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 인터넷 사기꾼에 주류언론 10년간 농락당해

입력 2018-12-04 16:40  

체코에서 인터넷 사기꾼에 주류언론 10년간 농락당해
화려한 국제분쟁 해결 활동 가짜뉴스들 검증없이 보도
총리 옹호 기고문 게재했다가 들통…교황청도 속아 시리아 고아 기금 10만달러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체코에서 국제 분쟁 지역 구호 활동 등의 공적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는 것을 3차례나 사양했다고 주장하는 가공의 인물에게 이 나라의 주류 언론들이 10여년간이나 농락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타티아나 호라코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여성이 내세우는 이력은 감동적이다. 체코의 비영리 의료단체 대표로 소속 의사 200명을 분쟁 지역에 파견하고 있고, 무아마르 카다피 시절 리비아에 억류된 불가리아 수녀 5명의 석방에 기여했다.
또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콜롬비아에 가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억류된 인질을 풀어주도록 자신이 대신 인질로 잡혀 있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서라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이 여성의 이런 활동은 모두 가짜이고, 이 여성의 실재조차 의심스럽다고 포린 폴리시는 3일(현지시간) 설명했다.
문제는 지난 9월 체코 3대 신문 중 하나인 리도베 노비니가 호라코바의 기명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가 시리아 고아 50명에 대한 난민 인정을 거부하면서 체코에도 돌봐야 할 고아가 있다고 말했다가 거센 비판 여론에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바비시 총리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호라코바는 이 글을 당초 총리실에 보냈는데, 총리실이 이 신문에 보내 싣게 했다.
이 신문은 체코에서 2번째 부자인 바비시 총리가 소유한 많은 언론사 중 하나라고 포린 폴리시는 설명했다.
간단히 구글만 검색해도 검증 가능한 인물의 기고문을 총리실 주문대로 실었던 신문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내렸다. 일부 기자는 편집진이 사주로부터 신문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라고 항의하며 회사를 떠났다.
포린 폴리시는 바비시 총리나 그의 보좌진이 호라코바가 가공 인물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정치인이 언론사를 소유했을 때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호라코바의 사기 행각은 2007년 시작됐다. 로베르트 피코 당시 슬로바키아 총리가 리비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불가리아 수녀 5명의 석방에 역할을 했고 자신도 거기에 한몫 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보도 후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나오는 대신 그 정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이듬해, 호라코바가 FARC에 6년간 붙잡혀 있던 프랑스계 콜롬비아 정치인 석방을 위해 자신이 대신 인질로 잡혀 있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한 것을 체코와 슬로바키아 언론들은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보도했다.
이들 나라 언론들은 이후에도 알 카에다나 체첸 테러리스트들과 싸웠다거나 미국의 대(對) 이라크 정책과 관련, 유엔에 자문 활동을 했다는 호라코바의 주장들을 계속 보도했다.
기고문 사건을 계기로 호라코바의 정체에 대한 취재에 나선 독립 언론 기자 프로코프 보드라즈카는 호라코바라고 주장하는 인물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며 호라코바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돈을 노리고 이런 일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호라코바는 올해 재등장에 앞서 3년전 유럽의 이주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타나 체코가 시리아 고아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그 시설 마련 기금으로 교황청으로부터 10만 달러(1억1천100만 원)를 사취한 전력이 있다.
가짜 기고문 사건도 유사한 방식으로 돈을 뜯어내기 위한 자신 홍보용인 것이다.
쉽게 진위 확인이 가능한 호라코바의 이런 가짜뉴스 행각이 10여년간 통한 데 대해 보드라즈카 기자는 "호라코바가 단칸방에 앉아서 우리 모두를 조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프라하안보연구소의 요나스 시로바트카는 "체코 언론의 허접스러움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고 포린 폴리시는 전했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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