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음서 출신 관리가 과거를 본 까닭은

입력 2018-10-11 06:30  

고려시대 음서 출신 관리가 과거를 본 까닭은
김용선 교수가 펴낸 '고려·사회·사람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시대에 관리가 되는 주된 방법은 과거 급제 혹은 음서였다. 두 제도는 고려 귀족사회를 지탱한 축으로 평가된다.
고려 묘지명을 연구해온 김용선 한림대 명예교수는 고려 건국 1천100주년을 맞아 그간 발표한 글과 강의록을 엮은 신간 '고려·사회·사람들'에서 고려시대 등용문이었던 과거와 음서가 어떻게 활용됐는지 설명한다.
과거는 고려 광종 9년(958) 시작해 900년 넘게 지속했다. 학문적 능력을 평가해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지만, 고려에서는 사실상 응시에 신분 제한이 있어 특권층에게만 허용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조선과 달리 고려는 비정기적으로 과거를 개최했는데, 문학적 능력을 시험하는 제술업(製述業)은 250회 시행돼 급제자 6천330명이 배출됐다. 회당 급제자는 평균 25.3명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저자는 "제술업은 양인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아 농민 자제가 응시하거나 합격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며 "중앙 관리와 향리 계층 이상만 과거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정한 덕이나 공을 쌓은 관리의 자손이 관직에 나가도록 하는 음서는 과거보다 더 폐쇄적인 제도였다.
저자는 "고려시대에는 공신으로 책봉되거나 특별한 공훈을 세우거나 5품 이상 관리가 되면 친족이나 후손에게 음서를 줄 수 있었다"며 "음서를 받는 데는 일정 수준의 학문적 능력을 갖출 필요가 없었기에 귀족사회를 안정시키고 특권을 유지하는 데 음서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다"고 강조한다.
다만 "음서에 의한 관리 취득이 의무는 아니어서 권리를 유보하거나 포기할 때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고려 귀족은 과거와 음서를 어떻게 활용해 출세의 길을 걸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음서를 받아 관리가 된 다음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성공에 가장 유리했다고 분석한다.
고려는 연공서열처럼 근무 기간에 따라 관리를 승진하는 순자법(循資法)을 적용했기 때문에 일찍 관리가 되면 높은 자리에 오르기가 수월했다.
저자는 "음서는 평균 15.4세에 제수됐고, 과거 급제자 연령은 평균 24.4세였다"면서도 "음서 출신자들은 오로지 일반 행정직만 등용됐지만, 과거 급제자는 일반 행정직뿐만 아니라 조칙 작성과 사서 편찬 같은 일을 맡는 문한직(文翰職)에도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과거 급제자는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나, 음서 출신은 별도 조직이 없었다면서 "음서 출신자의 약 40%가 과거에 합격했고, 과거 출신 관리 25%가량이 급제 이전에 음서로 관리가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고려 지배계층은 음서와 같은 법제적 권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특권을 이어갔고, 과거도 이러한 대세 속에서 운영됐다"며 고려는 문벌사회 혹은 관료제 사회라기보다 귀족사회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조각. 472쪽. 3만5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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