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육아휴직,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죠"

입력 2018-12-15 08:00   수정 2018-12-15 10:24

[디지털스토리] "육아휴직,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죠"
남성 육아휴직 비중 매년 증가추세지만 여전히 미미
"男 육아휴직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지난달에 회사에 복귀했는데 애를 돌보는 문제로 남편과 매일 싸워요. 지방에 사는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줄 여건이 되지 않아 누군가는 아이를 봐야 하는데, 남편은 육아휴직이 어렵다고만 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 모(35) 씨는 육아 고충을 토로했다. 김 씨는 "남편은 본인이 육아휴직을 쓰면 승진에서 밀릴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직장을 관둬야 한다고 말한다"며 "애가 어려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겁이 나는데 나도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관둘 수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008년 1.2%에서 지난해 13.4%로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86.6%로 남성의 6.5배에 달한다. 육아휴직의 몫은 여성이란 의미다. 이런 부담으로 아이 낳는 걸 망설이는 여성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남성이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육아휴직 쓰면 '용자'"…男 육아휴직 비중 지난해 13.4%
"회사에서 육아휴직 하는 남성은 거의 못 봤어요. 잘릴 일 없는 공무원이나 가능한 일 아닌가요?"
결혼 3년 차인 임 모(34) 씨의 푸념이다. 임 씨는 "누군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채워야 한다"며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누가 쓰겠느냐"고 말했다.



네이버 인기 웹툰 가우스전자 '용자' 편(시즌 4, 194화)에서는 안전한 직장을 버리고 창업에 뛰어든 득점 대리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동료들은 득점 대리의 무모함보다도 육아휴직을 신청한 상식 과장이 진정한 '용자'(용감한 자)라고 표현한다.
지난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8' 보고서 요약본을 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2008년 355명에서 지난해 1만2천43명으로 늘어났다.
보고서는 2014년에 '아빠의 달'을 도입하는 등 남성 육아휴직 장려책을 강화한 것이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아빠의 달은 부모가 같은 자녀를 위해 이어서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하는 이에게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100%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사업체 규모별로 육아휴직 제도 도입 여부를 살펴보면 작년 기준 종사자 수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93%가 육아휴직 제도를 두고 있었으나 종사자 5∼9인 사업체는 33.8%만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다.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의 비중은 최근 급증했으나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두권과의 격차는 크다. 아이슬란드, 스웨덴, 포르투갈, 노르웨이 등은 육아휴직 참가자 중 남성의 비중이 40%를 넘어 부모가 거의 대등하게 육아휴직에 참여하고 있다.

◇ "경제적 이유 가장 커"…육아휴직 소득대체율 32%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에 따라 육아휴직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휴직이다. 부모가 모두 근로자라면 아빠도 1년, 엄마도 1년씩 각각 사용할 수 있다.
법으로 명시돼 있는 제도지만, 한국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꼽힌다.
2014년 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이 육아휴직 사용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로 '소득감소'(41.9%)를 들었다. 이어 직장 내 경쟁력 약화(19.4%), 동료들의 업무부담(13.4%), 부정적 시선(11.5%) 등이었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할 경우 소득대체율은 32% 수준이다. 남성 육아휴직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소득대체율이 높다. 노르웨이의 남성 육아휴직 비중은 40.8%, 소득대체율은 97.9%다. 스웨덴도 남성 육아휴직에 따른 소득대체율이 77.6%, 핀란드도 62.9%다.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도 남성의 육아휴직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다.
아들 쌍둥이를 둔 김 모(37) 씨는 "대부분 부장급 이상은 남자가 육아휴직 쓰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부서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에서 인사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사회적 캠페인을 많이 펼치고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에는 난임이 늘어나면서 쌍둥이를 둔 부모가 많은데 쌍둥이는 4배 이상 힘들고 돈도 더 들지만, 지원은 부족하다"며 "정부가 50%, 기업이 50%를 지원해 월급을 보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2년 전 육아휴직을 쓰려던 박 모(31) 씨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며 포기했다. 김 씨는 "애써 아들 키워놨는데 1년간 육아휴직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집안이 뒤집어졌다"며 "차라리 본인들이 애를 봐준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한 남성이 인사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겪는 사례도 있다. A 씨는 육아휴직을 쓰고 지방 부서로 좌천돼 1년을 못 버티고 회사를 퇴사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에 진정도 넣었지만 결국 인사 불이익을 견뎌내지 못했다.

◇ 저출산 심각…남성 육아휴직 강제하는 방안도
전문가들은 주 52시간제처럼 남성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노르딕 국가들은 남성 할당제를 도입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은 3개월, 노르웨이는 70일씩을 부모에게 각각 할당하며, 핀란드는 36일의 부성휴가를 부여한다. 할당된 기간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하기 때문에 특히 남성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해당 국가들은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강제하진 않지만 '안 쓰면 손해'라는 인식 때문에 대부분이 쓴다"며 "하지만 한국은 사회적으로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만큼 제도를 강제해 의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집단은 공무원, 대기업 등으로 정해져 있다"며 "이를 점차 개선하기 위해서는 월급의 100%를 지급하고 최소한 한 달간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강제하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7일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을 13%에서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소득감소를 걱정해 육아휴직을 안 쓰는 일이 없도록 급여액을 인상하고, 휴직 초기에 급여를 많이 받고 후기로 갈수록 급여가 낮아지는 계단식 급여 체계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서 육아는 아직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여성은 '가사 및 육아에 남성 참여 저조(27.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저출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남성 육아휴직 제도의 필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올해 3분기 0.95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0.10명 낮아졌다. OECD 35개 회원국 평균 1.68명을 크게 하회하는 것은 물론 압도적인 꼴찌다.
허 조사관은 "출산율 저하는 양육의 어려움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며 "양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저출산 극복의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junep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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