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 "뚝방길 나무 찍기를 10년, 세상 보는 눈이 변했다"

입력 2018-11-27 08:30  

김중만 "뚝방길 나무 찍기를 10년, 세상 보는 눈이 변했다"
2008년부터 이어온 나무 작업, 한지에 인화해 한미사진미술관서 전시
"좌절된 佛 그랑팔레 전시, 9월 다시 제안와 협의 중"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사진작가 김중만 눈에 '그 나무'가 들어온 것은 2004년 겨울 어느 아침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전농동 집에서 출발해 청담동 작업실로 향하는 좁은 둑길 위에 있었다. 매연과 먼지를 뒤집어쓴 채 부러지다시피 한 나무 하나가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나무는 자기에게 사연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네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 '내가 너를 찍을 자격이 되니' 라고 물었어요. 2008년 4월 나무가 답을 주기 전까지, 저는 단 한장도 카메라로 찍지 않았어요."
김중만 얼굴은 진지하고 단호했다. 연모하는 이에게 고백한 뒤 답을 얻기까지 4년을 기다렸다고 말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그때부터 꼬박 10년간 둑길을 찾았다. 촬영횟수만도 어림잡아 600회에 이른다. 촬영이 거듭되면서 나무 주변 풍경도 자연스레 렌즈에 담겼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김중만 개인전 '상처 난 거리'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사진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각자 벽 하나씩을 차지한 나무는 깊은 침묵 속에 잠겼거나, 세찬 바람에 긴 머리칼을 휘날리거나, 무심한 눈길로 날아가는 새를 응시한다. 한지 때문인지, 흑백 사진이라기보다는 수묵화처럼 다가오는 둑길 풍경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나무, 어찌 보면 흔한 풍경에 김중만은 왜 끌렸을까. 작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때는 제가 혼자였고, 그래서 조금 더 외로웠고, 그래서 집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 자신도 보름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한 작업이 10년간 이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분명 죽은 나무인데 새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정말 새가 머물고 가요. 그러한 경험이 저를 계속 뚝방길로 돌아가게 했어요."



레게 머리 남성이 스포츠카에서 내려 나무를 찍어대는 것을 고깝지 않게 보던 환경미화원들과 재활용업체 직원들의 변화도 작가는 놀라웠다고 했다.
"그분들이 한 달 정도 지나니 생수를 갖다 주고, 겨울이 되면 100원짜리 커피를 뽑아 줬어요. 구청 사람들이 죽은 나무를 베러 오면 '나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며 싸워주고. 그분들의 인정 내지 동조가 없었다면 오랫동안 작업할 수 없었죠."
'상처 난 거리' 출품작들은 작가가 그렇게 발견한 "나무들과 그들의 상처와 살고자 하는 절박한 열망"을 보여준다. 그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조금씩 변하는 것 느꼈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로서 내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뿌리, 즉 샤머니즘 DNA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동양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것에서 내 뿌리가 나온다는 것이죠. (사진들을 가리키며) 이러한 화면은 가장 한국적이에요."
작가는 사회학적 접근법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사진에 이러한 샤머니즘적이고 인도적인 접근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지난 9월 프랑스 그랑팔레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았으며 시기 등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랑팔레는 파블로 피카소, 니키 드 생팔, 에두아르 마네 등을 조명한 유서 깊은 전시장으로, 2013년에도 김중만에게 개인전 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작가는 그로부터 2년 뒤 막판 철회 통보를 받은 사실을 올초 공개하면서,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당시 국내 정치적 맥락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했었다.
"당시 나무 사진들을 둘둘 말아서 가져간 뒤 그랑팔레에 깔아봤었어요. 그랑팔레 쪽에서 놀라움을 표하면서 '컴퓨터로 만든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내게도 이러한 날이 오는구나 하고 벅찼는데 전시 무산으로 '멘탈'이 깨지는 경험을 했죠."
그 일을 겪으면서 마음을 단련하게 된 작가는 "무엇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다급함을 버렸다"고 전했다.



60대 중반에 들어선 작가에게 사진과 함께한 지난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물었다. "내가 셔터를 누르기 전, 애초 생각한 것처럼 나오는 사진은 절대 없어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사진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죠.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관계를 중시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그러한 사진을 다루면서 조금은 삶을 반성하고,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타인과 공존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상처 난 거리'는 내년 2월 2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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