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그 역사와 민낯을 들여다보다

입력 2018-12-12 10:28  

상속, 그 역사와 민낯을 들여다보다
역사가 백승종 교수, '상속의 역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현대사회는 양극화로 큰 고통을 받는다. 한국의 양극화지수도 세계 주요국 중 선두권에 올랐다.
문제는 해가 갈수록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 상위 1% 부자는 연평등 소득이 3억8천120만원으로, 하위 20% 소득계층의 연간 소득 647만원보다 59배나 많았다. 지난해 조사 결과 한국인의 43.1%가 양극화를 가장 중요한 경제적 현안으로 꼽았다.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뭘까?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 증권과 부동산의 부유층 집중도 있지만, 편법 증여를 포함한 상속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부자들은 천문학적 숫자의 막대한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핵심이 바로 상속인 것이다.



역사학자인 백승종 코리아텍 대우교수가 '상속'에 초점을 맞춰 동서고금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폭넓게 천착했다. 이번에 출간한 저서 '상속의 역사'가 그것이다. 백 교수는 "상속제도를 프리즘 삼아 인간사회의 다양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측면을 좀 더 깊이 탐구하고자 했다"며 발간 취지를 밝혔다.
상속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었다. 사회경제적 여건이 변하면 상속제도도 바뀌었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가장 유리해 보이는 상속제도를 선택했다. 그에 따라 누군가는 권력을 얻거나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신분이 추락하거나 가난으로 내몰렸다. 상속을 둘러싼 갈등으로 가족간 혈투가 벌어지는가 하면 국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상속이 인간사를 여러모로 지배한 것이다.



상속 문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책을 읽다 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든다.
서양의 부모들은 나이가 들면 상속과 부양에 관해 자식과 은퇴계약서를 작성했다. 상속받을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방법을 세세히 명시한 것이다. 이 계약서에는 의식주에서 간병 문제, 장례 절차까지 하나하나 기록돼 있다. 계약서로 노후를 보장받은 부모는 재산을 자식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같은 은퇴계약서는 화폐경제가 자리 잡고 연금제도가 보편화하면서 20세기 초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반면에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노부모와 자식이 부양을 위해 상속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었다. 유교사회에서는 효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어서다. 피상속자인 부모가 노후를 염려해 계약문서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배층은 유리한 상속제도를 선택해 가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재산을 지키고자 했다. 중국의 경우 종족단체인 종중이 있었는데 과거시험에 합격한 엘리트인 신사가 종중 재산을 운영했다. 종중의 나머지 구성원은 농업, 상업, 수공업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해야 했다.
문중 중심으로 움직인 조선은 이와 많이 달랐다. 종가를 중심으로 종손이 조상의 인적·물적 자원을 독점했다. 이들은 상공업에 종사하지 않았고, 신분의 이동 자체도 금지하려 했다. 저자는 "한국의 '종가문화'는 양반의 집단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상속과 성차별도 다룬다. 세계 어디서나 문명화가 진행하면서 여성은 경제권을 빼앗겼는데, 이에 따라 이혼도 불가능했고 상속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여성들은 법적·경제적으로 독립적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 중세까지 여성 지위가 가장 선진적이었던 이슬람 문화에서도 14세기 이후 근본주의 열풍이 불면서 여성은 재산의 일부로 격하하고 말았다.
한국의 여성 지위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자기 명의로 재산을 소유하고 자기 뜻대로 이를 상속할 수 있었지만 16세기 후반 들어 그 권리가 축소되면서 경제권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남성 중심 호주제가 강화되자 여성의 권리는 더욱 위축됐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남성과 동등한 상속권을 여성에게 인정해주게 돼 조선시대 초기의 상속법이 온전히 복구됐다.
인류사회는 향후 어떤 방식으로 상속제도를 변화시킬까. 저자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부의 독점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면서 "지난 20년간 양극화가 극심해진 상황을 고려할 때 미래를 낙관하긴 어렵지만 크게는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인류사회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쪽으로 (상속도) 나아가리라 본다"고 전망한다.
사우 펴냄. 272쪽. 1만6천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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