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정성조 아들 정중화 "내년 아버지 5주기에 헌정 음반"

입력 2018-12-24 15:10  

故정성조 아들 정중화 "내년 아버지 5주기에 헌정 음반"
말로·웅산·권진원과 '정성조 퀸텟' 연주자들 참여
서울예대 실용음악학부 교수…"아버지 교수실·무대 이어받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트롬본 연주자이자 서울예술대학교 정중화(47) 실용음악학부 교수의 방은 학부 건물 3층 325호다.
서울종합예술학교 기악과 교수이던 그는 올해 3월 이 대학에 임용되면서 우연히도 선친이 생전 썼던 교수실을 대를 이어 사용하게 됐다. 선친은 지난 2014년 10월 육종암으로 별세한, 한국 재즈계 거목(巨木)이자 10년간 KBS 관현악단장을 지낸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 씨다.
"아버지가 1995년 KBS 관현악단장으로 가시면서 이철웅 교수님이 그 방을 사용하셨는데, 은퇴하시면서 이번에 제가 쓰게 됐죠. 처음엔 몰랐는데 비워진 사무실 캐비넷에 정성조란 명패가 남아 있었어요. 아버지가 계셨던 곳이라는 걸 알고 뭉클했습니다."
대물림 된 것은 교수실뿐만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정성조 퀸텟'으로 올랐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라이브 재즈 클럽 '올댓재즈' 무대도 이어받았다. 멤버는 그대로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팀명은 '정중화 퀸텟'으로 바뀌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격주 일요일 저녁 이 무대를 밟고 있다.
지난 20일 올댓재즈에서 만난 정 교수는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날 저녁 열릴 서울예대 실용음악학부 앙상블 합주 수업의 기말작품 발표회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 무대에 30년 가까이 서셨죠. 암 선고 전, 소주를 마시면서 많은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나네요. 아버지께서 '난 올댓재즈에서 연주할 때가 가장 좋다. 너와 연주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내년이면 선친의 별세 5주기. 정 교수는 국내 대표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헌정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재즈 보컬인 말로와 웅산을 비롯해 같은 대학 학부장인 싱어송라이터 권진원, 정성조 퀸텟 시절부터 함께 연주한 피아니스트 임미정, 베이시스트 최은창, 드러머 오종대와 김홍기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1주기이던 2015년 명동성당에서 김광민, 장기호, 노영심, 선우정아 씨 등이 참여해 오케스트라와 함께 추모 공연을 연 적은 있지만 트리뷰트 앨범을 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생전 아버지가 좋아하던 보사노바 장르 등 창작곡 3곡을 썼고, 참여 뮤지션들도 자유의사에 따라 곡을 만들 예정이다. 또 정성조의 곡인 '어제 내린 비'와 '눈물로 쓴 편지'를 보컬들이 부르고, 역시 정성조 곡인 '마더'(Mother)를 빅밴드 편곡으로 연주할 계획이다. 앨범이 출시될 여름 즈음엔, 참여 음악인들과 추모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이상하게도 올해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며 "추모 공연하면서 울컥한 적은 있지만, 살다 보니 가슴 아프게 생각난 적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 너무 그립다. 꿈도 많이 꾸고…"라고 말했다.
정성조는 국내에 영화 음악이란 장르를 개척하고, 실용 음악 개념을 정착시킨 재즈계의 거장이다.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공포의 외인구단', '깊고 푸른 밤' 등 영화 음악을 만들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등의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 일했다. 1995년부터는 10년간 KBS 관현악단장을 맡아 '열린음악회', '빅쇼' 등의 음악 감독도 지냈다.
대학 강단에서 후배 양성에 힘썼으며 남다른 학구열로 귀감이 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고인은 1979년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났으며, 2005년부터는 창립 멤버(1989년)로 교편을 잡았던 서울예대로 돌아가 학과장으로 재직했다. 2011년 서울예대에서 정년퇴임 한 뒤 아들이 졸업한 미국 뉴욕 퀸스 칼리지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나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며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주를 병행하고 작곡·편곡 활동을 하고, 그 연세에 제 후배로 두 번째 유학도 다녀오셨다. 귀국해서도 경희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비밥 재즈 연구에 몰두하셨다. 나이 50만 되도 안주하는데,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라고 떠올렸다.



21살에 콘트라베이스로 출발해 30대에 트롬본을 잡은 정 교수에게 아버지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가르쳐주진 않았다. 음악의 길을 반대해 정 교수의 음대 졸업식에 참석해서야 "이제 음악 해야지 뭐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평소 아버지가 강조한 것도 "일찍 일어나라"는 생활 습관뿐. 아버지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벨리우스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며 편곡을 공부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쓰던 컴퓨터에는 빅밴드 편곡 자료와 스케치해둔 미완성 곡들이 유산처럼 들어있다.
"말보다는 솔선수범하신 거죠. 음악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너의 갈 길을 가라'고 강인하게 키워주셨어요. 낙하산이란 소리를 들을까 봐, 아버지가 서울예대에 계실 때는 아들을 끌어줄 마음조차 먹지 않으셨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드려요."
그러면서 그는 '음악을 큰 산으로 보라'는 아버지의 조언 덕에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돌아봤다.
"음악 전체를 아우르려면 대학원에서 작곡과 편곡을 공부하라고 하셨죠. 강단에 서보니 신의 한 수 같은 값진 조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때는 저도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산 같은 아버지가 부담됐는데, 제가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남다르게 노력하는 삶을 사신 선배님이란 생각이 듭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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