점, 조경회사, 목재회사, 목욕탕이 들어섰고 식당, 요릿집, 영화관, 여관 등이 많은 향촌동과 연계해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됐다.
북성로가 번성한 이면에는 조선인 전통 상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아픔이 있었다.

◇ 공구 골목 흥망성쇠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해 북성로 인근에 미군부대가 주둔한다.
미군이 사용한 군수물자가 대구역과 같은 물류기지와 배급창을 통해 쏟아져 나왔고 일부 상인들은 이를 수집해 북성로에서 팔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본격화한 1970년대 들어 곳곳에 공단이 조성돼 산업용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점포가 급증해 북성로 전체가 공구상으로 가득했다.
대구역 네거리에서 달성공원까지 1㎞에 이르는 거리에는 공구상, 철물점이 넘쳐났고 이곳에서 떼돈을 번 상인이 수두룩했다.

국내 대표적 공구상가로 특화한 북성공구골목은 점포마다 규모가 작아도 굴리는 자금이 만만찮았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대구시가 북구 산격동에 대구종합유통단지를 조성하며 공구골목도 전환점을 맞았다.
시가 정책적으로 이전을 장려해 유통단지로 점포를 옮기는 업체가 늘면서 공구골목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수백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지만, 경기침체에 인터넷 쇼핑몰까지 생기는 바람에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 북성로는 역사자원 보고
북성로 동쪽 입구에서 250여m를 가다가 오른쪽 골목 안쪽을 살펴보면 작은 목조 건물(1층 45㎡·2층 31㎡)이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방치한 근대 건축물을 개보수해 2013년 5월 개관한 공구박물관이다.
1층에는 시대별(대동아전쟁기·한국전쟁기·베트남전) 공구를 전시하고 공구상의 방, 기술자의 방을 꾸몄다. 2층은 놀이·공작·DIY를 체험하는 커뮤니티센터 및 실습실로 활용한다.
가던 길로 150m를 더 가면 '순종황제 남순행로'를 알리는 조형물과 전시물을 볼 수 있다.
1909년 순종이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경상도 지방을 순행할 때 대구역에 내려 달성공원을 향해 거쳐 간 길이다.
이토가 왕을 앞세워 백성에게 일본에 순응할 것을 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중구청은 '다크 투어리즘'이라며 조형물·벽화 설치, 쉼터 조성, 거리 개선 등을 통해 '순종어가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교동 쪽으로 가면 1938년 고(故) 이병철 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삼성상회 터가 있다. 지금은 공구회사 크레텍 사옥이 들어섰고, 조형물로 삼성 발원지임을 알려 준다.

◇ 문화·관광으로 골목을 살린다
공구산업마저 쇠퇴한 북성로는 도시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오랜 기간 침체에 빠졌다.
백화점들이 몰린 동성로가 번성하는 동안 북성로는 물론 인근 향촌동까지 옛 도심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북성공구골목 양쪽에는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군데군데 셔터를 내린 빈 점포를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에 수년 전부터 문화운동가들이 들어오고 행정기관이 다양한 도심재생 사업을 한다.
중구청은 1960년대까지 근대건축물 외관을 원형에 가깝게 개선해 사용하도록 예산을 지원해 관광 자원화와 상권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카페 삼덕상회, 공구박물관, 북성로 허브, 판 게스트하우스,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등이 리노베이션 후 입주했다.

자전거공방 및 셀프수리·미술작가 레지던시 공간인 장거살롱,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 등 스스로 북성로에 들어와 문을 연 민간 시설도 적지 않다.
북성로 상인들은 이런 변화에 긍정적인 편이다.
재개발·재건축이 아닌 목조건물과 한옥 개보수를 통한 도심재생에 힘을 쏟고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축제 등으로 사람을 모으면 이곳이 명물골목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yi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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