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8년만에 구제금융 '졸업'…"경제 정상화까진 갈길 멀어"(종합)

입력 2018-08-20 17:47  

그리스, 8년만에 구제금융 '졸업'…"경제 정상화까진 갈길 멀어"(종합)
당분간 긴축 지속…내년 연금 추가삭감·내후년 세금 추가인상
국민 "변화 실감 못해"…"구제금융 끝나지만, 악몽은 계속된다"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가 장장 8년 넘게 이어진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체제라는 '오디세이'(긴 여정)에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스는 유로그룹이 지난 6월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종료 방안에 최종 합의함에 따라 지난한 구제금융 시대에서 20일(현지시간) 공식 벗어났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당시 마라톤협상 끝에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가 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수십 억 유로의 채무 만기를 10년 연장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리스에 3차 구제금융을 집행한 유로존 구제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는 그리스 구제금융이 종료되는 이날 "우리는 추가 구제금융 프로그램 없이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며 "그리스는 2010년 초 이래 처음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ESM 집행위원회의 마리오 첸테노 위원장은 "이는 (긴축을 감내한)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노력, 그리스 정부와의 좋은 협력, 대출과 채무 경감을 통한 유럽 회원국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그리스는 이로써 국제채권단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나 경제 주권을 회복한 셈이지만, 경제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또한, 당분간은 채권단의 혹독한 감시 아래 긴축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어 국민이 체감하는 구제금융 종료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그리스 정부는 이렇다 할 축하 행사 없이 고대하던 구제금융 종료일을 조용히 넘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대국민 연설을 해 구제금융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를 강조하며, 국가적 단합을 강조할 예정이다.



◇ 그리스, 8년 만에 구제금융 '졸업'
방만한 재정 지출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는 2010년 4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8년 간에 걸친 구제금융 체제에 돌입했다.
국가신용 등급이 떨어져 시장에서 자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그리스는 2010년 5월 1차로 1천100억 유로(약 142조원)의 구제금융을 승인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2년 3월, 2015년 8월 등 3차례에 걸쳐 국제채권단으로부터 총 2천890억 유로(약 370조원)의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수령해 나라 살림을 꾸려왔다.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아 파산 위기를 넘기는 대신,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 개혁과 혹독한 긴축 정책을 이행했다.
긴축 피로감에 지친 그리스 국민이 2015년 1월 총선에서 긴축 정책 철폐를 천명한 시리자(급진좌파연합)에게 승리를 안기며 구제금융 체제는 중간에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리스 역사상 최초로 탄생한 좌파 정부를 이끌게 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집권 직후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국제채권단에 반기를 들었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직전까지 가는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유로존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추가 긴축안을 담은 국제채권단의 협상안 수용 여부를 놓고 2015년 7월 실시된 국민투표가 부결돼 막상 그렉시트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치프라스 총리는 결국 파국을 막기 위해 채권단에 백기를 들고 더 혹독한 긴축 요구를 담은 3차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였다.
치프라스 총리는 3차 구제금융 수용 직후, 비등하는 국내 비판 여론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2015년 10월 초기 총선을 전격 소집하는 정치적인 승부수를 띄웠고, 구제금융 지속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국민의 지지를 업고 정권을 재창출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좌파 정부는 이후 국제채권단의 요구대로 지난 3년간 450여 개의 개혁안과 긴축 정책을 착착 시행한 끝에 구제금융 졸업을 승인받았다.

◇ 구제금융의 그늘…경제규모 축소·빈곤층 확대
유로존과 IMF 등 국제채권단으로부터 돈을 조달하는 대가는 컸다.
경제 주권을 잃어버린 그리스는 채권자의 요구에 따라 방만한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 등 구조 개혁을 수행하는 것과 함께 세금 인상, 재정 지출 대폭 삭감 등의 조치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급여와 연금 삭감 조치가 거듭되면서 구제금융 체제 기간 그리스 국민의 월급과 연금 수령액은 평균 3분의 1가량이 쪼그라들었고, 투자와 소비가 모두 위축되며 그리스 국가 경제규모는 이 기간 25% 축소됐다.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유로존 최고 수준인 각각 20%, 40% 수준까지 치솟았고, 국민의 3분의 1은 빈곤층으로 내몰렸다.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자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층 위주로 속속 고국을 등져 '두뇌 유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주한 국민은 약 40만 명에 이른다.




