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사학과 고고학으로 살피는 가야사 주요 쟁점

입력 2018-11-19 10:18  

문헌사학과 고고학으로 살피는 가야사 주요 쟁점
5개 연구소·학회, 21∼22일 학술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로 가야사 여러 쟁점을 논의하는 학술 행사가 열린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상고사학회와 함께 2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문헌과 고고자료로 본 가야'를 주제로 제1회 가야사 기획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 추진과 관련해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쟁점을 점검하고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심포지엄에서 다루는 쟁점은 변한 사회와 가야, 가야의 성장과 획기(劃期·새로운 기원을 여는 시기), 가야의 국가적 성격, 가야와 주변 국가라는 네 가지다.
첫 번째 쟁점은 변한을 가야사에 포함해야 하는지, 아니면 변한과 가야를 분리해 살펴야 하는지다.
발표 요약문에 따르면 박대재 고려대 교수는 "가야는 변진의 구야국에서 기원해 중심국으로 발전했다는 통사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동희 인제대 교수는 "가야 시작은 대형 분묘, 토기 양식 출현, 순장(殉葬) 등 고고학적으로 뚜렷하게 정체성이 발현된 단계로 본다"며 "변한 소국에서 가야연맹으로 전환한 시기는 연맹체별로 다르므로 지역성을 언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어 가야가 본격적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하는 시기를 언제로 간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발표도 진행된다.
남재우 창원대 교수는 "광개토왕 남정을 가야사 획기로 보려는 경향은 가야 사회 내부 발전과 구조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결론을 도출한 것"이라며 3세기 초반 포상팔국이 아라가야를 침입했다가 패배한 포상팔국전쟁을 획기로 인식하자고 제안한다.
김일규 부산대 박사는 가야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시점을 5세기 중반으로 보면서 "이 무렵 금관가야 토기 양식은 해체하고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대형 목곽묘 조영이 중단되면서 낙동강 하구 유역 중심의 정치적 카르텔이 해체하고 6가야 연맹체가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가야가 부체제, 초기 고대국가, 고대국가 중 어느 단계까지 나아갔는가를 두고는 이형기 해양수산부 학예연구관,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조사연구위원, 박천수 경북대 교수가 발표한다.
하 위원은 가야가 중국·왜와 원거리 교역을 했고 토기와 철기 생산을 주업으로 삼은 취락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박 교수는 창녕 교동 고분에서 나온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큰칼)와 산청 하촌리 취락유적에서 발견한 토기를 근거로 가야 혹은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백승옥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과 김규운 강원대 교수는 각각 문헌과 고고 자료로 본 가야와 백제·신라 관계를 발표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매년 가야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한 뒤 심포지엄을 개최해 가야 역사와 문화를 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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