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문제…강제 중단은 답 아냐"

입력 2018-08-29 15:29  

"이주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문제…강제 중단은 답 아냐"
벨기에 출신 멕시코 작가 프랜시스 알리스, 아트선재서 한국 첫 개인전
국경·경계 의미 묻는 '지브롤터 항해일지' '다리' 등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물결이 제법 세차다. 전진 중인 아이들은 파도에 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종종 넘어지면서 바닷물을 먹기도 한다. 바닷물이 카메라를 삼킬 때마다, 뿌옇게 시야를 가린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상영 중인 영상 '지브롤터 항해일지' 배경은 지브롤터 해협이다. 모로코에서 이 바다를 넘어 13km만 가면 스페인 타리파에 닿는다.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이 택하는, 이른바 '모로코 루트'다.
작가 프랜시스 알리스는 2008년 스페인과 모로코 양쪽 해변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들 신발로 작은 배 모형들을 만든 뒤, 아이들이 배를 들고서 맞은편 해안가를 향해 서로 달리도록 하고 그 과정을 촬영했다.
아트선재센터에서는 마주 보는 두 스크린을 통해 '지브롤터 항해일지'가 상영된다. 스페인과 모로코 해안가 풍경 사이에 앉은 관람객에게 작가는 묻는다. "유럽 아이들이 모로코를 향해, 아프리카 아이들이 스페인을 향해 줄지어 간다면 양쪽 아이들은 수평선에서 만날 수 있을까."(작품 '지브롤터 항해일지' 중)
1959년 벨기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0년대 중반 멕시코 대지진 구호 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멕시코시티로 아예 이주했다.
중남미 도시 풍경, 실현되지 못한 근대화 열망 등을 관찰하던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곳곳을 돌며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국경과 경계의 개념, 제도적 모순을 파고든 작업이 많다.
한국 첫 개인전 개막을 앞두고 방한한 작가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계를 주제로 한 작업에 천착하는 배경으로 "멕시코로 이주한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미국에서 이민은 큰 이슈니깐요. 미국과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또 니카라과라든가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다른 지역 사람들이 미국행을 위해 멕시코로 오다 보니 그 긴장이 실제로 눈에 보이죠."



엽서와 지도 등으로 구성된 '루프'(1997)는 경계 문제를 다룬 초기작이다. 작가는 1시간 거리인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건너는 대신에 티후아나에서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을 거쳐 샌디에이고로 가는 세계 일주를 택한 뒤 이를 기록했다.
주제 의식은 '다리'(2006)에서 좀 더 뚜렷해진다. 하바나와 키웨스트 어민들이 각자의 배를 끌고 출발, 배를 이어 마치 해상에 떠 있는 다리를 만드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 작품이다.
전시 중심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에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다리와 어선 대신에 자신의 신발을 배로 만들고 아이들 스스로 전설 속 거인이 돼 수평선을 향해 걷는 시도는 아이들 놀이로 표현된 우화이자, 변화의 가능성을 향한 믿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파나마운하 지역의 흐릿해진 중앙분리선을 작가가 다시 칠하는 모습을 통해 북미와 남미 사이의 분할을 이야기하는 영상 '페인팅'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세계 곳곳의 경계 지대를 탐색해온 작가는 "20, 30년간 유럽을 떠나 살다가 2006년께 다시 유럽에 갔는데 마치 제가 이민자처럼 느껴지더라"면서 "(이주 문제는) 갈수록 더 크게, 독자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최근 한국에서도 제주 난민 문제가 이슈라는 이야기에 "이주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으며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한 모든 시도가 실패했습니다. 자원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동물적 감각에 따른 것입니다. 때문에 (이주자들을) 문화적으로 통합하려고 시도하거나, 대안적으로 그 출신 지역을 도와서 스스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답일 수 있습니다. 그 (이주) 과정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것은 답이 아닐 겁니다."
이번 전시는 김선정 전 아트선재센터 관장(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제안으로 마련됐다. 작가는 남북한 경계를 살펴보는 작업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예 혹은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답을 유보했다.
전시는 11월 4일까지. 문의 ☎ 02-733-894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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