◇ 경제지표 개선…"정상화까진 갈 길 멀어"
8년여에 걸친 구제금융 체제 종료를 앞두고 그리스 경제는 점차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는 2016년과 2017년 연속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에 육박하는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후퇴를 거듭하던 경제도 지난 1분기까지 5분기 연속으로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는 등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IMF는 그리스의 GDP 성장률을 올해는 2.0%, 내년에는 2.4%로 각각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 28%로 정점을 찍은 실업률 역시 지난 5월 19.5%로 집계돼 2011년 이래 처음으로 20%를 하회하는 등 고용지표도 개선될 기미다.
그러나, 그리스 경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IMF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80% 규모에 달하는 그리스의 국가부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의 이 같은 GDP 대비 채무 규모는 EU 최대 규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6월 유로그룹이 그리스 구제금융 종료 안에 합의한 직후 "중기적 측면에서 그리스가 시장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는 없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리스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1, 2차 구제금융에만 참여한 IMF는 그리스 채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그리스 채무 부담을 줄여줄 것을 유로존에 계속 요구해왔다.
구제금융 이후를 대비해 이자 비용을 포함해 250억 유로(약 32조원)에 이르는 22개월 치의 현금 유동성을 비축하고 있는 그리스는 이제 채권시장에 복귀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조달해야 한다.
구제금융 체제 졸업이 그리스 채무 위기 종료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향후 몇 개월 내로 그리스가 채권시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외부 상황은 녹록지 않다. 터키발 위기와 EU 재정 규약에 각을 세우는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 변수 등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 시장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그리스의 경제적 자립에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그리스중앙은행장은 19일 일간 카티메리니 신문과의 회견에서 "이탈리아나 터키 등 주변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가 격랑에 빠질 경우 그리스는 채권시장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을 위시한 유로존은 이런 위험을 고려해 그리스가 구제금융 이후에도 채권단과 약속한 개혁안을 지속해서 이행하는지를 철저히 감독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분기별로 그리스의 재정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구제금융 이후의 실행 계획을 그리스 정부가 잘 이행하는지를 감시할 계획이다.




◇ 그리스 국민, 구제금융 종료에 '시큰둥'
근 10년에 걸친 채무위기가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일반 그리스 국민의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장 노동자 출신의 연금 생활자인 요르고스 바겔라코스(81) 씨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어떻게 자금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 잠에서 깨어난다"며 "구제금융 체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구제금융 이전에 1천250 유로(약 160만원)의 연금을 받았으나, 10여 차례의 연금 삭감 조치 이후 현재는 685 유로(약 87만원)의 연금으로 아내와 함께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는 그는 주머니가 얇아지며 생필품 구입을 위해 여기저기 빚을 지고 있고, 더 이상 두 아들의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과의 합의에 따라 내년에는 연금 추가삭감, 내후년에는 세금 추가인상이 예정돼 있어 서민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과의 협약에 따라 채무 관리를 위해 2022년까지는 GDP의 3.5%, 이후 2060년까지는 GDP의 2.2%의 재정 흑자를 유지하는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당분간 긴축 정책이 이어질 수밖에 없어 예상을 뛰어넘는 급격한 경제 성장 없이는 서민들은 뚜렷한 삶의 질 개선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얘기다.
경제학자인 니코스 베타스는 AFP에 "향후 수년간 매우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10년간의 긴축으로 한계에 도달한 가계들이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수성향의 현지 일간 타네아는 지난 18일자 지면에 "8월 21일, 0시를 기해 구제금융은 끝나지만, 악몽은 계속된다"는 기사를 실어, 구제금융 졸업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정서를 요약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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