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사건 그 후] ④45명 목숨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불…여전히 '喪中'

입력 2018-12-15 06:18  

[2018사건 그 후] ④45명 목숨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불…여전히 '喪中'
희생 환자 42명 대부분 70대 이상…30년 노후에다 불법 증·개축 10여차례
1년 되도록 보상 협의 난항…스프링클러 설치 등 소방 기준 강화 계기돼



아침 출근길에 대형 화재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차를 몰아 현장에 도착했다. 병원 건물에 연기가 자욱했고 2, 3층 창문을 통해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1층에 들어서자 구조대원들이 건물 바깥 계단을 통해 환자들을 업거나 담요에 싸서 대피시키고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고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이어서 희생자가 더더욱 많았다.
급한 마음에 승강기를 이용했다가 그 안에 갇혀 희생된 환자도 있었다.



구조대원들에 업혀 나온 사망자나 환자들은 병원 앞 도로에 뒤엉켜있던 구급차 수십 대로 옮겨졌다.
당일 밤 9시께서야 사망자와 중·경상자 병원별 입원 상황이 파악될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다.
현장에 나간 보건소 직원과 119 구조팀, 보건복지부 응급의료센터팀 등 3자가 만든 '단톡방'이 환자 이송 상황을 시시각각 파악하는 이동상황판 역할을 했다.
지난 1월 26일 오전 7시 30분께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밀양소방서 김순기 현장대응단장과 밀양보건소 김영호 건강증진과장의 이야기다.
화재는 입원 환자와 의료진 등 무려 45명이 숨지고 150명 가량이 다치는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소방대는 최초 신고 후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3시간이 채 안 돼 진화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사망자 45명 대부분이 고령자였다.
90대가 10명, 80대 22명, 70대 6명, 60대 1명이었고 50·40·30대가 1명씩이었다.
42명은 입원 환자였고, 당직 의사와 간호사·간호조무사 각 1명 등 의료진 3명도 희생됐다.
사고 규모가 워낙 커 화재 당일 경남도지사 권한대행, 행정안전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국무총리 등이 줄줄이 현장을 방문했고 다음 날엔 대통령까지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목숨을 잃은 지 불과 한 달 밖에 안된 터라 충격은 더 컸다.



효성의료법인은 일반 급성기병원인 세종병원과 통로로 연결된 세종요양병원을 함께 운영했다.
경남지방경찰청 세종병원 화재사고 수사본부는 불이 1층 응급실 내 탕비실 천장 내부 콘센트용 전기배선의 합선(절연파괴)으로 발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피해 규모를 키운 요인은 곳곳에 늘려 있다.
증축 도면상에 있는 1층 방화문이 정작 화재 때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 때문에 1층 응급실 천장에서 불이 나자 불길과 연기, 유독가스가 위층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세종병원엔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4층 이상 바닥면적 1천㎡ 이상'인 설치 기준에는 못 미쳤지만 막상 참사 후엔 규정이 현실에 맞느냐는 지적과 함께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병원 연면적이 5천㎡ 이하여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셀프 안전점검'을 받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의료재단 측은 세종병원에다 요양병원, 장례식장까지 운영하며 12차례나 불법 증·개축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두 병원을 연결하는 비 가림막 연결통로는 연기 및 유독가스 확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여기에다 30년 된 건물 내부 전기배선이 낡았는데도 관리가 부실했고 화재 등 정전 때 전기를 공급해줄 수 있는 자가발전시설도 용량 부족으로 무용지물이었다.
밀양시는 병원 불법 증·개축과 관련해 강제 이행금 부과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신고 없이 당직 의사로 일했거나 자격 없이 의약품을 제조하는 등 병원 측이 의료법과 약사법을 위반한 사실도 드러났다.
효성의료법인재단 손모(56) 이사장은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법인을 불법 인수했고, 세종병원은 환자 유치 등 수익증대를 추구하는 '사무장 병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통보받은 건강보험공단은 세종병원이 문을 연 2008년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공단에 요양급여명세서를 청구해 받은 돈 408억원의 환수에 나서기까지 했다.



검찰은 지난 3월 병원 운영 재단 이사장 손 씨와 세종병원 행정이사 우모(59) 씨, 병원 총무과장이자 소방안전관리자인 김모(38)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했다.
또 병원장 석모(54) 씨, 전·현직 보건소 공무원 등 9명을 불구속으로 기소했다. 양벌규정에 따라 병원 법인도 기소했다.
이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곧 결심이 이뤄진다.
의료재단과 병원 관계자들이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지고 건강보험공단이 병원 재산 압류에 들어가면서 유가족과의 보상 협상이 1년이 되도록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사망자 45명의 유족 가운데 의료진과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 등 5명의 유족은 병원을 상대로 직접 소송에 나섰다.
나머지 40명의 유족 가운데 일부는 아직 병원 측과 합의를 못 했거나 합의금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어 밀양시가 연말까지 해결하기로 하고 대책을 마련중이다.




제천에 이어 밀양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자 소방청과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경남도, 밀양시 등은 잇따라 긴급 시설 점검에 나서고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소방청은 지난 6월 3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방염성능기준을 강화하는 등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다.
바닥면적 합계 600㎡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은 스프링클러를, 600㎡ 이하 병원급 의료기관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간이 스프링클러를 갖추도록 했다.



화재사고의 파장은 매우 컸다.
거동불편자 수용 시설에 대한 인명 대피 훈련을 연 1회에서 분기별 1회로 늘리고 종합정밀점검 대상을 연면적 상관없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모든 소방 대상물로 확대하는 방안 등 소방법령 관련만 20여건이 입법 예고됐기 때문이다.
스프링클러 설치대상을 11층 이상에서 6층 이상으로 강화하는 규정도 시행에 들어갔다.
세종병원 화재로 큰 충격에 빠졌던 밀양시는 '화재예방 전기시설 설치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 전국에서 처음으로 예산을 들여 전기안전진단을 하고 노후주택 전기시설 개선 때 비용의 절반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 13일 다시 찾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은 도시의 폐가처럼 황량했다.
화재 후 바로 영업이 중단돼 병원은 문을 닫았고 정문과 응급실 쪽 출입문도 모두 봉쇄된 채 펜스가 세워져 있다.
세종병원(5층)과 세종요양병원(6층) 두 곳이 나란히 서 있고 가운데 연결통로 창문 유리 일부가 깨진 채 그대로였다.
화재 당시 그을음이 일부 남아 있었고 심하게 그을렸던 곳으로 보이는 외벽엔 새로 페인트를 칠한 흔적이 있다.
사고 때 상황실로 사용됐던 옆 농협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병원 창문 안쪽으론 환자들이 사용했던 베드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김승환(61) 세종병원 화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보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아직 30명가량이 카톡방에서 소통하고 있다"며 "(이번 화재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과도기적인 아픔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병원 스프링클러나 30년 된 건물 노후 전기시설도 그렇고 요양급여 수요 급증 등 모든 것이 그렇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급성장 과정에서 인간중시가 아닌 인간경시 풍조가 자리를 잡았고, 경제 논리가 판을 친다"며 "과도기에 치르는 홍역을 잘 치유하도록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 서로를 보듬는 분위기와 국가적 노력이 함께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b94051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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