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충북의 알프스'에 자리한 '왕의 온천'

입력 2018-12-08 08:01  

[연합이매진] '충북의 알프스'에 자리한 '왕의 온천'

(충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수안보는 '왕의 온천'이라 불린다. 왕이 즐겨 찾은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온천이란 뜻이다. 가을부터 봄까지 수안보에는 53도의 뜨거운 물을 경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다.



1980년대 말까지 최고의 여행지는 온천이었다.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신혼들의 여행지이자 어르신을 위한 효도 관광, 자녀 동반 가족여행, 수학여행의 단골 명소였다. 전국의 유명 온천지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영원할 것 같던 인기는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급격히 떨어졌다. 온천 시설은 낡았고 여행지가 다변화한 탓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온천들이 등장하며 방문객이 다시 늘고 있다. 충북 충주의 수안보도 현대적인 업소가 문을 열고 족욕 거리와 산책에 좋은 탐방로를 조성하며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수안보온천은 '충북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조령(鳥嶺)의 북서쪽에 자리한다. 어느 가을날 피부병에 걸린 걸인 한 명이 문경새재를 넘어와 이곳 논바닥에 볏짚을 깔고 잠을 잤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고 한다. 볏짚 아래에서 뜨거운 물이 솟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 온수로 씻고 닦고 마시기를 15일. 걸인의 피부병은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물이 솟는 보의 안쪽 마을'이란 뜻에서 '물안보'라고 불렀고 이후 이곳의 지명은 '수안보'(水安保)가 됐다. 수안보온천은 우리나라 온천의 대명사가 됐다.
수안보온천의 인기는 조선 시대에도 높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피부병 치료를 위해 찾았고, 숙종도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 1892년 수안보 주민들이 만든 규칙을 담은 '동규절목'에는 온천으로 인해 아침에 모였다가 저녁에 흩어지는 남녀로 인해 법도가 어지러웠다는 내용도 나온다.



◇ 온천욕 즐기고 건강 산책하고

수안보온천의 27개 업소가 사용하는 온천수는 모두 같다. 개인이 온천수를 퍼 올려 사용하는 다른 곳과 달리 온천공 5곳에서 나온 온천수를 탱크에 한데 모아 분배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나 똑같은 온천수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온천수 탱크는 도심을 흐르는 석문 천변의 낙천탕 옆에서 볼 수 있다.
또 온천수가 색깔, 냄새, 맛이 없는 '3무 온천수'이다. 일본에서 뽀얀 우윳빛이나 황톳빛 온천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걸인의 설화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피부에는 무척 좋다고 한다. 온천수는 PH 8.3 약알칼리수로 유황, 리튬, 마그네슘 등을 함유하고 있다.
노천이 있는 호텔에서 온천욕을 체험했다. 온천공에서 나오는 물의 온도는 53도지만 업소에 공급되는 수온은 48도다. 노천의 온도는 4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속에 몸을 담그자 뜨거운 기운이 퍼진다. 돌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비 내리는 날의 노천은 무척 낭만적이었다. 눈 내리는 날에 즐기는 노천욕도 꽤 좋을 것 같다. 온천욕 후 피부가 뽀송뽀송하고 매끄러운 게 몇 살이나마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천욕을 하고 나서 족욕 체험장을 찾았다. 석문천을 따라 360m가량 이어진 족욕길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족욕탕 6개가 마련돼 있다. 판석을 깐 마운틴탕, 연인을 위한 커플탕, 물안개가 피는 안개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족욕탕에서는 관광객과 주민들이 발을 담근 채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족욕탕에 발을 담갔다. 조용히 흐르는 석문천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 보니 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봄에는 족욕길에 벚꽃이 흐드러진다고 하니 분홍색 꽃비를 맞으며 족욕을 즐길 수도 있겠다. 밤에는 조명이 불을 밝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타깝게도 족욕탕은 겨울에 운영하지 않는다.
이튿날 아침 '휴(休)탐방로'로 향했다. 해발 300m의 조산에 길이 1천35m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한전연수원 입구에서 탐방로로 들어섰다. 산 사면을 지그재그로 오르도록 설계해 전혀 힘들지 않다. 길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야자 매트가 깔려있다.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길을 20여 분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수안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마의태자 전설 깃든 미륵대원지

수안보 동쪽 차로 15분 거리의 월악산국립공원에는 신라 마의태자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충주 미륵대원지가 있다. 신라가 망하고 허망한 마음에 산하를 떠돌던 마의태자는 이곳 하늘재 아래 관음사에서 잠을 청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고개 너머에 절을 짓고 북두칠성을 바라보게 불상을 세우라는 꿈을 꿨다고 한다. 하늘재를 넘자 넓은 터가 나왔고 마의태자는 관세음보살의 말대로 불상을 세우고 미륵사라 불렀다.
이곳 석불입상(보물 제96호)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불상이다. 높이 10.6m의 석불은 원래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로 석굴을 만들고 목조 지붕을 씌운 불전에 모셔져 있었는데 현재 석축과 석불입상만 남아 있다. 대원지에서는 연꽃 문양이 양각된 당간지주와 국내 최대 규모의 귀부(龜趺), 미륵리 5층 석탑(보물 제95호), 석등을 볼 수 있다. 현재 석불이 있는 공간은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폐사지 옆에는 하늘재를 넘던 이들이 쉬어가던 역원(驛院) 터가 있다.
수안보 시내에는 온천 업장과 호텔, 모텔, 식당이 즐비하다. 식당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이어서인지 어디를 가나 맛이 좋다. 특히 꿩 요리 전문점이 많다. 1980년대 야생 꿩을 인공사육하면서 꿩 요리가 시작됐다고 한다. 샤부샤부, 육회, 불고기, 만두, 탕, 꼬치, 잡채, 탕수육 등 꿩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축제장으로 사용되는 물탕 공원에는 수안보온천의 유래가 적혀 있는 비석, 수안보온천비,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석이 있다. 물탕공원 족욕장은 특별한 행사가 열릴 때만 이용할 수 있다.

