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이란 제재 D-1…'최고 압박'과 '저항경제' 정면충돌

입력 2018-11-04 06:06  

美 대이란 제재 D-1…'최고 압박'과 '저항경제' 정면충돌
이란 지도부, 경제난 인정하면서 단결 호소
유럽 제재 불참, 유가 상승 이란에 호재…美 일방주의 시험대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 정부가 5일(미국 동부 시간 기준) 0시부터 대이란 경제·금융 제재를 복원한다.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타결에 따라 이듬해 1월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해 이란에 부과한 제재를 완화한 지 2년 10개월 만이다.
미국은 5월 8일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8월7일 1단계 대이란 제재를 재개했다.
이번에 재개되는 2단계 제재는 이란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 국영석유회사(NIOC), 국영선박회사, 이란중앙은행 또는 이란 내 은행과 금융 거래를 막는다는 점에서 '본 제재'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수차례 가장 수위가 높은 제재로 이란 경제를 최고로 압박해 고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통해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핵합의를 수정하려 한다.
기존 핵합의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정된 핵합의엔 이란의 역내 군사 개입,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사실상 이란에 '항복 문서'를 요구한 셈이다.
이런 미국의 압박에 이란 정부는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 맞선 이란의 구호는 '저항경제'다.
서방의 제재에 대응해 자급자족의 경제 순환 구조를 구축해 최대한 외부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게 핵심 개념이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해 에너지를 스스로 충당할 수 있고, 식량도 어느 정도 자급할 수 있는 데다 강한 통제력을 보유한 신정일치의 안정된 통치 체제를 갖춘 이란이기에 저항경제가 단순히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효력을 발휘해 왔다.
이란은 이미 40년에 걸친 미국의 제재에 맞선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 역시 미국의 제재로 경제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점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제재로 앞으로 몇 달간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정부와 국민, 모든 경제 주체가 힘을 합한다면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신력을 강조했다.
미국의 핵합의를 탈퇴하자 이란 리알화의 가치는 3분의 1로 폭락했고, 물가는 급등세다. 이란 경제의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약점인 실업률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비공식 환율은 핵합의가 이행된 2016년 1월 달러당 3만 리알에서 현재 15만 리알까지 5배로 올랐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 재개에 맞서 지난 반 년간 부지런히 대비책을 세웠다.
외화 유출을 최대한 막기 위해 생활필수품과 중간재의 수입을 철저히 통제했고, 원유 수출을 민간에 개방했다. 이란 무역회사가 외국의 제품을 수입하려면 엄격한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 중앙은행으로부터 수입 대금을 치를 외화를 할당받아야 한다.
또 외환 사범과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적발해 사형을 집행해 혼란기를 틈 탄 경제 범죄에 경종을 울렸다.
이란 정부는 자국민에게 국산품을 애용하고 해외여행을 줄이자며 '애국심'을 호소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영향력이 비교적 적은 러시아, 중국, 터키, 인도, 중앙아시아 등과 우호를 다지면서 제재를 피하는 우회로 개척에 공을 들였다.
관치 경제라고 할 수 있는 이란의 통제적 저항경제가 미국의 제재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이란의 원유 수출을 금지한 2012년 제재와 달리 이번에는 유럽이 미국의 제재 복원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이란으로선 호재다.
유럽은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했다면서 미국의 제재에도 이란과 계속 교역하겠다는 뜻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밝혔다. 이를 위해 이란과 유럽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5일 제재가 실제로 시작되면 이런 유럽의 맹약이 정치적 제스처에 그칠지,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맞서 유럽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지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트럼프 정부 출범 뒤 강화된 미국의 일방주의가 이란 제재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2014년 중반부터 계속된 저유가가 상승하는 흐름에 접어드는 상황 역시 이란에 우호적이다.
이란은 올해 상반기 하루 평균 250만 배럴의 원유를 국제 시장에 공급했는데 이 물량이 제재로 없어지면 유가는 급등한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미국의 중동 지역 우방 산유국이 산유량을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이 공백을 단기간에 메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유가가 오르면 이란은 제재로 원유 수출량이 줄어도 수출 금액은 유지할 수 있다.
제재의 성패가 향후 유가에 달렸다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제재로 이란의 원유 수출을 '0'으로 줄이겠다고 했으면서도 8개국에 대한 제한적인 예외를 둬 제재 이후에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강력한 제재로 이란 경제를 어렵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심이 동요해 정권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곧 이란 정권이 내부의 에너지로 교체되는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의 민심은 미국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분위기다.
이란 젊은 층은 종교성이 덜하고 이란 정부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편인데, 미국의 이번 제재 복원과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도 싫지만, 미국은 더 싫다'는 반미 정서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당한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는 민족주의마저 고양돼 내부 결속만 강해지고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합의를 성사한 개혁·중도 성향의 로하니 정부에 대한 지지도도 하락세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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