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쓰나미 휩쓸고 간 인니 팔루…"공포·슬픔·혼란"

입력 2018-10-02 18:56  

[르포] 쓰나미 휩쓸고 간 인니 팔루…"공포·슬픔·혼란"
곳곳서 구호 빙자 약탈 벌어져…해안은 잔해 투성이
완전히 무너져 원형 찾기 힘든 마을도…"식량·의약품 태부족"

(팔루[인도네시아]=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인도네시아판 총알택시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22시간을 밤새 달린 끝에 2일 오후 도착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팔루.
아름다웠던 해안도시는 반경 수㎞의 거대한 잔해더미를 방불케 했다.
랜드마크 격이었던 노란색 철교는 이리저리 뒤틀린 채 쓰러져 반쯤 물에 잠겼고, 협만을 따라 줄지어 있던 해안 주변 마을들은 반절 이상이 폐허로 바뀌었다.
해수면에 가까운 높이에 있던 일부 건물들은 물살에 밀려 벽이 모두 무너진 채 앙상한 기둥 몇 조각만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규모 7.5의 강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지난달 28일 저녁 이후 나흘째 이 지역에 갇혀 불안에 떨던 주민들은 너도나도 길가로 나와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팔루와 마찬가지로 쓰나미 피해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진 팔루 북서쪽 반도 지역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사실상의 폭도로 바뀌기도 했다.
정문이 불타고 지붕이 무너진 동갈라 지역 교도소를 지나쳐 오른 한 언덕에서는 건장한 남성들이 가족들을 위해 구호품을 싣고 가는 차량을 하나하나 붙잡고 '반투안'(현지어로 구호를 뜻하는 말)이라고 외치며 담요와 식료품을 사실상 약탈하고 있었다.
이들은 연합뉴스 기자와 현지 경찰이 동승한 차량마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안을 살펴보았다.
인도네시아 국영 통신사 등이 복구에 나섰지만 현지의 통신 사정은 여전히 열악해 팔루 반경 100㎞ 지점에서부터 휴대전화 연결이 곳곳에서 끊기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 투성이인 해변에는 토사를 운반하던 바지선들이 이리저리 좌초돼 있었고, 컨테이너가 물에 잠겨 있었다.
한켠에선 대형 트럭 5∼6대가 종이로 만든 장난감인양 구겨져 엉켜 있기도 했다.
팔루 시내에선 구호물품 분배가 시작됐다.
하지만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탓에 상시로 약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주민은 "소총 등으로 무장한 경찰 등이 배치돼 치안을 유지하지만 위태위태한 상황"이라면서 "해가 지는 오후 6시 이후에는 바깥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2일 아침에는 여진이 일어나 북서쪽 반도 지역과 팔루 시내를 잇는 해안도로가 파괴됐다가 오후 늦게 통행이 복구되기도 했다.
이처럼 불안한 현지 상황 때문에 팔루와 외부를 잇는 주요 도로는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팔루에서 마무주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주유소 두 곳에는 각각 100여대의 차량이 연료를 채우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한 주유소에선 주민들이 휘발유를 채우려고 가져온 연료용기 수백 개가 줄지어 놓여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낮은 주택들의 경우 대부분 지진보다는 쓰나미에 피해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진앙까지 거리가 팔루와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쓰나미가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의 경우 간간이 한두 채씩 건물이 무너지거나 파손됐을 뿐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분위기는 흉흉하기만 했다. 온순하고 인내를 미덕으로 삼아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평소 태도와 달리 기자가 만난 주민들은 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팔루 시내에서 한국풍 카페를 운영하는 현지인 여성 리아는 가족들이 무사하냐는 물음에 "이건 정말로 재난이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말로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너무 무섭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물과 식량, 아기용품, 의료진, 약이 필요하다. 팔루 사람의 절반이 죽었다"고 말했다.
재난 당국은 현재까지 800여명이 이번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너진 건물 등에 대한 구조작업이 본격화하면 사상자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패러글라이딩 대회 참석차 팔루를 찾았다가 연락이 두절된 재인도네시아 패러글라이딩 협회 관계자 A씨는 이날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현지 재난 당국은 그가 숙소인 8층 호텔이 붕괴한 잔해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전날부터 중장비를 투입해 구조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은 성과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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