◇ 온천(溫泉)이란 = 우리나라에서 온천은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로 그 성분이 인체에 해롭지 않은 것을 말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온천지구는 437곳, 이용 업소는 574곳에 달한다. 25~35도의 저온형 온천은 49%, 45도 이상은 22%이다. 수온이 높은 곳은 경남 부곡(78도), 부산 동래(61.3도), 수안보(53도), 충남 온양(49도)이다. 보양온천은 온천수의 온도가 35도 이상이거나, 25도 이상인 경우 유황, 탄산 등 유익한 성분을 1천㎎/ℓ 이상 함유하고, 건강시설과 숙박시설, 의료시설을 갖춘 곳이다.
온천수는 뜨거울수록 낫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수온은 체온보다 약간 높은 정도가 좋다. 체온과 비슷해야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고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42도 이상의 뜨거운 물은 오히려 혈관을 수축시킨다. 입욕 시간은 20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온천욕을 오래 하면 피부가 상하고 혈행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고혈압 등 혈관질환이 있다면 반신욕을 권한다.
우리나라 온천의 60% 이상은 몸에 유익한 미네랄, 탄산 등 고형물이 적은 단순천이다. 덕구온천, 수안보온천, 온양온천, 척산온천이 이에 속한다. 동래온천, 해운대온천 등은 염화나트륨이 주성분인 식염천으로 관절염, 근육통 완화에 좋다. 도고온천, 백암온천 등 유황온천은 만성피부병, 천식 치료 등에 좋다. 오색온천과 산방산온천 등 탄산온천은 류머티즘, 고혈압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온천 명소

▲ 아산 도고온천 = 200여 년 전 개발된 곳으로 동양 4대 유황온천 중 하나로 꼽힌다. 신경통, 피부병, 위장병, 관절염, 류머티즘 등 질병 치유와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압 마사지를 할 수 있는 바데풀, 노천탕, 테라피 마사지 시설, 유수풀과 키즈풀, 유아풀을 갖춘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를 비롯해 켄싱턴리조트 도고, 도고로얄호텔 등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 이천 테르메덴 = 수온 38도 내외의 넓은 실내외 바데풀과 수온 40도 내외의 대욕장, 강력한 수압으로 마사지가 가능한 수(水)치료 시설, 수심 50㎝ 이하의 유아전용풀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물놀이와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중탄산과 나트륨 성분이 많아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 피부 미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7~8일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실외온천풀에서 라이브 공연이 진행된다.

▲ 아산 온양온천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지구다. 세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이 이곳에 온궁을 짓고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용출 수온은 49도이며 알칼리성 단순천이다. 온천 시설로 등록된 곳은 약 40곳이다. 온궁 터에는 온양관광호텔이 들어서 있고, 인근 일반 대중탕에서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 예산 리솜스파캐슬덕산 = 무색, 무취의 약알칼리성 수소탄산나트륨형 단순천으로 수온은 약 49도다. 피부미용, 부인병, 위장병, 근육통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게르마늄 성분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산소를 공급해 노화를 예방하고 자연 치유력을 높여준다. 수치료 중심의 유럽스파, 마사지 중심의 동남아스파, 입욕 중심의 일본스파, 레저 중심의 미주스파, 찜질 중심의 한국스파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 마금산온천 = 경남 창원 북면 신촌리에 있는 알칼리성 식염천으로 '북면온천'이라고도 부른다. 용출 수온은 35~48도, 온천업소 수온은 30~45도로 맞춰져 있다. 조선 태종 때 마금산 계곡에서 용출한 약수가 질병 치료에 효험이 있자 전국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숙식 제공에 따른 폐단이 많아지자 주민들이 약수를 매몰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부산 동래온천 =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 온천수를 마시면 만성 위장병 완화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10년대 일본 자본에 의해 근대적인 오천으로 개발됐고, 신혼여행지로 주목을 받았다. 동래온천 테마 거리에는 대규모 온천 시설인 허심청을 비롯해 녹천탕, 천일탕 등 대중탕과 온천호텔과 모텔이 있다. 무료 족욕탕 두 곳도 있다. 족욕탕은 동절기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부산지하철 1호선 온천장역이 5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 속초 척산온천 = 설악산 자락 속초 노학동에 있는 온천이다. 예전부터 겨울에도 물이 잘 얼지 않아 마을 아낙들이 이 물로 빨래를 했다고 한다. 라돈이 포함된 강알칼리 온천수로 노폐물 제거 효과가 크고 피부병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천탕에서는 설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본관 주변에는 산책로와 석림원이 조성돼 있다.

▲ 영암 월출산온천 = 전남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약알칼리성 맥반석온천이다. 지하 600m 맥반석 암반대에서 끌어 올린 온천수에는 게르마늄, 규소, 셀레늄, 아연 등 미네랄이 다량 함유돼 있고 원적외선 방사량이 풍부해 피로 해소와 혈액순환 장애,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온천수는 대중탕과 욕탕, 사우나를 갖춘 월출산온천관광호텔에서 이용할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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