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숲여행으로 '나무'와 '나'를 들여다보다

입력 2018-12-03 10:43  

사계절 숲여행으로 '나무'와 '나'를 들여다보다
나무인문학자 강판권 교수, '숲과 상상력'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숲은 나무와 나무의 만남이다. 나무의 만남은 둘(林)일 수도, 셋(森)일 수도 있다. 나무는 사이가 좋아야 숲을 만들 수 있다. 서로 협력해서 틈을 만들어 햇살을 숲으로 끌어들인다. 인간도 '사이의 만남'으로 숲을 찾아가야 나무와 상생할 수 있다."
계명대 사학과 강판권(57) 교수는 인문학과 식물을 아우르는 공부로 평생을 보내는 '나무 인문학자'다. 이를테면 '수학자(樹學者)'라고 할까. 생태사학자인 강 교수는 나무를 인문학 차원에서 정립한 수학으로 독자적 자기 정체성을 굳혀간다. '나무예찬', '나무철학', '나무를 품은 선비' 등 30여 권의 저서가 이를 잘 말해준다.
신간 '숲과 상상력'은 지난 6년 동안 전국 숲을 돌아다니며 얻어낸 새로운 결실이다. 강 교수는 "숲을 찾아 나서는 길은 곧 꿈을 찾아가는 여행과 같다"면서 "그동안 나무와 숲을 만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무와 숲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숲은 나무들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다. 나무는 함께 사는 법을 안다. 평생 한 곳에서 옆의 나무와 치열하게 햇볕 경쟁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조금씩 내어주는 상생의 길도 잊지 않는다. 인간이 나무와 숲에서 배워야 하고, 자연생태와 인문생태가 하나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저서는 '사찰과 숲', '역사와 숲', '사람과 숲' 3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 '사찰과 숲'.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 보은 법주사 오리숲, 합천 해인사 소나무숲, 영천 은해사 소나무숲,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숲을 차례로 탐방한다. 사찰과 어우러진 숲은 그 어느 박물관의 유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값어치 있는 자연박물관이 아닐 수 없다.
2부 '역사와 숲'은 자연생태와 인문생태를 동시에 체험하는 공간을 다뤘다. 제주도 비자림, 담양 죽녹원 대나무숲, 경주 계림, 원주 성황림, 함양 상림, 화성 융릉과 건릉, 횡성 청태산 잣나무숲 등이 그곳이다. 이중 함양 상림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최초의 인공 숲으로, 1천여 년 동안 원형에 가깝게 보존됐다.
3부 '사람과 숲'은 광양 청매실농원, 울산 태화강 대나무숲, 남원 서어나무숲, 무주 독일가문비숲, 구례 산수유마을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화유산 숲은 대부분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인데, 이런 숲에서 희망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동안 나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매우 비생태계적이었다며 안타까워한다. 나무를 인간보다 낮은 존재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함부로 취급하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분명한 점은 나무는 인간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나무 없이 한순간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무에 대한 오만한 인간의 태도는 찬란한 문명을 낳는 듯했으나 지구상에 존재하다 사라진 문명은 숲을 제거하는 순간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강 교수는 "시각을 바꾸어 나무를 생명체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게 '생태적 인식 전환'이다"면서 "이 같은 인식 전환은 인간 존재론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인간(人間)은 자연생태의 공간(空間)에서 시간(時間)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이 공간 밖에서는 인간이 결코 존재하지 못한다는 얘기. 나무를 만나는 시간은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이자 인간의 미래를 깨닫는 시간이란다.
따라서 나무와 숲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고 덧붙인다. 나무와 소통하면 천지를 알 수 있어서다. 이를테면 나무와 더불어 세상과 삶을 즐기는 '여수동락(與樹同樂)'이라고 할까. 강 교수는 "나무에 대한 이런 인식이 바로 나무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라며 나무와 숲의 인문학적 이해를 위한 상상력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상력은 실존하는 대상을 통해 나온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나무다. 상상(想像)의 '상'은 '상(相)'과 '심(心)'이 만난 것인데, '상(相)'은 '목(木)'과 '목(目)'의 결합이다. 다시 말해 '상(相)'은 눈으로 나무를 본다는 뜻이다. 상상이란 눈으로 본 나무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는 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전국의 숲을 찾아 나섰다."
문학동네 펴냄. 272쪽. 1만6천500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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