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 국제학술대회서 한목소리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4·3 7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냉전 시대 전 세계에서 자행된 정치적 학살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책임에 대해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주4·3 70주년 국제학술대회가 4일 오후 제주시 칼호텔에서 '제주4·3, 진실과 정의-지속가능한 정의를 향하여'란 주제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4·3 70주년을 맞아 4·3을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조망하기 위해 유사 사례를 살펴보고 국내·외 민주연구단체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뤄진 정치적 대량학살의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베드조 운통이 첫 발표자로 나섰다.
베드조 운통은 "인도네시아·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필리핀·태국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은 냉전, 봉쇄정책의 영향과 분리할 수 없다"며 "제주에서는 2만5천명에서 3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인도네시아에서는 50만명에서 3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학살됐다"고 말했다.
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로 꼽히는 이 학살은 인도네시아 군부가 1965∼1966년 공산주의자와 화교로 간주한 50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당원은 수백만명에 달해 중국, 구소련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였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을 미국이 알고도 묵인했음을 보여주는 당시 외교문서가 공개돼 인도네시아 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베드조 운통은 "소련의 붕괴와 독일 통일로 냉전의 종식을 알렸지만, 냉전의 여진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한반도는 아직도 대립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 제노사이드 희생자들에 대한 박해와 낙인찍기,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5년의 제노사이드를 공작하는 데 개입한 국가들, 즉 대량학살과 부도덕한 범죄행위를 악용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그 외 서방국가들의 책임을 촉구해야 한다"며 모든 나라가 외세의 간섭 없이 자국의 의지에 따라 국민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4·3 당시 미국의 개입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허호준 한겨레 신문 기자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1949넌 6월 미국 의회에 보낸 교서에는 '소련의 제주도 침투설·연계설' 등 소위 가짜뉴스들이 여과 없이 외신과 국무부에 보고됐고, 제주도는 일종의 대소 봉쇄를 위한 전진기지로 간주됐다"며 미국의 개입은 직·간접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4·3 당시 국내에 있는 미 당국의 제주도 관련 보고서에는 '대량처형'(mass execution), '대량학살'(mass slaughter), '대량 집단학살'(mass massacre) 등 표현이 나타나는데, 그만큼 제주도에서 이뤄지는 대량학살을 미국이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미군 관리들은 제주도 사태의 토벌을 격려 고무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한미사절단이 미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 나타난 '국무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으로서'(as of possible interest to the Department), '국무부가 인지하는 바와 같이'(as the Department is aware) 등과 같은 표현을 통해 이미 미국이 제주도의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고 설명했다.
허 기자는 "미국의 개입 문제에 대한 의문은 자료 발굴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며 1947년 11월 말 미군정장관 딘 소장의 제주도 방문 목적, 1948년 5월 5일 제주도에서의 회의 내용, 초토화 시기 군사고문단의 제주도 진압작전 개입에 대한 기록, 미 국무부의 지시 여부 등이 앞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학술위원회와 제주4·3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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