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과 한국적 민주주의는 왜 나왔을까

입력 2018-11-14 06:00  

주체사상과 한국적 민주주의는 왜 나왔을까
신간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공화주의·포스트 모더니즘 등 32가지 사상·이념 쉽게 소개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1962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지도자 김일성은 "기와집에서 이밥에 고깃국 먹으며 비단옷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 뒤인 2010년. 김일성 손자 김정은은 "3년 내 인민 경제를 1960~70년대 수준으로 회복하여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생활 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철학자 안광복이 쓴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사계절 펴냄)'은 김일성과 김정은의 이런 발언을 소개하면서 북한에 "사실상 발전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지적한다.
3대 세습 독재를 거치는 동안 여전히 쌀밥 먹는 게 꿈인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은 뭘까.
저자는 그 힘을 북한의 공식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에서 찾는다. "북한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듯싶다"라고도 했다. 요즘 젊은 층 말로 하면 '정신 승리'인 셈이다.
굶주림도 버티게 한 '주체사상'은 어떻게 나왔을까.
김정일은 부친 김일성이 처음 '주체'를 언급한 시기를 1930년으로 선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실제로 1946년 김일성이 '스탈린 대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에게 '영원한 원조'를 부탁하며 "대원수 만세"를 외치는 것을 보면 '주체적' 느낌이 없다.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자 그를 흉내 내던 김일성은 당황했다. 후계자 흐루쇼프가 신격화한 스탈린을 마구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1962년엔 소련의 원조가 중단됐고 비슷한 시기 중국 역시 문화대혁명의 혼란에 신음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홀로서기를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개발해야 했다. 196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이것이 우리 당이 일관하게 견지하는 입장"이라고 천명한다.
김일성이 분명히 내세운 주체사상은 김일성종합대 총장이던 황장엽에 의해 철학적 기틀을 다진다. '혁명과 건설의 주인공인 인간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특질을 갖는다는 체계를 확립한다.
후계자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권력 세습의 도구로 변질시킨다.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구호를 통해 주체사상을 '인간 중심'이 아닌 '수령 중심'으로 바꿔놓는다.
1994년 '위대한 수령'이 죽고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는 이미 무너졌으며 중국도 시장주의 국가로 변형됐다. 저자에 따르면 설득력이 없어진 '주체사상'은 1996년 이후 북한 언론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주체사상은 형식적으론 여전히 제1 통치 이념이었지만 실제로는 사문화됐다. '선군 정치'를 내세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 대신 새로운 상황에 유효한 구호를 내세워야 했다. 바로 '강성 대국'이다.
'공화국'이 '이밥에 고깃국'은커녕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던 것은 모두 미 제국주의 침략자들 탓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강성 대국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3대째인 김정은은 표면상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을 어떻게 다룰까. 저자는 현재진행형인 이 부분은 물음표로 남겨놓는다.


그렇다면 김일성 시대 북한과 맞선 대한민국은 어떤 사상과 이념이 지배했을까.
저자는 '한국식 민주주의'와 '개발 독재'라는 코드를 제시한다.
1961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89달러였고 국민총생산의 10%가 외국 원조였다.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리더십 부재에 국민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고 탄식했다. 저자는 당시 한국을 "국제 거지나 마찬가지였다"고 표현한다.
그때 소장파 군인 박정희가 등장해 무력으로 정부를 접수했다. 쿠데타는 불법이므로 정통성이 없었던 박정희는 '잘살아 보세', '하면 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경제 발전에 운명을 건다.
광부·간호사 파독,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 파병을 통해 종잣돈을 마련하고 야당이 반대한 경부고속도로를 내고 제철소를 지었다.
이 모든 판단은 적중했고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눈부신 성공을 거듭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정치적으로는 '개발 독재', '군사 독재'라는 비판에 시달리며 힘든 항해를 이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은 이데올로기가 '한국적 민주주의'다.
비능률적인 민주주의는 경제 발전이 완성된 뒤에야 꽃 피울 수 있고, 외국식 민주주의는 북한과 대치한 상황에 부적합해 혼란을 가중할 뿐이며, 민족을 중흥할 '민족적 민주주의', 대통령 중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이유였다.
박정희는 이러한 한국적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룬다는 목표를 내세워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다. 그러나 이처럼 거칠 것 없던 한국식 민주주의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숨지면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북쪽 세습 독재와 대결해온 남쪽의 군부 장기 독재가 끝난 것이다.
책은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32가지 이념과 사상을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문체로 소개하는 사상 철학 입문서다.
공화주의부터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자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페미니즘까지 세계인이 추구한 철학, 이념, 사상이 다양하게 소개됐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주제지만 청소년과 학생을 독자층으로 설정한 만큼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간다.
소크라테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청소년을 비롯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쉽고 다양한 철학책을 꾸준히 내왔고, 언론과 포털에도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344쪽. 1만7천800원.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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