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제임스 설터…문호들이 말하는 글쓰기 비법

입력 2018-11-16 10:37  

위화·제임스 설터…문호들이 말하는 글쓰기 비법
산문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소설을 쓰고 싶다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위화(余華)와 제임스 설터(1925∼2015), 중국과 미국의 걸출한 두 문호가 비슷한 주제로 쓴 산문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위화의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푸른숲)과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쓰고 싶다면'(마음산책). 두 책 모두 글쓰기, 소설 쓰기에 관한 철학과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쓴 것이다.
위화는 영화로 만들어진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가다. 그의 인생 역정도 독특한데, 치과의사를 하다가 뒤늦게 작가로 전향한 것과 문학작품 읽는 것이 금지된 문화대혁명 시대에 성장기(고등학생 때까지)를 보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이런 이력으로 글쓰기 여정, '문학 유랑'도 여느 작가들보다 한결 더 험난했다고 그는 말한다.
보통 작가들이 성인이 되기 전 세계 고전문학을 두루 섭렵하고 창작을 시작하는 것과 달리 그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가와바타 야스나리, 헤밍웨이, 카프카, 스탕달, 마르케스, 프루스트, 포크너, 도스토옙스키 등 작품을 읽었다. 특히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빠져 한동안 그 '감옥'에서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줄곧 그를 흉내 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야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지요. 아직 젊을 때였고 지나칠 정도로 그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제 소설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었지요. 저의 글쓰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오랏줄에 꽁꽁 묶여 있었던 겁니다." (41쪽)
다행히 그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 카프카의 작품을 만나며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여정의 끝에 그가 얻은 결론은 '훌륭한 작가는 훌륭한 독자여야 한다',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훌륭한 독자란 "평범한 작품 말고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어 취향과 교양의 수준이 높아져서 글을 쓸 때 자연히 스스로 아주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한 유대인을 구한 폴란드 농민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자기 집 지하실에 유대인을 숨겨준 이 폴란드인은 왜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냐는 질문에 "저는 유대인이 뭔지 모릅니다. 저는 그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 뿐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을 아는' 작가로 그는 루쉰, 셰익스피어, 하비에르 마리아스, 스탕달, 영화감독으로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등을 꼽는다.
"글쓰기에는 끊임없이 앞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글쓰기는 물줄기가 모여 도랑을 이루는 과정이지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장애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아주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피하거나 넘어서고 나면 갑자기 그리 거대하지 않게 느껴지고,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용기 있는 작가들은 항상 장애물을 향해 전진하고,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넘어섭니다. 지나친 다음에야 깨닫고 이렇게 가볍게 지나쳤나 하고 놀라는 경우도 많지요." (71쪽)
'20세기 미국 문단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 '작가들이 칭송하는 완벽한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제임스 설터는 세상을 떠나기 10개월 전인 2014년 가을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에 '캐프닉 저명 전속 작가'로 초빙됐다. 이 대학교에는 캐프닉 가문의 후원 아래 미국 저명 작가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는데, 그해 설터가 선정된 것이다. 그때 진행한 문학 강연 내용을 묶은 것이 바로 '소설을 쓰고 싶다면'(원제 'The Art of Fiction')이다.
그가 말년에 한 강연인 만큼, 평생을 통해 터득한 글쓰기, 소설 쓰기에 관한 결론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는 1993년 미국 문예지 '파리리뷰'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을 더했다.
그는 소설 쓰기엔 정답이 없지만, 최소한 반드시 놓쳐선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위화처럼 '쓰기'에 앞서 '읽기'를 강조한다. 읽지 않고 쓰기부터 시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발자크와 플로베르 등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작가와 작품들을 열거하면서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에서 어떻게 인물과 배경을 묘사하고 시점을 이동했는지, 플로베르가 정확한 문체를 구사함으로써 얼마나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는지, 헤밍웨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 어떻게 녹아 들어갔는지, 트루먼 카포티와 솔 벨로가 소설 속에서 배경을 어떻게 활용해 전개해나갔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또 "소설은 늘 삶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위대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전적으로 꾸며낸 게 아니라 완벽하게 알고 자세히 관찰한 것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그 역시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 졸업 후 10년 넘게 군인으로 살다 뒤늦게 소설가로 인생 경로를 바꾼 독특한 이력이 있다.
"작가로서 출발한 초기에는 대개 자신의 목소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확실히 자리 잡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거나 그 작가에게 끌리기 마련이죠. 그 작가가 뭘 하든 그걸 따라서 해보려고 합니다. 그 작가가 사물이나 현상을 어떻게 보든 그와 똑같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그런 애착은 약화되고 여러분은 다른 작가들에 '그리 강렬하지 않게' 끌리게 되고 여러분 자신의 글에 끌리게 됩니다. 그러한 연습과 변화를 거치다 보면 다른 작가가 끼어드는 일 없이 전적으로 자신의 글을 쓰는 때가 오고, 그러면 비로소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됩니다." (31∼32쪽)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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