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기름이 펄에 스며들면 조개는 끝난거지유"

입력 2018-12-26 14:17  

[르포] "기름이 펄에 스며들면 조개는 끝난거지유"
홍성 죽도에 원인 미상 기름 유출…주민들 방제작업 나서



(홍성=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아직은 몰라유. 날이 따뜻해지면 바지락이 펄에 스며든 기름을 먹고 죽어 나가고, 살아있는 것도 악취가 진동할 텐데 이제 워쩐데유…"
26일 충남 홍성군 서부면 죽도에서는 주민들이 총동원돼 기름 방제작업을 벌였다.
주민들은 전날 오전 죽도 인근 해상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바위에 걸터앉아 해안가 바위와 모래에 묻어 있는 검은색 덩어리를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연신 땀을 흘려가며 흡착포로 바위를 문질렀지만, 끝없이 퍼져 있는 '타르'에 심란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이금화(73) 씨는 "한창 굴, 새조개, 개조개 작업에 들어가야 할 철인데 이것 때문에 이틀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굴은 다 못쓰기 때문에 아예 채취를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떠내려왔던 기름이 다시 바닷가로 흘러 들어가면 날 따뜻해질 때 눈 뜬 조개들이 다 받아먹어서 쓸 수 없게 돼 버릴 것"이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전날 오후 5시 넘게까지 홍성군청 직원과 죽도에 사는 22가구 주민이 전부 동원돼 방제작업을 벌였지만 구석구석 묻은 기름때를 닦기엔 역부족이었다.다시 밀물 때가 되면 작업을 계속하기도 어려워 잠시도 쉴 수 없는 상황이다.
장두억(66) 씨는 "어제는 바닷불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기름띠가 죽도 주변 남동쪽에 길게 퍼져 있었다"며 "해안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기름 냄새 때문에 두통이 올 정도였다"라고 전했다.
이어 "주민들이 육지에 있는 식구들까지 모두 동원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며 "기름은 쉽게 없어지지도 않고 몇 년이 지나도록 피해가 이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양식업으로 생계를 잇는 주민들은 매우 막막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물에 떠 있는 기름이야 건지면 되지만 바다 속에 가라 앉은 기름은 바지락 등 패류가 숨 쉬면서 빨아들이기 때문에 치명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3.8t급 어선 선장 강기석(49) 씨는 "죽도에 어르신들이 살고 계셔서 새조개 작업하다 말고 섬으로 들어왔다"며 "까만 기름이 펄 속으로 스며 들어가면 쉽게 없어지지도 않고, 바지락과 굴 양식장 피해가 가장 클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이번 사고 여파로 섬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 5월 남당항과 죽도항 구간(2.7㎞)을 오가는 도선(정해진 항로를 오가는 선박)이 취항한 뒤로 주말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숙박업을 하는 주민들도 늘었는데, 청정 섬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관광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심란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동준(76) 씨는 "어제 뉴스에 나가자마자 민박집 예약이 다 취소됐다"며 "연말연시 대목인데 양식업뿐 아니라 민박업까지 피해가 막심하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전날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 해상에서 암초에 걸린 예인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어제 오전 6시에 예인선이 지나가는 걸 본 사람이 있다"며 "어민들은 예인선이 장고도에서 암초에 걸리기 전에 이미 배 밑이 뚫려서 기름이 흐른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의 냄새나 색깔 등으로 볼 때 보통 어선이 쓰는 경유가 아닌 벙커C유로 보인다는 것이다.
보령해경 관계자는 "배 아랫부분이 찢어졌다면 해수가 들어오는 등 침수도 되고 배도 기울어지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기 어렵다"며 "물론 기름이 넘쳤거나 무단 방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경유인지, 벙커유인지 등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며 "해당 시간대 지나간 어선이나 예인선 등을 상대로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보령해경과 홍성군 관계자, 죽도 주민 등 60여명은 연안 구조정과 흡착포 등을 투입해 이틀째 방제작업을 벌였다.

지난 25일 오전 7시 35분께 충남 홍성군 죽도항 인근 해상에 기름이 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보령해경이 기름 유출량과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j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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