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문학 열정 놓지 않은 비평가 황현산

입력 2018-08-08 11:49  

평생 문학 열정 놓지 않은 비평가 황현산
투병 중에도 책 두 권 펴내고 글 써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8일 타계한 문학평론가 황현산(73)은 평생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불어불문학 교수로 30여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문학평론가로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불문학자로서 프랑스문학을 번역해 소개하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을 받았고,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등으로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문학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공모에 지원해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지난해 12월 취임 당시 "문예위를 명실상부한 독립기관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긍지"라며 임직원에게 문화예술 지원 업무에 대한 높은 긍지를 가져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한 지 두 달여 만에 3년 전 치료받은 암이 재발하면서 위원장직을 사임해야 했다.
그는 이후 병세가 나빠지는 와중에도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과 번역서 '말도로르의 노래' 등 두 권을 마무리해 지난 6월 펴냈다.
산문집에 쓴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비평집) 이후에 썼던 글을 묶은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뇌의 어떤 증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당시 경기 포천에 머물며 요양하던 그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문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하고 문학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글들을 모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힘겨운 투병으로 기력이 쇠한 듯 말을 더 길게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책과 문학에 대한 애정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껴졌다.



그는 이 책에 수록된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이란 글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 뜻을 정확하게 올려놓을 것과 '한컴오피스 한/글'의 맞춤법 검사 기능을 섬세하게 다듬어줄 것을 관계자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97쪽)
함께 출간한 번역서인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에 관해서는 "가장 격렬한 낭만주의, 가장 격렬한 청소년기 반항의 기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그가 3년 전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번역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매달린 번역 작업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 나아가 사회 전반에 대한 성찰과 비판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밤이 선생이다'에 수록된 '과거도 착취당한다' 중)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밤이 선생이다'에 수록된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 중)
그는 수년 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도 활발히 했다. 늘 정제된 문장으로 사안의 핵심을 짚는 글들을 올렸다.
'밤이 선생이다'와 '…사소한 부탁'을 편집한 출판사 난다(문학동네 출판그룹) 김민정 대표는 "선생님께서 트위터 글을 정리해달라고 하셔서 모아보니 A4 용지로 400장이 나왔다. 마지막까지 번역에 관해 쓰신 글도 2천800매 분량이다. 곧 책으로 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고인과 가까이 지내 온 김 대표는 "아프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하시고 끝까지 격을 갖추며 흐트러진 모습을 안 보여주셨다. 후배들과 제자들의 병문안을 어제까지 받으실 정도였다.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시니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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